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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2. 인도를 닮은 갠지즈강…그 유쾌한 만남
[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바라나시의 또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화장지나 물, 과자는 골목 구석의 작은 가게에서만 산다. 이젠 선량해 보이는 아주머니랑 인사도 하는 사이다. 가이드북을 뒤져 싸고 맛있다는 식당에 찾아가서 특별한 메뉴들을 먹어본다. 자주 가는 식당 주인과 눈인사도 하고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과 잠깐 얘기를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며칠 머무르니 이곳이 익숙해진다. 콧노래가 나올 만큼 가벼워진 마음이 느껴진다.



옮긴 숙소는 가트와 가깝다. 바로 계단을 내려오면 갠지즈다. 아침엔 가트로 나가 산책을 한다. 항상 똑같은 것 같아도 어제 못 본 장면이 있고 오늘만 펼쳐지는 진풍경도 있다. 생동감이 넘치는 가트의 아침이 좋아서 늦잠을 잘 수 없다.

가트를 걷다보면 뱃사공들이 말을 건다. 아침이나 저녁에 보트에 타는 여행자들이 대부분이지만 한낮에도 배로 갠지즈를 둘러보는 사람들도 있어서 호객을 하는 것이다. 숙소에서 가트로 나가는 길엔 언제나 말을 건네는 어린 보트맨이 있다.



강변의 가트들은 이름이 다르고 소유자도 있다고 한다. 왕이나 귀족의 소유였던 가트들이 팔려 공공건물이나 개인소유의 숙소로 개조되기도 한다. 소유자가 다르기에 그 모습도 다른 가트들을 걸으며 인도인들과 갠지즈강을 바라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이렇게 예쁘게 도색된 가트도 있다.

가트를 운동장 삼아 크리켓 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있고 배를 수선하거나 빨래하는 사람도 있다. 목욕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기본이다. 물을 담아갈 커다란 물통들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바라나시로 여행온 인도인들이 많다.



사람들이 머리를 밀고 있었다. 모두 상주인 걸까? 남쪽 가트에는 작은 화장터 가트가 하나 더 있다. 여행자의 눈에는 강변 가트에서 머리를 깎는 일들도 작은 화장터도 신기하기만 하다. 북쪽 마니까르니까 가트처럼 크지는 않지만 역시 바라나시에 온 시신들이 화장되고 있다. 연기는 여전하고 유족들이 지켜보는 장면도 그대로다. 여행자들이나 섣부르게 그 주머니를 노리는 사람들이 안보이니 북쪽 버닝가트 같은 번잡함이 없어 오히려 더 엄숙한 느낌이다.

가트의 작은 사원 앞이다. 아직 화로에 남은 온기에 기대서 햇살을 맞으며 바라나시의 행복한 개들이 취침 중이시다. 이런 장면들이 바라나시를 더 바라나시스럽게 한다.



한 인도여자가 턱을 괴고 벤취에 앉아 갠지즈강을 응시하고 있다. ​앉아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동행이 있을 것 같아 빈자리인지 물어본 건데 이 분도 혼자 바라나시에 온 여행자였다. 그녀는 펀자비나 사리차림이 아니라 청바지에 풍성한 셔츠를 입고 있다. 인도를 여행하며 본 모든 여자들은 사리나 펀자비를 입고 있었다. 인도 전통의상을 입지 않은 여자는 영화에서 봤을 뿐 실제로는 오늘 처음 만난다. 마흔 다섯이라는 이 언니는 얼굴도 동안이고 언어도 고급영어를 구사하고 있다. 바라나시에 혼자 여행왔다는 공통점에 서로 호기심이 발동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을 함께 먹기로 한다.

가이드북에서 점찍어 놓은 아시가트 근처의 피자리아에 가려고 했는데 그녀가 원하던 식당도 마침 거기다. 갠지즈강이 보이는 여행자를 위한 식당이라 외국인들이 바글거린다. 그녀의 추천한 메뉴로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한다. 그녀는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보통 인도인들과는 급이 다르다. 현재 인도와 우리나라의 정치 수장이 여성인 공통점은 물론 80년대의 민주화운동, 학생운동까지 언급한다. 알고 보니 그녀는 델리대학교 정치학 교수다. 이름은 몰리카. 인도에서는 보기 드문 독신여성이기도 하다. 정치학자이니 한국의 정치사도 잘 알고 있다.

200루피가 넘는 점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인도인과 식사를 해 본 것도 처음이다. 여태까지 만났던 인도인들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가난하고 못 배웠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녀가 배를 타자고 해서 남쪽의 갠지즈강을 둘러본다. 인도인과 함께 배를 타니 힘겨운 실랑이가 없어서 좋다. 그녀가 잠시 사공과 얘기를 나눈 후 배에 올라탄다. 겨울 한낮의 강바람이었지만 시원하게 느껴진다. 뱃머리에서 사진을 찍던 그녀가 강물을 두 손으로 떠서 나를 부른다. “이 물 좀 봐. 깨끗하지 않니?” 거짓말처럼 맑았다. 그녀도 갠지즈가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지만 그녀의 믿음이 그녀의 두 손에 담긴 물처럼 맑아 보였다.

배에서 내리니 벌써 5시가 넘었다. 한나절을 그녀와 함께 한 것이다. 배삯을 지불하려하자 괜찮다고 자기가 다 냈다고 한다. 인도인이 태워준 보트, 인도인이 보여준 믿음이 고마워서 감사인사를 하게 된다. 다시 메인 가트로 가야하니 여기서 작별해야 한다. 오늘 하루 내가 그녀에게 고마운 만큼 그녀도 나를 고마워하는 것 같다. 료와의 선약이 없었다면 몰리카와 2013년 마지막 밤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만남은 이별과 멀지 않다. 서로 사진을 찍고 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허그를 한다. 삶은 어차피 여행이라며 등을 토닥여주는 그녀의 목소리와 손길이 따스하다. 길 위에서의 우연한 만남과 한나절의 유쾌한 시간, 몰리카와의 작별인사가 메인가트로 돌아오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한다.



