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31>파킨슨병의 개척자…상계백병원 신경과 백종삼 교수
[헤럴드경제=김태열 기자]“치매와 파킨슨병 둘 중 어느 것이 더 무서울까요? 둘 다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퇴행성질환이지만 파킨슨병이 더 무서운 건, 치매는 정작 본인은 치매인지도 몰라 큰 스트레스를 안받지만 가족들이 큰 고통을 받는 반면에 파킨슨병은 정신은 멀쩡한데 온몸이 꽁꽁 묶인것 같은 서동(몸이 느리게 움직이는 증상)과 경직, 손발떨림을 겪으면서 점점 몸이 말을 안듣게 되는 공포감과 그로인해 외출을 꺼려 사회와 단절되는 심리적 상실감, 쓸모없는 사람이 됐다는 자괴감 등으로 정신까지 파괴된다는거죠.”

파킨슨병은 난치병이다. 치매와 더불어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으로 65세 이상 나이가 들면 100명중 1명 정도 발병한다.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히틀러, 처칠, 덩샤오핑, 마이클제이폭스, 김근태 의원과 같은 유명인이 걸린 질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수전증처럼 손발이 떨리고 루게릭병처럼 몸은 굳어간다. 입에 숟가락이 생각대로 안 들어간다. 몸은 밧줄에 묶여있는 것 처럼 답답하다. 이렇다 보니 환자와 보호자 모두 괴롭다.

“파킨슨병은 전형적인 퇴행성질환으로 누구나 발병할 수 있습니다. 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점차 없어지면서 생기는데 최근에는 30~40대 젊은층에서도 생기기도 합니다. 치료약은 현재 널리 쓰이는게 ‘레보도파’라는 것이 거의 유일한데, 로버트 드니로가 파킨슨병 환자로 열연한 영화 ‘사랑의 기적(Awakenings)’이 이 약을 처음 만들었을때의 이야기를 다룬 거예요. 그런데 이 약도 완벽한 치료제는 아닙니다. 레보도파는 파킨슨병으로 인해 부족해진 도파민을 인위적으로 보충해주는 약인데 처음 복용한 환자의 80~90%가 약효에 만족스러워할 만큼 약물의 효과는 매우 좋지만 10여년이 지나면 약물내성이 생겨 약효 소진현상이 나타납니다. ‘약발’이 점점 떨어지는 거죠.”

<사진설명>상계백병원 신경과 백종삼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그렇다면 파킨슨병은 어떻게 치료하고 관리해야 할까. 15여년간 파킨슨병을 치료해오고 있는 상계백병원 신경과 백종삼 교수는 “파킨슨병의 치료 목적은 혼자 남의 도움없이 오랫동안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며 “소통이 잘 되는 편안한 의사를 만나 정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백 교수는 전공의 시절부터 의학적으로 정복하지 못한 인간의 뇌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뇌를 다루는 신경과에 지원했지만 20여년 전 국내에선 아직 파킨슨병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제대로 공부를 했던 전문가 역시 거의 없었다. 

“제가 연세대 원주의대 87학번인데 당시에는 파킨슨병을 전공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본과 3학년때 전공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당시에는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이명식 교수님과 서울대병원 전범석 교수님 정도만 계셨죠.”

백 교수는 이명식 교수 밑에서 전공의 생활을 보냈고 이후 세계적 파킨슨병 치료의 석학이며 세계파킨슨병학회 회장을 역임한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랭(lang) 교수 연구원으로 파킨슨병 치료의 학문적 기반을 닦았다. 토론토대학의 파킨슨병센터는 미국의 콜롬버스대학병원 파킨슨병센터와 영국의 퀸스퀘어 파킨슨병센터와 함께 세계 3대 파킨슨센터 중 하나다.

백 교수가 속한 상계백병원 파킨슨병클리닉에서는 세계적인 석학에게 자문을 구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백 교수는“랭 교수 연구원생으로 있을 때 당시 전세계에서 모여 함께 공부하던 동기들이 현재 세계 각지에서 파킨슨병을 치료하고 연구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학문적 교류와 환자 치료 정보들을 공유하며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백 교수는 백병원 산하 5개병원의 파킨슨병 전문교수들과 함께 ‘백중앙의료원 파킨슨병 디너 심포지엄’을 5년 전 부터 매년 봄에 국내 파킨슨병을 연구하는 교수들을 대상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는 백병원의 장점을 십분 살린 대표적인 모임 중 하나로, 5개 백병원이 모여 치료사례를 서로 공유하고 토론하는 백병원 계열의 유일한 단일질환에 대한 심포지엄이다.

파킨슨병의 진단은 다른질환에 비해 섬세하고 객관적인 진단이 필수다. “파킨슨병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전문의가 직접 머리부터 발끝까지 만져보고 관찰하고 증상을 자세히 청취한 후에 판단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초진환자의 경우 30분, 재진환자의 경우 10분 이상 진료가 필요하고 주어진 짧은 진료시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킨슨병 환자들만 보는 진료날짜를 따로 정했어요.”

백 교수에게도 잊지못할 환자들이 많다. “10여년 전부터 저희 병원에 다니시던 70대 초반의 환자분이데 점점 예후가 안좋아지더니 병원을 못오시더라구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하시고 과거에 경제개발5개년 계획도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총기가 넘치시던 분이 몸이 뻣뻣해지다가 거동을 잘 못하시니까 아예 바깥출입을 안하시게 된거죠.”

가슴아픈 얘기도 나왔다. “사실 제 장인어른도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셨다가 지난해 돌아가셨어요. 장인어른은 서울대 공대 출신의 미사일전문가로, 당시 박정희대통령에게 발탁돼 국산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일조를 하셨죠. 장인어른은 제가 치료했는데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외출도 거의 못하셨어요. 나가면 자꾸 넘어지니까 발걸음 한발 떼는게 무섭다고요. 파킨슨병 환자가는 사실 운동신경이 저하되니까 음식물을 잘 삼키지 못해 음식을 먹다 목에 걸리거나 폐로 들어가서 폐렴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장인어른도 갈비찜을 드시다가 목에 걸려서 돌아가셨죠.”

백 교수의 최근 관심은 이 병이 유발하는 비운동장애증상이다. “과거에는 파킨슨병이 생기면 주로 운동질환으로 초점을 맞춰서 약도 나오고 그랬는데 여전히 삶의 질은 나아진 게 없어요. 사실 이 병은 예후가 중요하기 때문에 우울증 등 비운동질환을 해결해줘야 합니다. 파킨슨병이 생기면 성격도 비정상적으로 바뀌곤해서 사실 환자중에 정신질환자나 의처증, 의부증이 있는 경우도 많아요. 뇌의 전두엽이 망가지면 성격자체가 난폭해지고 절제가 안되기 때문이죠. 운동질환은 더 이상 나올 약을 없고 이제 이러한 분야를 개선하는게 파킨슨병 연구의 향후 핵심 연구과제입니다.”

그는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제가 배낭여행 1세대예요. 91년 본과 3학년 겨울방학때 미국의 의대를 다 가보고 싶어서 당시에 가지고 있던 286컴퓨터를 팔아서 웬만한 곳은 다 돌아봣죠. 아이들은 2명인데 장녀가 올해 고3입니다. 제가 외국학회를 가면 꼭 딸을 데려갔는데 그 영향인지 의사를 하고 싶어 합니다. 제가 ‘딸바보’라 학부모 회의때 웬만하면 갑니다. 딸도 파킨슨병을 전공한다고 하니 대견하죠.”

kt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