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누가 앉았을까, 세월의 켜 쌓인 이 의자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5~6년전 동대문에 큰 불이 났을 때다.

동대문 오복순대국집 주인은 화재로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던 앞집 가게에서 버린 벤치를 얻어 왔다. 그 집 주인이 7년 가까이 썼던 의지다. 오복순대국 집이 동대문에 자리잡은 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4번 주인이 바뀌었는데, 지금 주인이 가게를 시작하면서 이 의자를 주워왔다.

동대문 재봉사가 썼던 나무 의자에는 낡은 천이 칭칭 감겨 있다. 딱딱한 좌판 때문에 불편해서 재봉일을 오래하기 힘들었던 재봉사가 봉제공장 자투리 원단을 감아 푹신한 의자를 만들었다. 

오복순대국 의자.

남대문 효성사 의자는 손님들이 지나다니는 길가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스툴이다. 추운 날씨에 밖에 앉아 일하는 아내와 어머리를 위해 주인 아저씨가 직접 나무를 구해 제작했다. 쉽게 넘어지지 말라고 다리가 없는 육면체 형태로 만들었고, 한쪽 면을 터 놓은 뒤 그 안에 난로를 넣어 놨다. 가족들이 따뜻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한 아저씨의 배려다.

영광 목욕탕 의자, 문래동 철공소 의자 …. 세월의 켜가 빚은 의자 예술작품들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전시장에 등장했다. DDP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기획전시 ‘함께 36.5 디자인’전에서다. 수십년 손때 묻은 의자들은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고졸한 멋이 넘친다. 

재봉사 의자.

DDP가 오는 21일 개관 1주년을 맞는다. ‘디자인 창조산업의 발신지’를 추구하며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는 DDP는 1주년 기념 기획전시에서 공존, 공생, 공진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정상과 비정상, 차이와 차별의 경계를 없애고 ‘함께’ 하고자 하는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 전시다.

쓰레기 없는 전시를 표방하며 산업 폐기물로 버려진 전선 케이블, 동대문의 자투리 천, 업사이클링 목재 등을 활용해 전시관을 구성했다. 버려진 자원에 창조적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의미다.

‘공존’라는 의미를 잘 담아내고 있는 작품은 ‘성수동 신발 형틀’이다. 신발을 만들 때 쓰는 플라스틱 틀인데, 사이즈가 모두 다른 형태로 500개가 전시됐다. 성수동 수제화거리 업체들과 협업한 이 작품은 ‘규격을 넘어선 배려’를 전한다. 

윤태일씨가 만든 체인조명.

‘공생’의 의미는 ‘노숙자들과 함께 한 자전거 리메이크 프로젝트’에 담겼다. 디자이너들과 노숙자들의 협업으로 이뤄진 작업이다. 자전거 체인을 이용해 만든 샹들리에 조명 등은 ‘공생’이라는 기획 의도를 넘어 작품성도 뛰어나다. 일부 조명 작품 들은 경매에도 부쳐질 예정이다.

‘공진’은 유모차, 자전거, 휠체어 등 ‘탈 것’으로 형상화했다. 0세부터 100세까지 인간이 한 일생동안 이용하는 탈것들이 윤회를 보여주듯 원 형태로 배치돼 있다. 

DDP 야경

전시 하이라이트는 36.5개 의자로 구성된 ‘서울스토리’다. 낡아 빠진 의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지나치기 쉽지만, 의자와 함께 사연을 읽다 보면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DDP가 전관 곳곳에 배치해놓은 명품 디자인 의자 컬렉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amigo@heraldcorp.com



<숫자로 본 DDP 1년>

1. 연면적 : 8만6574㎡

2. 총사업비 : 4840억원

3. 방문객 : 837만명 (3월15일 기준)

4. 콘텐츠 : 117건 (전시 49, 아트페어 7, 포럼 16, 런칭쇼 8, 이벤트 37)

5. 총 전시 관람객 : 74만5557명 (자체전시 기준, 간송문화전ㆍ투모로우전ㆍ서울패션위크 등 포함)

6. 하루 평균 관람객 : 2112명

7. 운영인력 : 356명 (정규인력 73명, 현장참여인력 283명)

8. 순익 : 10억원 (수입 223억원, 지출 213억원)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