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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통(外統)수]오락가락 삐라살포, 오리무중 정부대책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때아닌 대북 전단, ‘삐라’가 남북 관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삐라로 북한이 무력 도발을 운운하고, 우리 정부도 강력 대응을 천명합니다. 삐라가 한반도에 전쟁을 위협한다니, 순간 헷갈릴 뻔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지금은 21세기가 맞습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지난 23일 삐라 살포를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박 대표는 천안함 사건 5주기인 오는 26일 삐라와 함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더 인터뷰’의 DVD를 살포하겠다고 밝혔죠. 북한이 무력 대응 의사를 밝히면서 긴장감이 고조됐습니다. 이에 박 대표가 한발 ‘양보’했습니다. 26일까진 살포를 하지 않겠다는 발표였죠. 

단, 조건이 붙었습니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을 사과한다면 전단 살포는 영원히 중단할 것”이라고 말이죠. 북한은 천안함과 무관하다며 부인하고 나섰지만, 일단 전후를 떠나 전단 살포 중단 의사를 밝히면서 급한 불은 꺼진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 또다시 상황은 급변합니다.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이민복 대북풍선단장은 오늘 “풍향이 맞으면 언제든 비공개로 대북전단을 살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삐라는 그 어떤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견까지 더했습니다. 천안함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을 북한이 사과하더라도 삐라살포는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이 단장도 조건을 걸었습니다. “북한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면” 삐라 살포를 멈추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 단장은 작년 10월에도 비공개로 삐라를 살포한 바 있습니다. 당시 북한군이 고사총탄 수발을 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연천 지역 주민들이 삐라 살포를 막겠다며 직접 나서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단체마다 입장도 조건도 제각각입니다. 외국인 인권단체가 입국해 삐라 살포에 참여하고, 풍선 대신 드론 등 무인기를 활용하겠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방식, 입장, 요구사항 등이 모두 제각각입니다.

정부는 물론 원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삐라 살포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에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살포하고 주민의 위협이 명확해진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 원칙의 적용과 해석입니다. ‘공개적’, ‘주민의 위협‘, ‘필요한 조치’ 등의 표현이 전부 모호합니다. 26일 살포한다고 밝혔다면 ‘공개적’이지만 26일을 전후해 살포하겠다고 밝힌다면 이건 ‘비공개적’일까요? 연평도에서 살포하겠다고 밝힌다면 ‘공개’이겠지만, 날짜만 알린 채 장소를 밝히지 않는다면 이건 ‘비공개‘일까요?

‘주민의 위협’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군이 실제로 포격을 가해야 주민이 위협을 받는 걸까요, 아니면 북한군이 군사적 대응을 경고만 해도 주민은 위협받는 걸까요? ‘필요한 조치’는 삐라를 압수하고 물리적으로 접경지역에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하는 조치일까요, 아니면 경고하고 벌금을 부과하는 조치일까요?

각 단체가 제각각의 입장,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언론도 시민단체도, 그리고 사실상 정부도 명확히 원칙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좀 더 들여다보면 명확히 밝히지 못하는 정부의 입장도 한편 이해는 됩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죠. 삐라 살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면 간단하겠지만,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반발을 견뎌내야 합니다.

더 큰 고민은 자칫 북한에 밀렸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이죠. 북한의 ‘무대포’를 감안하더라도 삐라 살포를 고사총탄으로 대응하는 북한의 태도가 옳다고 볼 수 없으니까요. 삐라 살포 금지로 한발 양보하게 되면 자칫 남북 관계에서 계속 북한에 끌려갈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 입장이 중요한 건, 정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대북단체의 반발을 감수하든, 주민들의 반발을 감수하든 명확한 원칙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애매한 원칙은 책임을 전가하려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애매한 해석의 여지는 대북단체의 비난도 주민의 비난도 피할 수 있는 여지를 두는 건 아닐까 우려됩니다. 대북단체가 삐라 살포를 예고할 때마다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또 제각각의 해석이 나오는 걸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요?

삐라 살포 논란은 정부의 대북정책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삐라 살포가 남북 관계 회복의 디딤돌이 될지, 걸림돌이 될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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