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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김아미]어느 미술학도의 죽음
“2013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 연구사 공개 채용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던 남성 후보자 J씨(36)가 2014년 9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K대에서 고미술을 전공한 J씨는 박사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준비하던 도중 동양화 이론 분야 학예사 공채 시험에 응시했다가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기사다.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정형민 관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다. 미술관 학예사 채용 과정에서 제자 등 지인 2명의 점수를 조작하는 등 비리에 연루됐다는 이유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직위 해제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미술계가 시끄럽던 이 때 한 미술계 인사가 당시 공채에 응시했던 미술학도의 죽음을 알려왔다. 이후 J씨의 지도교수와 유족 등 지인들을 접촉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연을 들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J가 공채에 탈락하고 나서 그러더라. 이미 합격자도 다 정해져 있는 것 같던데 왜 채용 공고를 냈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미술관 공채 떨어지고 나서 국회의원 보좌관실에도 원서를 냈었다. 미술 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미술로는 먹고 살 수가 없었다.”

“박사 논문을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었고, 결혼을 앞둔 동갑내기 여자친구도 있었는데, 유서도 없이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J씨의 죽음이 학예사 채용 비리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족들은 평소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성실하고 모범생이었던 J씨가 공채 탈락을 계기로 급격히 좌절하고 방황해 온 터라 J씨의 죽음이 채용 비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J씨의 지인인 미술계 인사 역시 “주먹구구식 미술 행정, 학연 중심의 제 식구 챙기기 관행이 만연한 미술계가 결국 이같은 비극을 불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가 마감됐다. 미술관장 출신도 있고, 교수, 정치인도 있다. 인선을 앞두고 미술계에서는 미술을 잘 아는, 제대로 된 관장을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범미술인행동300’이 촉구대회를 가졌다. 그러나 현장은 참담했다. 이름을 알 만한 화가도, 젊은 작가들도 보이지 않았다. 조직적이지 못한 미술인들의 목소리는 변방의 울림으로 그치고 말았다.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도 있었다. 이들 역시 국현을 상대로 청년그룹 지분을 요구하며 대안 세력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주류 미술계에 자극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 미술학도가 죽었다. 미술계 현실에 좌절했기 때문이다. ‘이상’을 꿈꾸는 미술인들의 목소리 역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달 중순쯤 관장 인선이 마무리된다. 누가 되든, 그 결과가 또 다른 비극을 불러서는 안 된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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