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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1. 신을 부르는 향연 뿌자…주문을 외워봐
[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6년 전 이곳 바라나시에서 묵었던 엘레나라는 게스트하우스가 호텔이 되어 있다. 그땐 둘이서 100루피에 묵었던 가난한 여행자의 숙소였는데 오늘 싱글룸 880루피도 싸다고 예약을 했다. 물가가 오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리모델링되어 중급 호텔로 바뀐 듯하다. 혼자 떠나는 여행, 내게 숙소는 큰 의미가 없지만 내일과 모래는 특별한 날이니 예외로 한다. 조식을 주는 전망 좋은 호텔에서 송구영신하고 싶다.

아침의 가트를 산책하고 가트에서 가까운 가게에서 생수 한 병을 산다. 유쾌하게 보이는 주인이 한병에 15루피인 생수를 30루피라고 농담을 한다. 재미있는 사람이어서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더니 호탕하게 웃는다. 옆에서 인도 청년 두 명이 온 동양인 남자와 장난을 치고 있다. 인도 청년 두 명은 점원이고 동양인은 ‘료’라는 이름의 일본인 청년이다. 오랜 친구인 듯 장난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성격이 서글서글한 료는 처음 만난 나에게 스스럼 하나 없이 짜이 한 잔을 사주기도 하고 카메라 캡을 잃어 버렸다니까 같이 찾아주고 걱정도 해준다. 가게의 인도인들과도 처음 만나는 사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잘생긴 일본 청년은 내가 예약한 바로 그 숙소 ‘Palace on steps’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내일 그 호텔 레스토랑에서 파티가 있다며 내일 7시에 만나자고 한다. 외로운 여행자는 이 만남이 너무 감사하다.


그렇게 내일을 기약하고 료와 헤어져 다시 혼자가 되었다. 가트의 가게에 서서 나눈 이야기들이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혼자 하는 여행은 당연히 외롭다. 자청한 것이기에 즐길만하기도 하고, 못 즐기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즐거운 순간도 많다. 혼자 다니면 여럿일 때보다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이 귀한 것도 알게 되고 고독의 순간이 소중한 것도 깨닫는다.

어제 북쪽 버닝가트에 두 번이나 갔으니 오늘은 메인 가트에서 남쪽으로 걷는다. 강에서 빨래를 해서 가트변에 말리는 사람들이 있다. 호텔에서 나온 시트나 베갯잇 같은 것도 있고 그냥 개인의 것도 있다. 한창 빨래 널기 바쁜 부모 옆에서 아이가 웃고 있다. 사진을 찍어서 액정화면을 보여주니 너무 재미있어한다. 액정에 찍힌 제 얼굴을 보고 까르르 웃고 또 본다. 어려보이는 아이 엄마도 배시시 웃고 있다.


아이의 웃음이 예뻐 한참동안 놀아주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카메라 액정 속 자신을 보며 갸우뚱거리던 표정과 저 맑은 웃음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별로 해 준 것도 없는데 오히려 아기 때문에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

주인 없는 개들이 새끼를 낳아 어떻게 기르나 걱정한 건 기우였다. 골목의 개들에게 먹다 남은 짜파티를 챙겨주는 손길들을 보면 안심이 된다. 가트의 어떤 사람은 먹지도 않은 새과자 봉지를 뜯어서 개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바라나시에서는 배는 고파도 굶어 죽는 동물을 없을 것 같다. 하긴 시장의 복잡한 길 위에서 미동도 않고 늘어져 자고 있던 개들을 보았을 때 알았다. 개나 소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길 한복판에 누워있어도 누군가 발로 차거나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 별로 없다. 여긴 동물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다.


깨끗이 청소된 가트 계단에 주저앉아 풍경을 본다. 부서진 배 옆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소 두 마리가 바라보고 선 모습이 재미있다. 눈길 가는대로 풍경을 즐긴다. 오래 앉아있으니 할아버지 한 분이 슬쩍 옆에 다가와 앉는다. 아들과 손자 자랑을 늘어놓더니 자신이 전직 교사였다고 한다. 은퇴한 지금은 철학자라고 한다.

무슨 소린가 싶어 계속 이야기를 듣는다. 나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한다. 머리에 손을 얹고 무슨 말인가 힌디를 중얼거리더니 끝났다면서 나와 나의 가족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마자 그가 외친 말은 “텐 루피!”다.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다가와서 말하기에 들어주고 이야기 나누고 축복을 해주고 싶다고 하기에 오케이했을 뿐이다. 바로 액수 정해 돈 달라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뺀질뺀질해 보인다. 인도인들이 잘하는 그 말 “As you like”였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다. 단호히 “노!”하고 일어서는데 뒤통수가 따갑다.


6시에 시작되는 뿌자를 메인 가트에서 보기 위해 5시쯤 가트로 다시 온다. 한 시간 전 쯤 되면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는다. 혼자 앉으려니 심심할듯해서 오늘은 옆에 앉을 사람을 물색한다. 할머니 두 분이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고 있다. 저 옆에 앉아서 뿌자를 봐야겠다.


할머니들 옆에 가서 말을 건다. 외국인 여자가 말을 시켜서 신기한지 수줍게 웃으시며 좋아한다. 영어로는 한마디도 말이 안 통하지만 내가 아는 힌디어 몇 마디와 바디랭귀지로 의사소통이 된다. 이럴 때 좋은 것은 역시 카메라다. 액정을 함께 보며 할머니들과 셀카를 찍어서 보여주니 무척 재미있어 한다.

할머니들과 노는 사이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빈자리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해는 지고 뿌자가 시작된다. 


“옴~” 하는 소리로 시작되어 주문을 외는 듯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장대에 매달린 종들은 쉼 없이 울리고 제단 위의 브라만들은 신에게 제사를 시작한다. 꽃을 뿌리기도 하고 향을 피우고 불을 돌리기도 하면서 신을 부르는 것이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뿌자가 좋다. 신을 부르는 온갖 소리와 몸짓들이 갠지즈강에 퍼져 나간다. 옆에 앉은 인도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는 것도 좋다. 가끔 뒤를 돌아본다. 이방인은 알아듣지도 못한 신을 향한 기원이 경건하게 들린다. 빈디를 찍는 바구니가 돌려지고 헌금처럼 돈을 내는 사람도 있고 내 옆 할머니들처럼 경건히 빈디만 찍는 사람도 있다. 


뿌자가 끝나고 사람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 무렵,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귀여운 남자 아이가 빈디를 가지고 나에게 왔다. 내가 망설이자 “노 플라블럼!”을 연발하며 괜찮다는 눈짓을 한다. 호기심에 이마를 내밀고 아이는 내 이마에 빈디를 찍어 준다. 그리고 아이의 입에서 속사포로 나온 말은 “텐루피!”이니 어이가 없다. 낮에 가트에서 만난 자칭 철학자 할아버지와 똑같은 반응이다.

아이가 귀엽기도 하고 맹랑하기도 해서 이건 “빅 플라블럼”이라고 응수해준다.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아저씨가 미소 지으며 한마디 한다. 인도에서 “노 플라블럼”은 때로는 돈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아저씨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가 귀엽기도 해서 10루피를 준다. 돈을 손에 쥔 아이는 빈디 바구니를 들고 인파속으로 사라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신전에서 정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 종교는 없지만 수천 년을 이어온 그들의 믿음이 순수하다는 것은 알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외로운 여행자에게 말을 걸어주고 시간을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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