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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전극복·과거사…숨가빴던 80년대 외교
외교부 공개문서 들여다보니…

정부, 88서울올림픽을 ‘화해’활용
中·北 끌어들이기 ‘한강개발계획’
美에 친서 보냈지만 결국 수포로

北, 유엔서 ‘南 인권 탄압’발표추진
김일성 조기 퇴진설 대책 세우기도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30년 전 치열했던 물밑 외교과정이 세세하게 적혀 있다. 특히 일본과 한국에서 연이어 처음으로 양국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당시 과거사를 둘러싼 양국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공산권 여러 국가와 화해 작업을 벌이려 한 정황도 공개됐다.

국제사회에서 공식, 비공식으로 북한과 치열하게 신경전을 펼친 과정도 포함됐다.

▶韓 정상의 첫 방일, 과거사 반성이 대전제였다=외교부가 30일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84년 우리 정부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우리나라 정상으론 최초로 일본을 국빈 방문하는 ‘무궁화 계획’을 세웠다. 특히 일본 식민지 지배를 상징하는 일왕의 과거사 언급 문제가 주요 관심사였다.

정부는 일왕의 과거사 반성과 관련, ‘무궁화 계획 대일 교섭 지침’이란 문서를 통해 “방일의 대전제이며 한일관계 미래상 정립의 전제이므로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국민감정 등을 감안, 최대한 강한 어조로 반성을 확보해야 방일 자체에 대한 국민의 납득을 구할 수 있다”고 지침을 세웠다.

이런 입장에 대해 일본 측도 “천왕(일왕)에 의한 과거사 언급은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고 우리 정부는 파악했다. 다만 일본은 일왕 발언을 외교적 교섭 사항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세웠고, 이에 우리 정부도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지시하는 등 물밑 외교전이 치열하게 이어졌다.

히로히토 일왕은 9월 6일 만찬에서 “금세기의 한시기에 있어 양국 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일왕의 첫 과거사 발언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냉전 극복 외교 절정=1988년 서울올림픽은 냉전시대의 종말을 알려야 하는 시대적 배경 속에 준비됐다. 1984년 당시 외교문서에는 이 같은 시대적 요구가 곳곳에 담겨 있다.

정부는 중국과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한 교두보로 일본을 주목했다. 당시 일본과 중국 정상 간 친밀한 관계라는 점을 고려, 일본이 중국을 설득해 중국이 남한을, 일본이 북한을 교차 승인하는 구상을 추진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한강개발계획’이란 이름으로 이 같은 작업을 추진했다.

정부는 1986년 아시안게임을 전후해 한중, 북일 간 교차 접촉을 개최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교차 승인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우리 정부는 일본 측에 이 같은 전략을 전달하고, 중국을 설득시켜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주한미국 대사를 통해 부정적인 입장을 공식 전달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며 요청했으나 미국은 신중한 입장을 반복했다. 또 미국의 공식 견해를 밝히기 전 한국이 일본에 먼저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한 데에도 실망감을 표했다. 결국 이 계획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소련과의 관계도 부침을 반복했다. KAL 여객기 격추 사건이 터진 후 우리 정부는 소련 외교관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지침을 재외공관에 내렸다.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를 무효화했다. 1988년 올림픽에 소련이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이유로 거론됐다.

▶북한과 치열한 신경전, ‘김일성 조기 퇴진설’에 촉각도=80년대 남북은 여전히 곳곳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당시 북한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을 거론하며 유엔에 남한 인권 탄압을 발표하려 했다. 1984년 1월 주제네바 한국대표부는 이 보고서와 관련, “80년 광주 사건을 거론하면서 아국을 비방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우리 정부에 보고했다. 우리 정부는 긴급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대사관과 유엔 대표부 등을 통해 각국 출신 위원을 접촉했다.

이후 실제 유엔 토의 과정에서 북한은 “타국의 인권에 관계되는 정치적 발언을 삼가라”는 주의를 받았고 그 결과 한국 관련 발언은 등장하지 않았다.

한편, 우리 정부는 1984년 김일성이 연내 퇴진한다는 소문이 접수되자 구체적인 대비책을 마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청와대, 총리실, 각 부처가 대거 참여하는 실무국장회의를 개최, 김일성 생존시와 사망시를 별도로 구별해 정부의 대북성명 내용까지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권력 승계 시 서방국이나 공산권 사회를 대상으로 김정일 정권의 비전통성을 홍보할 계획도 세웠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상수 기자/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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