​부지런히 걸어 6시에 시작되는 뿌자를 다시 한 번 본다. 이 사람들 속에 앉아있는 현재를 즐긴다. 드디어 2013년 마지막 태양이 사라진다. 한국 인도 시차는 3시간 30분, 부랴부랴 호텔방에 들어와 가족들과 카톡으로 새해 인사를 나눈다.

어제 일본청년 료와 7시에 호텔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침에 숙소를 옮기면서 들은 얘기로는 7시부터 송년파티가 시작된다고 한다. 가트에서의 그는 친절하고 재미있긴 했는데 막상 식당에 가려하니 뻘쭘하다. 이 호텔에 온 것도 오늘이 처음이고 아는 사람이라고는 료 한 명인데 만일 파티장에 그가 아직 오기 전이라면 좀 쑥스러울 것도 같다.

식당에는 아직 사람이 많지 않다. 두리번거리며 료를 찾는다. 그는 케이라는 이름의 일본인 여자와 함께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해가 졌기 때문에 금세 어두워진다. 우리는 갠지즈강이 내려다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료, 케이 말고도 대략 스무 명 넘는 일본인들이 여기 있다. 이 호텔이 조금 비싼 곳이라 보통 배낭여행자보다는 단기간 인도에 오는 일본인들이 많은 것 같다. 실내 식당에 서양인 여행자가 몇 명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색하던 기분은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면서 단번에 사라졌다. 료는 졸업반 학생이고 케이는 중학교 교사다. 케이는 특이하게도 핀란드에서 교환학생을 했고 남미여행도 이미 다녀온 베테랑 여행자다. 옆자리 가쯔상은 북해도에서 어선 사업을 하는 사업가인데 자기가 “Fish Teacher”라며 농담을 한다. 료와 케이는 영어를 잘하고 가쯔상은 영어를 잘 못해도 어떻게든 의사소통하는 유쾌한 사람이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영어를 배우는 방법이 비슷하니 그 정서가 이해가 된다. 서툴어도 영어로 이야기해주는 다른 일본인들이 고맙다. 일본어를 교양과목으로 배웠던 게 도움이 된다. 말은 잘 안 나와도 대화를 들으니 잊었던 일본어가 자꾸 되살아나는 거다. 뉘앙스를 파악해 의미를 이해하니 그들도 웃고 나도 재미있다.

식사는 인도식 뷔페, 인도 맥주 킹피셔 한 캔씩이 기본이다. 술을 금지하는 힌두교, 그들의 성지 바라나시에서 갠지즈강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신다. 외국인인 나와의 대화는 아무래도 각자의 여행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오늘 같은 밤은 같은 모국어를 쓰는 저 많은 일본인들이 부럽다.



실내에선 몇 시간동안 인도 음악이 연주 되고 인형처럼 예쁜 무희가 춤을 춘다. 처음에는 앞에 앉아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취기가 오르자 함께 춤을 춘다. 일본인들이 그렇게 잘 노는지 처음 알았다. 다들 개별 여행자들인데 전부터 알던 사람들처럼 유쾌하게 즐긴다.

이 파티에 초대해준 료와 영어를 잘하는 케이는 고맙게도 계속 나를 챙겨준다. 시끌벅적한 파티가 새벽 1시가 넘자 사람들은 하나 둘 방으로 들어간다. 료는 다른 숙소에 묵는 케이를 배웅하러 갔다. 자꾸만 갠지즈강이 눈에 보인다. 낮과는 전혀 다른 적막에 싸인 가트를 바라본다. 숙소를 옮기기를 잘했다. 이 밤에 이런 고요함을 위험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이점이다. 생각이 사라질 만큼 하염없이 강만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를 부른다. “마담! 이리로 오세요!” 듣기 거북한 이 마담이라는 말은 영국식민지였던 인도에서는 일상적으로 여자를 부르는 존칭이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내가 야외식당에서 갠지즈를 보고 있는 사이 호텔 직원들이 식당 실내를 다 치우고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 이 사람들은 손님들이 파티를 하는 동안도 일해야 했던 직원들이다.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도 능숙한 직원, 호텔 차량 기사, 요리사, 요리사 보조 등 인도인 직원들이 열명쯤 옹기종기 모여 있다. 술 한 잔 따라주고 안마시니까 자꾸 권하면서 자기들은 거푸 잔을 비운다.

바라나시가 고향인 사람은 없었다. 거의다 북인도의 펀잡이나 남인도의 고아 같은 먼 지역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이다. 가족이 바라나시에 있는 사람은 한 사람 뿐, 다들 가족과 떨어져 일하는 사람들이다.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에 서너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한다며 술잔을 기울이던 요리사 아저씨의 얼굴에 피로가 역력하다. 일본인들의 비위를 맞추며 능숙한 일본어로 사람들을 웃기던 직원은 이미 술에 취해 자기가 하는 말도 모르는 것 같다.

​이 새벽에 샴페인을 구하러 식당에 들어온 러시아 여행자가 북한에 가봤다며 나에게 말을 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옆에 앉아 수다를 떤다. 강남스타일 노래를 아느냐며 내 앞에서 춤을 춰 보이는 그 사람 때문에 모두 한참을 웃는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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