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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강우현]나는 살아있나?
“제주서 대체 뭘 하슈?” “놀고 있습니다.” “어떻게 노슈?” “상상놀이요” 어느 지인과의 통화 내역이다. 제주에 몰입한 지 일 년 쯤, 작년에는 절반을 머물렀지만 연초부터는 아예 눌러앉아 있다. 동이 트면 직원들과 함께 현장에 나갔다가 석양이 아름다운 시간에 돌아온다. 하루의 일상은 똑같은 날이 없다.

제주에서 하는 일은 제2 건국사업이다.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21세기 세계화 지식정보화 사회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여 세계일류 국가를 건설한다’며, 98년부터 5년 쯤 활동하던 그걸 이어가고 있나? 아니다. 유치하긴 해도 제주탐나라공화국, 동화나라를 세우는 중이다. 남이섬을 나미나라공화국으로 바꾼 지 9년 만이다. 국가체제로 전환한 남이섬 관광객은 열배나 늘었다.

지난 해 300만 관광객 가운데 외국인이 100만 명이다. 2001년부터 대표직을 맡은 이후 유원지를 관광지로, 소음을 리듬으로, 경치를 운치로 바꾸겠다며 동분서주하던 날들을 뒤로 하고 지난 연말 사임했다. 위기기업의 전환경영에 필요한 내 역할은 여기까지, 후임은 입사 10년차인 전명준 전무다.

삼다도 제주, 돌은 많고 바람은 거세다. “이 세상에 없는 걸 만듭시다.” 겨우내 불어대는 칼바람에 마주 서서 직원들과 함께 땅을 파고 돌담을 쌓고 나무를 옮겨 심는다. 건물을 짓기 전에 정원부터 만든다. 가장 흔한 게 현무암과 잡초, “이런 것이 가장 소중한 겁니다.” 돌멩이를 녹여보고 그걸로 목걸이도 만든다. 잡초도 생명, 뽑지 않고 내버려 둔다. 포크레인 기사나 석공에서 조경기사까지, 직원들에겐 노자책을 한 권씩 나눠 주었다. ‘왜 이런 일을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으라는 뜻이다.

상상놀이에 빠져있는 제주생활은 모두를 소년기로 돌려놓았다.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현장 직원, “이거, 강아지 닮지 않았어요?” 능청스런 질문에 자신감이 다가온다. “탐나라에서 나미나라 성공신화는 잊어야 합니다.” 남이섬이 안 하거나 못하는 일을 찾아라, 이게 현장의 모토다.

“요샌 한국이 중국보다 만만디죠.” 회의검토에 토론만 하면서 횡보하는 한국사회를 비꼬는 어느 중국인의 말이다. ‘창조경제 융복합 규제개혁, 변화혁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도 이런 토론회장은 만원사례다. 되는 쪽보다 안 되는 쪽,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탁상공론 속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곳곳에 포진해 있는 책임 회피족들, 보신주의로 둔갑한 안전제일주의가 창조상상의 걸림돌이 되는데도 문제점만 찾는 현실이 한국을 만만디로 만들고 있다.

제주생활은 이런 말잔치가 없어서 좋다. 아침회의는 자리에 선 채로 5분, 업무보고는 모든 직원이 각자의 작업현장에서 카톡방에 올리면 대표이사까지 공유된다. 누군가 튀는 아이디어를 내면 “일단 저질러 봅시다.”, 잘못될까 봐 걱정하면 “다시 하면 되죠.”, 이론보다 실천이 필요한 때다. 모든 아이디어는 현장에서 생각하고 논의해서 결정한다. 불필요한 시간이 절약된다. 눈에 띄는 것을 재료로 쓰면 원가절감을 검토할 필요도 없다.

제주생활은 상상을 현실에서 즉시 체험할 수 있어 좋다. 산기슭에서 인어공주 이야기를 지어내고, 미술관은 철학공부방으로, 제주의 땅 속에서 다시 새로운 제주를 찾아본다.

오는 5월 9일 12시, 형체도 없는 탐나라공화국 개국행사에는 이미 15개국에 초청장을 보냈다. “그 때까지 공사를 끝낼 수 없는데 가능하기나 합니까?” 손님들이 오면 그들과 함께 만들면 될 터이다. 관광지를 찾아오는 손님에게 일을 시키는 게 바이오 투어리즘이다. ‘돌을 던져놓고 길을 물어보라’, 일등보다 특등이 각광받는 시대다. 제발~, 검토검토검토를 멈추고 창문을 열어라.

그리고 일단 신발끈을 동여매고 밖에 나가 차가운 공기에 적응할 일이다. 융복합은 답이 되지 않는 것끼리 섞는 것이고, 창조경제는 실험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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