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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에세이]‘영웅’은 사랑을 싣고~
마을사람은 그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사랑과 웃음의 전령사이고, 생명과 행복을 지키는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겨울의 긴 터널을 지나 오지마을에도 봄기운이 감돈다. 움츠리던 몸을 펴고, 봄 내음을 즐기려 사립문을 나선다. 인적 드문 이 심산유곡에 새의 지저귐 사이로 희미하게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20분쯤 지나자 멀리서 산타할아버지 처럼 가방을 짊어진 영웅이 걸어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르릉 부르릉~ …소양호·파로호 ‘오지의 우편배달부’

눈보라가 치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이어질 때에도 영웅은 우리를 찾았다. 눈 보라가 몰아칠 때엔 영웅에게 사랑 정 넘치는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고마움과 미안함에 달려나가 그를 맞는다. ‘오지의 우편배달부.’ 그를 대하면 따스함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홍천 자은우체국 소속 김영권(52세)씨는 가리산(1051m) 자락, 심산유곡 오지마을 우편배달부이다. 산악지대이다 보니 커브길과 경사진 도로에다 응달진 곳이 많아 초겨울에 한번 눈이나 비가 와서 얼어붙으면 이듬해 춘삼월 해빙기가 되어야 풀리니, 구불구불한 빙판길 위를 이륜차로 달려야 하는 우편집배원은 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힘들기에 그들의 사랑이 더 클지도 모른다.


104가구 340여명이 거주하는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를 매일 오전 9시에 배달을 시작한다. 편지를 받을 분들의 집은 소양댐 중류 강물줄기 따라 오솔길로 보통 30여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수신인들은 3~4가구에 불과하다. 이들 대부분은 PC를 잘 다루지 못하고 ‘타향에 사는 자식들이 육필로 쓴 사랑이 언제나 전해지나’ 학수고대하는 70대 노인이다. 이런 오지마을은 10여곳. 김 집배원은 편지가 많은 날엔 이 마을, 저 촌락 휘저으며 수십㎞를 걷기도 한다.


소양호 주변 매봉, 바위산, 등잔봉으로 둘러싸인 조교리의 다섯가구는 접근이 쉽지 않아 호숫가 선착장 우편물 보관함에 넣어두고 편지 왔음을 알려준다. 그는 “직접 어르신들 마주 대하면서 전해주고 싶지만 배 편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겨울엔 눈 때문에 이륜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배달하는 길이가 길어지는데, 가리산 은주사의 경우  40분을 걸어 우편물과 신문을 배달한다. 하루 오토바이 주행거리는 100㎞나 된다.

지난 겨울 우편물 배달 중 집에서 80대 할아버지가 협심증으로 쓰러진 것을 발견해 구급대에 신고 했고 재작년에도 같은 일로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했다. 사랑의 전령이 마을사람에게 영웅이라 불리게 된 계기이다. “날이 풀리고 쌓인 눈이 녹으면서 배달시간이 더 빨라져 기분이 좋습니다.” 영웅은 또 웃었다.


양구우체국 김동훈(46세)씨는 매일 배를 타고 배달을 시작한다.

마을로 진입하는 오솔길 조차 없어 육지 속 섬이라는 양구군 양구읍 상무룡리가 배달 구역이다. 파로호 상류 월명리선착장까지 매일 승용차로 이동해 호수건너 마을까지 자신의 배로 5㎞ 이동한 뒤 1시간 정도 배달을 한다. 한겨울 추위로 보트가 시동이 안 걸리면 맥가이버가 된다.

삼무룡리에 도착해서는 강 물 따리 굽이굽이 난 길을 따라 이륜차로 배달을 한다. 북측 금강산 댐에서 내려오는 물 길을 바로 접하고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는 12가구 20여명의 서호부락에 우편물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는 “한 겨울 호수에 언 얼음을 피해 배를 몰고 건널 때, 얼음이 우는 소리가 ‘꾸룩꾸룩’ 개구리 울음 소리와 흡사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오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바깥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직업인 우편배달부들에게 겨울은 참으로 힘든 계절이다. 그럼에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첩첩산골 시골 마을 노인들의 말벗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이 있다. 우편 업무 외에 잔심부름을 해주기도 하고 객지 나가있는 자식들을 대신하는 사랑의 전령사다.

작년 미국 노동통계국이 이메일 및 SNS발달로 우체부가 몰락직종 1위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틀렸다. 오지의 집배원은 단순한 우편물 전달자가 아니고 산촌 가가호호와 정을 나누는 행복배달부이다. 소외된 독거 노인들의 건강 지킴이 역할도 하고, 화로의 불씨도 살펴주며, 길거리에 넘어져 신음하고 있는 응급환자를 구해주는 등 빛과 소금 같은 파수꾼이다. 그들은 끝내 봄까지 배달하고 말았다.

글,사진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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