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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랭이꽃 물드는 산꼭대기 미술관…예술, 나에게 말을 걸다
자연친화적 日 건축가 안도 설계
원주 오크밸리내 40㎡ 전체가 작품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심신 힐링
입구선 리버만의 붉은 조각이 환영
워터·스톤 등 정원곳곳 주제별 작품
올 첫 기획전엔 한지 100여점 눈길
독특한 제임스 터렐관 안보면 ‘후회’


예술과 여행. 심신을 힐링하는 데 이만한 명약이 있을까.

‘뮤지엄산(SANㆍ관장 오광수)’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곳이다. 서울 도심에서 약 1시간 반. 6번 국도를 타고 한강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산꼭대기 미술관인 뮤지엄산(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월송리)이 나온다. 한솔그룹이 운영하는 스키장, 골프장, 콘도로 이뤄진 복합리조트 단지 ‘오크밸리’ 내에 위치해 있다.

뮤지엄산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2013년 5월 문을 열었다. 이 곳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역작이기도 하다. 이 고문은 뮤지엄을 염두에 두고 수십년간 미술품 컬렉션을 수집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 면적 약 40㎡, 건물 면적만 2600㎡(800평)에 달하며, 한해 10만여명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 
① 뮤지엄산은 웰컴센터, 본관 뮤지엄, 그리고 제임스터렐관 세 개 건물로 이뤄져 있다. 웰컴센터 앞에 설치된 알렉산더 리버만의 붉은색 대형 철제 조각물이 관람객들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짧은 주말을 이용해 테마가 있는 여행을 원한다면, 특히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다면 가볼만 하다. 당일 코스로도 좋고, 1박 2일 인근 스키장이나 골프장을 들렀다 오는 길에 들르기에도 좋다.

▶자연 품은 미술관, 그 자체로 예술이 되다=웰컴센터, 본관 뮤지엄, 그리고 제임스터렐관 세 개 건물로 이뤄진 뮤지엄산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빛, 물, 콘크리트를 이용해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제의(祭儀)적인 안도 건축물의 특징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소장품 상설전을 제외하고 1년에 두 번 기획전이 열리지만 그저 미술관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미술관 내에는 ‘워터가든’, ‘플라워가든’, ‘스톤가든’이라는 이름이 붙은 정원들이 있다. 인근 지역에서 가져온 돌들로 이곳을 채웠다. 노랗지 않고 노르스름하거나, 하얗지 않고 희끄무레한 빛깔로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물 외벽과 스톤가든은 파주석과 원주 귀래석으로 만들어졌다.

워터가든 바닥에 깔려있는 검은색 조약돌은 충남 서산의 해미석이다. 깊이가 20㎝ 밖에 되지 않는 워터가든은 검은색 조약돌이 햇빛에 반사될 때마다 마치 거울처럼 조형물들을 비추며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끼나 부유물 없이 맑고 깨끗한 워터가든은 2주에 한번씩 물을 빼고 청소할 정도로 관리가 철저하다.

미술관은 곳곳이 예술품으로 가득하다. 웰컴센터 앞에서는 가장 먼저 알렉산더 리버만(Alexander Liberman)의 붉은색 대형 철제 조각물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아치형 조각물의 그림자가 물에 비치며 어른거리는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이내 마음이 고요해진다. 
② 플라워가든을 지나 본관 뮤지엄으로 가는 산책로는 자작나무 숲이 운치를 더한다. ③ 전시장에는 백
남준의‘ 파우스트’ 연작 중 1점이 전시돼 있다. 오로지 백남준 작품 1점으로만 채워진 공간이다. ④ 빛과 공간으로 극적인 순간을 빚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 간츠펠트’. 이 공간에서는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사방 경계가 무너진다.

웰컴센터를 지나 뮤지엄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플라워가든에는 마크 디 수베로의 ‘제라드 먼리 홉킨스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대형 키네틱(Kinetic) 조각이 있다. 폐허가 된 도시 건축물 잔해들을 이용한 정크아트 작품다. 시인 홉킨스의 ‘황조롱이새(The windhover)’라는 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바람결에 따라 거대한 강철 조각이 움직이며 시적 감성을 더한다.

이 밖에도 실내외 곳곳에서 무심한 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헨리 무어, 알베르토 자코메티, 베르나르 브네의 조각 작품들이 건축물의 명상적인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미술관을 둘러싸고 펼쳐진 자연 풍광도 예술 그 자체다. 새순이 올라오는 4월에는 인근 산은 온통 연둣빛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 5월이 되면 플라워가든 전체가 패랭이꽃으로 붉게 물들며 마치 설탕을 굽는 것처럼 달큰한 냄새로 가득해진다. 플라워가든은 작약, 수국, 붓꽃, 미스김라일락, 영산홍 등이 철따라 고운 빛을 뽐낸다. 플라워가든 끝자락에는 하얀색 자작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좁게 난 자작나무 숲길을 통해 빨려들어가듯 걷다 보면 본관 뮤지엄이 나온다.

▶한지의 따뜻함, 현대미술과 만나다=뮤지엄산에서는 올해 첫번째 기획전시로 ‘하얀울림-한지의 정서와 현대미술’전을 마련했다. 작품의 매체(Media)로써 ‘조연’에 불과했던 한국 전통의 한지를 ‘주연’격으로 무대에 올린 전시회다.

한지를 소재로, 혹은 주제로 작업하는 국내 작가 40여명의 작품 100여점이 전시장(청조갤러리) 1관, 2관, 4관을 채웠다. 여기에는 박서보, 윤형근, 정상화 등 최근 미술계에서 블루칩으로 꼽히는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한지가 갖고 있는 따뜻한 정서가 미술관과 조화를 이룬다. 전시는 8월 30일까지다.

기획전시 이외에도 꼼꼼히 둘러봐야 할 전시장이 두 곳 있다. 그 중 하나는 백남준의 ‘파우스트’ 13개 연작 중 7번째 작품 한 점이 설치된 제3 전시실이다. 뮤지엄산은 백남준 작품 1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관은 뮤지엄산의 명소다. 빛과 공간의 마술로 유명한 미국의 설치미술가 터렐의 신비로운 작품들을 건물 전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제임스터렐관 내에는 3개의 공간이 각각 하나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 중 ‘스카이스페이스’와 ‘호라이룸’은 자연 그대로를 보는 공간 작품이다. 스카이스페이스는 천정 일부가 뚫려 있는데 일출, 일몰 등 태양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 문을 닫으면 ‘스페이스디비전’이라는 이름으로 빛을 이용한 또 다른 작품이 된다. 한 공간에 2개의 작품이 존재하는 셈이다. ‘웨지워크’와 ‘간츠펠트’ 공간에서는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사방 경계가 무너진다. 초현실의 세계에 나홀로 붕 떠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갤러리 투어는 1만8000원(성인 기준)이지만 제임스터렐관을 포함한 미술관 관람료는 2만8000원이다. 서울 주요 미술관의 관람료가 1만원 안팎인 것에 비하면 비싼 편이다.

오광수 뮤지엄산 관장은 “국공립 미술관보다야 비싸지만 비싼 돈을 내고 봐야 본전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보지 않느냐”고 웃으며 말한다. 이 곳에서는 단풍나무, 모과나무 한 그루도 빼놓지 말아야 할 감상 포인트다.

글·사진=(원주)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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