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범죄의 재구성] 바람 쐬고 온다더니…‘롤리타의 제물’된 14세 소녀
사연 없는 인생 없듯이 스토리 없는 범죄도 없습니다. 범죄의 조각들을 시간의 도면 위에 펼쳐 놓으면 어느새 하나의 이야기로 옷을 갈아 입습니다. 하지만 범죄는 범죄일 뿐, 미화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편집자 주>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1955년 출간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의 주인공 롤리타는 소녀를 향한 중년 남성들이 갖는 욕망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이 소설의 첫 문장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는 세계 명작 첫문장 30선에 뽑히기도 했죠.

2015년 한국도 롤리타를 찾는 욕망의 남성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가출 10대 소녀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이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습니다.

성매매 알선자들이 생활비와 유흥비에 목이 말라 있는 가출 소녀들을 강압수단으로 유인해 몸을 팔게 한 뒤 중간이익을 챙기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면서 급기야 죽음으로 내모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발생하게 됐습니다.

충북에서 어머니와 언니와 함께 살고 있던 14살 여중생 한모 양은 집이 싫어 가출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던 작년 11월 어느날 ‘잠시 바람 쐬고 오겠다’는 쪽지만 남기고 집을 홀연히 떠났습니다.

한 10대 여학생이 길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머니에 있는 돈은 동이 났고, 바로 그 다음달 서울에서 성매매 알선업자 20대 남성 박모 씨를 알게 됩니다.

결국 박씨의 꾐에 한양은 성매매에 발을 들여놓게 됐습니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26일에도 박씨의 중개 하에 모바일 채팅 앱에서 IT 기기 해외직구 구매대행업을 하는 30대 미혼 남성 김모 씨를 만나게 됩니다.

박씨가 채팅 앱에 ‘빠르게 뵐 분’이라는 제목의 채팅방을 만들어 올린 것인데 이를 본 김씨가 연락한 것입니다.

김씨는 이른 아침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 내려 자신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한양에게 전송합니다.

모텔에서 만났을 때 상대를 발견하기 위해서죠.

객실에서 김씨는 한양을 만났고, 박씨는 객실에 있는 김씨에게 전화로 한양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근 PC방에서 대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한양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예정된 시간인 1시간 후면 얼굴이 나타나야 했는데, 2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안았습니다.

아침 9시경 모텔 주인을 대동해 한양이 있는 2층 객실 앞으로 가서 20분간 노크도 해봤지만 인기척이 없어 추가 시간을 갖는 줄만 알고 모텔에서 일단 나갑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12시가 좀 넘은 시각에 주인과 함께 키로 객실을 따고 들어갔는데 한양은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된 상태였습니다.

한양은 코와 입이 막힌 상태에서 목이 졸린 채 질식사를 당했습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도주한 김씨를 용의자로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김씨는 한양에게 1시간에 13만원이나 하는데 아직 사정을 하지 못했다며, 1시간을 더 주면 10만원을 더 주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한양의 정확한 피살 원인은 경찰 수사를 더 지켜봐야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가출 청소년 수는 해마다 줄어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연도별 18세 미만 실종아동ㆍ청소년 접수 현황은 지난해 2만1591명을 기록했고 매해 2만명이 넘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출소녀들의 성매매는 90%가 지하철역 500미터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데요. 여가부가 지난 2012년 발표한 ‘성매매 피해 청소년의 공간패턴 연구(가출 청소년 398명 조사)’에 따르면 서울은 청소년 성매매 10건 중 9건이 신림역, 청량리역, 외대앞역,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84.6%는 여자청소년이었습니다.
성매매 경로로는 번개 및 조건만남이 53.2%로 가장 많았고, 노래방도우미(14.7%), 보도방(14.1%), 키스방(3.9%) 등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gil@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