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이상 막대한 비용 부담” 반대론도…행자부 “결정한 것 없어” 말 아껴
[헤럴드경제=신상윤 기자]최근 발생한 공공아이핀 시스템 해킹 사고를 계기로 주민등록번호 개편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았다. 하지만 50년 가까이 사용되던 번호를 손질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신중론도 만만찮은 가운데 주무 부처인 행정자치부는 말을 아끼고 있다.
10일 행자부와 정보보안 업계, 복수의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는 공공아이핀 시스템이 해킹 공격을 받아 75만건이 부정 발급됐다. 이에 따라 차제에 주민등록번호 체제를 개편, 주민등록번호를 바꿔 사태 재발을 막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개편론을 내세우는 측은 이미 지난해 해킹으로 1억건이 넘는 신용카드 3사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포털에서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주민등록번호를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공공아이핀은 물론 주민등록번호까지 유지한다면 개인정보는 언제든 유출이 가능해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범국민운동본부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이미 전 국민의 주민등록번호가 사실상 유출된 상황에서, 도용된 주민등록번호만 있으면 아이핀 발급이 가능한 현행 발급 시스템이 일으킨 문제”라며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등록번호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개편에 대해 신중론을 내세우는 측은 주민등록번호 개편이 근본적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이미 정착된 제도를 개편할 때 오는 국민 혼란과 막대한 비용이 문제라고 맞서고 있다. 또 공공아이핀은 바꿀 수 없는 주민등록번호와 달리 탈퇴 후 재가입을 통해 바꿀 수 있는 만큼 주민등록번호 대체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승화 아주대 정보통신대학원 명예교수는 “새 주민등록번호 도입에는 10조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될 수도 있다”며 “지금까지 정보 유출 사고는 인재(人災)였다. 새 주민등록번호를 도입해도 개인정보 유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없는데 막대한 비용을 들여 번호를 교체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주민등록번호 관련 주무 부처인 행자부는 이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행자부는 지난해 9월 ‘주민등록번호 개선 방안 공청회’를 통해 ‘일괄 교체’, ’현 주민등록번호를 유지하되 별도 주민등록증 번호를 사용 번호로 활용‘ 등 6개 대안을 내놓았지만, 당시 이에 대해 “정부 대안이 아닌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용역 결과일 뿐”이라며 개편과 관련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행자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주민등록번호 체제를) 개편할지 유지할지 결정하지 않았다”면서도 “전면 개편을 단행할 경우 국민들이 느낄 혼란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지’ 쪽에 무게를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한편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10일 뒤늦게 공식 사과했다. 정부가 사건을 인지한 지 8일, 발표한 지 5일 만이다. 또 공공아이핀 시스템과 관리ㆍ운영 모두에 허점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공공아이핀을 민간으로 넘기지 않고 계속 사용하기로 했다.
또 다른 행자부 관계자는 “유료인 민간아이핀과 달리 공공아이핀은 무료다”며 “저소득 가구, 청소년, 노약자 등을 위한 공공재 성격의 보편적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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