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겁없이 소쿠리에 자유여행 담은 ‘이단아’
호기심·개척의지로 뭉친 정창호 소쿠리패스 대표…“똑같은 여행은 NO…이해하고 느끼는 라이프 공감 서비스”
“호기심과 개척의지는 변신의 어머니”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얘기한다. 변화는 생존의 관건이며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도 한다. 그런데 변화가 삶이요 즐거움인 소쿠리패스 여행사의 정창호 대표에게 그런 천성을 타고난 것은 요즘 시대 큰 행운이다.

개척은 마음이 가는 사람과 대상물의 특성을 잘 파악해 우리의 정신적, 물질적 자산을 키우는 과정이다. 아름다움과 감흥을 지닌 어떤 것과 그것을 만나고 싶어하는 내 이웃 사이를 연결해주는 ‘여행 디자이너’ 정 대표의 소명은 여행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기반으로 열정 어린 개척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정창호 소쿠리패스 여행사 대표는 새로운 것을 접하면, 소년처럼 잘 감동한다. 그리고는 음미하듯 다시 살펴보면서 첫 감흥을 검증한다. 서울 토박이 같지 않은 시골스런 표정에 웃음도 많다. 뭐든 받아들일 수 있다는 편견없는 태도, 호기심에 접근했다가 제대로 감동받으면 끝까지 파헤치는 끈기가 어우러지면서, 요즘 대세로 자리잡은 ‘자유여행(FIT)’ 인프라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영혼을 나누는 호기심=눈 내린 센트럴파크는 영화 ‘러브스토리’의 배경이고, 맑은 날엔 뉴요커의 조깅, 웰빙 공간이다. 대표적인 뉴욕 명소라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지만, 센트럴파크 북쪽에 있는 ‘소울 문화거리’를 찾는 사람은 드물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음식문화가 접목된 소울 푸드(soul food)를 즐길 수 있고, 재즈 예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소울푸드 중에서 정 대표가 가장 높이 평가했던 실비아(Sylvia) 레스토랑, 재즈의 원조들이 감성 어린 음악을 만들어내던 코튼클럽(Cotton Club), 천사의 목소리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가수 사라 보간이 초년병 시절 무대 ‘아폴로 극장’과 ‘아마추어 나이트’, 비밥이 탄생한 ‘민턴스 플레이하우스’, 재스댄스의 메카 ‘할렘클럽’ 등 문화명소가 즐비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다녀가면서 안전한 문화 거리가 됐다.

“와우, 대박!” 정 대표는 이것을 고국의 이웃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참을 수 없다. 식당과 극장 주인들을 만나 “한국 분들이 많이 오시도록 할테니 할인 가격으로 입장하게 해 달라”고 조른다. 콧방귀를 뀌어도 정대표의 설득은 헌신적으로 사랑하던 여자친구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하는 소년 처럼 집요하다.

▶꿈꾸는 소년, 컴퓨터에 미치다=정 대표의 글로벌 네크워크 구축과정은 윈윈의 비즈니스 마인드에 이웃에게 좋은 것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충정이 덧붙여지기에 성공을 거두는 때가 많다. 그래서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저, 고객들한테 사랑받을 자격 있습니다”라고.

‘카타르시스 대박’을 이끄는 단초는 여행자의 마음을 잘 아는 디자이너의 호기심이다. 소쿠리는 대나 싸리로 엮은 정감 어린 바구니인데, 이런 뜻은 고객이 붙였다. 원래는 ‘So Curious’ 즉 ‘호기심 충만하다’는 뜻이다. 두 개의 의미는 이제 하나가 되었다. 황학동 만물시장 나들이때처럼, 정창호 콜렉터의 호기심이 발굴해낸 진열품들 앞에서, 이웃은 ‘내 멋대로 가는 멋진 여행’의 소품을 챙기면서 여행전부터 감성쇼핑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남들보다 어학과 역사, 지리를 잘하던 정창호는 중학교때 컴퓨터에 미쳐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원리를 깨우친다. 1986년 서울 홍은중 3학년때 교내 PC경연대회에서 우승한 뒤 서울시 대회에서 본상을 탔다. 세운상가에서 살다시피하면서 롬팩 끼우는 작업은 물론이고 부품을 직접 조립했으며, 프로그래밍도 했다.

▶문리양도(文理兩道)의 미학=그러나 공대를 가지 않았다. 한국외대에서 불어를 전공하면서 문화, 무역, 관광 등의 매력을 느끼게 됐다. 1996년 프랑스 무역회사 SAFCO의 아프리카 콩고지사에서 일하다 다시 남아공 회사 아프로텍스로 스카우트된다. 아프리카에서의 2년은 흥미진진했던 모험과 개척의 나날들이었다.

정사장은 자신의 IT 전문지식을 활용해 고객관리관계(CRM) 및 기업자원관리(ERP)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철저히 이 회사의 오프라인 사업과 연동한 컴퓨팅체계였다. 새로운 아이템을 개척하면 고객 성향에 맞는 정보를 계속 지원하고, 이같은 일련의 과정이 회사의 재정 변화 및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손쉽게 알수 있도록 함으로써, 마케터들의 행동양식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호기심-개척-고객 연결-예약-새로운 제안-마케터 전략수정 등 오프라인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이를 컴퓨터프로그램화 하는 정 대표의 업무 특성은 프랑스-아프리카 생활과 귀국후 터잡은 티켓링크 근무때까지 줄곳 이어졌다. 연대세 정보대학원 과정 이수를 통해 더욱 심화된 그의 IT전문성은 희한하게도 여행사 창업 구상으로 이어진다. 그의 호기심은 어학-역사-지리-전자공학-무역-관광비즈니스를 기기묘묘하게 한 덩어리로 이어준다. 호기심과 이웃에 대한 애정이 빚어낸 문리양도(文理兩道)의 미학이다.

