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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평가된 작가"…곽인식 ‘다시보기’
국내 단색화 선구자役…이우환 등에 영향
“곽인식의 작품을 사두세요. 작품에 비해 여전히 저평가된 작가입니다.” 국내 한 미술품 경매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미술사가 송미숙 전 성신여대 교수 역시 모노하를 이끈 이우환, 단색화의 선봉장 역할을 한 박서보 외에 주목해야 할 추상화가로 곽인식(1919-1988)을 꼽았다. 현재 한국 미술시장의 ‘붐업’을 이끌고 있는 단색화를 거슬러 올라가면 곽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곽인식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곽인식은 대구 출신으로 일본에서 수학하고 일본에 정착한 재일교포 화가다. 발레리나 출신인 부인도 일본인이다. 이 때문인지 그동안 국내 평단은 곽인식에 대해 인색했다. 
곽인식, Work88-LW, 종이 위 잉크, 225x135㎝, 1988 [사진제공=갤러리현대]

곽인식은 유리를 의도적으로 깬 작품 등으로 1960년대까지 전위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현대미술 장르를 선보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타원형으로 단순화시킨 맑고 투명한 이미지를 회화에 적용했다. 재료의 물성(物性)을 화면에 반영하는 그의 작업은 이우환 등 당대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송 교수에 따르면 모노하의 이론과 실천을 정립한 것은 이우환이지만 선구적인 역할을 한 것은 곽인식이었다. 깨진 유리 위에 돌을 얹은 이우환의 ‘관계항’ 작품들도 사실은 곽인식이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주목받지 못했을까.

송 교수는 197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작품을 찾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곽인식 평론을 썼던 일본인 사가에 따르면 그는 늘 선두두자가 되고 싶어했던 것 같다. 남의 밑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철학을 전공했던 이우환은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썼다. 곽인식의 영향을 받았던 이우환은 일본 모노하(物波)를 이론적으로 정립했다. 이후 평단의 시선이 이우환으로 쏠렸고, 곽인식은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지게 됐다.”

미술사가들은 단색화라는 명칭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때를 1970년대 후반으로 본다. 그 구체적인 발신은 1975년 일본 동경화랑에서 열렸던 ‘한국 5인의 작가, 다섯가지 흰색’전이었다. 한국의 백색화를 일본에 처음 소개한 이 전시를 주도한 이가 이우환이었다. 전시에는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이동엽, 허황이 포함됐다. 곽인식은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이다.

현재 곽인식은 김기린, 정창섭 등과 함께 단색화 2군 그룹으로 묶인다. 그의 20호(1호는 우편엽서 크기)짜리 작품이 지난해 여름 한 온라인 경매에서 6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현재 평균 시세로는 지난해보다 5~6배 정도 올랐다. 단색화 1군 그룹인 박서보의 1970년대 ‘묘법’ 10호 작품이 1억 이상을 호가하는 것에 비하면 여전히 낮지만 작품값이 급등하는 추세는 확실하다.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미술품 경매회사 관계자는 “단색화 작가들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에 작품값이 더 오를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진 해외시장에서 많이 찾는 작가는 아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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