▶자유인에게 가치있는 자유를 선사한 그녀=정 대표의 자신감 어린 전직(轉職)과 변신의 배후엔 같은 과, 같은 학번의 부인 이재숙씨가 있었다. 창호가 “나 이거 해보려는데 어때?”라고 하면 재숙은 “와, 대박…그거 이렇게 해봐”라고 맞장구를 쳐줬다. 재숙은 늘 그랬다. 항상 북돋워주고 아이디어까지 얹어주는 친구, “괜찮아. 이렇게 하면 될거야”라면서 토닥이는 친구, 쟤 아니면 못살 것 같은 친구는 절대 남한테 시집 보낼 수가 없다. 창호에게 어느날 갑자기 여자로 보였던 재숙. 8년 친구가 돌연 연인이 됐기에, 정 대표도 ‘남녀사이엔 친구가 없다’는 가설을 뒤늦게 인정한 케이스. 동종업계 종사자이기도 했던 이재숙씨의 믿음과 격려는 정 대표가 사방팔방으로 호기심과 개척의지를 발산한 결정적인 힘이었다.

IT 벤처열풍, 그리고 2~3년 뒤 찾아온 벤처들의 쇠락이라는 시대상은 오프라인 마케팅과 온라인 시스템 구축능력을 겸비한 정대표에겐 새로운 비즈니스 의욕을 불태웠다. 관광업 분야가 IT시스템 분야에서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간파한 뒤 ‘가치창조(Value Creating) 비즈니스’ 복안을 완성한다.

2004년 창사 당시 사업 동기는 세 가지. 여행이란 가보고 싶은 곳에 가서 만족과 배움을 얻는 것인데, 개성 강하다는 한국인들은 차려진 밥상(패키지)에만 의존하는 아이러니, 여행을 참맛을 느끼는 자유여행이 유럽과 일본에서 대세가 되어가던 시대적 트렌드, 여행객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디지털 분석과 응대 등이다.

▶자유여행 시대 연 선구자=정 대표의 사업은 고교때 세계지리를 배우면서 나도, 내 옆짝도 가보고 싶었던 곳, 여러 언어를 체득하고 해외 무역회사를 다니면서 발견한 지구촌 곳곳의 매력, 패키지 깃발 아래 몰려다니느라 이웃들이 놓치고 있던 감성공간들을 비즈니스 파트너로 개척한 뒤, 값 싸게 우리 국민에게 연결해주는 일이었다.

첫 상대는 파리교통공사(RATP)였다. “한국인들이 대거 몰려와 파리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그게 말이 됩니까? 관심 없어요”라는 당국자를 매일 찾아가 삼고초려했더니, “오든지 말든지, 할테면 해보쇼”라면서 허락한다. ‘기대감 제로(0)’ 분위기 속에서 독점 할인판권을 아시아 최초로 얻은 것이다.

시장 반응은 불과 몇 달 후 대박으로 나타난다. ‘파리를 호흡하기 위해 지하ㆍ지상철과 버스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다’면서 하루쯤 패키지 대열에서 이탈하고픈 여행객의 ‘자유여행(FIT) 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여러 여행사가 패키지 속에 ‘자유시간’ 프로그램을 부분 도입한 것도 이 즈음 부터이다. 소쿠리패스는 자연스럽게 기존 여행사들과 파트너가 됐다.

▶헤르만헤세 처럼=파리대중교통이 소쿠리패스에 함락되자, 런던, 뉴욕, 오사카, 이스탄불 등 세계적인 7개 관광중심도시의 대중교통 패스 판권과 이들 교통망에 인접한 감성공간들이 우루루 소쿠리에 담겼다. 소쿠리 네트워크는 2004년 창업하던 해 20곳에서 10년만에 25배 폭증해 500곳을 넘어섰다.

이제 정 대표가 꿈꾸는 여행서비스는 ‘라이프 공감형’이다. 참 좋은 구상이지만 ‘상품화’가 어렵기에 공급자들이 주저하는 것이다. 이는 “여행이란 어떤 도시나 풍경을 자신의 정신적 소유물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낯선 것에 귀 기울여 그것의 본질적 비밀을 끈기 있게 알아내려 노력하는 행위”라는 헤르만헤세의 지론과 통한다. 공감, 동화, 다름의 존중과정이라는 헤세의 여행철학을 정 대표는 가장 좋아한다.

정 대표는 최근 아시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와 가까운 아시아가 ‘라이프 공감형’ 여행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에서다. 이미 일본,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등지에선 상당한 진척을 얻었다. 새로운 시장은 늘 설렌다. 설렘은 희열의 전조이지만, 11년전 파리 개척때 그랬듯이 아시아에서도 난관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정대표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앞두고 초심(初心)을 가다듬는다. 

글ㆍ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