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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美] 기차게 어여뿐 남덕군, 당신의 크고 고운 사마귀에 키스를…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나의 살뜰한 사람. 나 혼자만의 기차게 어여쁜 남덕군. 이상하리만큼 당신은 나의 모든 점에 들어맞는 훌륭한 미와 진을 간직한 천사요. 당신의 모든 점이 나의 모든 것에 깊이 스며들어 내가 얼마나 생생하게 사는 보람을 강하게 느꼈는지 모르오. 내 귀여운 당신의 볼에 있는 크고 고운 사마귀를 생각하고 있소. 그 사마귀에 오래 키스하고 싶소. 다음에 만나면 당신에게 답례로 별들이 눈을 감고 숨을 죽일 때까지 깊고 긴긴 키스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해드리지요. 지금 나는 당신을 얼마만큼 정신 없이 사랑하고 있는가요. (중략)”

없는 사마귀라도 볼에 붙여 만들고 싶을 정도로, 손발이 오그러듦과 동시에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드는 러브레터입니다. ‘나의 귀엽고 소중한 남덕군’에게 보내는 화가 이중섭(1916-1956)의 편지입니다. 

발을 치료하는 남자, 종이에 잉크, 수채, 14×9㎝, 1941 [사진제공=현대화랑]

연초부터 화랑가를 뜨겁게 달궜던 삼청동 현대화랑의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이 지난 1일 막을 내렸습니다.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미공개 편지화 20여점과 함께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이중섭 은지화(담뱃값 속 은지에 그린 그림) 3점이 일반인에 처음 공개되면서 화제를 모았던 전시입니다.

1월 6일부터 시작해 당초 2월 22일 끝나기로 예정됐던 이 전시는 관람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3월 1일까지 연장된 바 있습니다. 월요일과 설연휴 휴관을 빼고 두 달이 채 안되는 기간동안 4만4000여명의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찾았다고 합니다. 5만5000명을 기록했던 김환기 전시(2012.1.6~2.26) 이후 최고 흥행입니다.

사실 상업 화랑의 흥행은 관람객 수가 아닌 그림이 얼마나 팔렸는가로 매겨집니다. 쉽게 말해 티켓 장사를 하는 미술관과 달리 상업화랑은 그림 장사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죠. 몇 명이 그림을 보러 왔는가를 굳이 카운트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대화랑 관계자에 따르면 어떤 날은 200명이 그림을 보러 올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20명이 채 안 될 때도 있다고 합니다. 한달 전시 해봐야 1000명이 올까 말까 하다는군요. 장욱진(20주기 회고전 2011년 1월 14일~2월 27일ㆍ관람객 약 5만)이나 김환기같은 유명 화가들의 전시가 아니고서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화랑 전시에 4만명 이상이 몰렸다는 것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중섭을 알고 싶어한다는 방증입니다.

그림을 볼 때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이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입니다. 미술을 교과서로 배운 우리같은 범인(凡人)들은 마치 어린 아이가 대충 낙서한 것 같은, 다소 추상적인 그림을 접했을 때 이것도 예술이냐며 깎아내리기 십상입니다. 사실적인 묘사를 보고선 “우와! 잘 그렸다”라고 감탄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반응이죠.

이중섭은 전자에 더 가까운 작가입니다. 사실적인 세부 묘사보다는 대담한 선, 과감한 생략, 강렬한 색채로 다양한 정서를 담아냅니다. 그의 그림들 중에는 그야말로 어린아이가 미술시간에 그린 것 같은 새, 나비, 꽃, 물고기 등이 자주 등장합니다.

한 언론사 문화부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이중섭 하면 뭐가 떠오르냐고요. 그는 말합니다. “위작이 많은 작가 아닌가요?”

봄의 어린이, 종이에 유채, 연필, 32×49㎝ [사진제공=현대화랑]

이중섭은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을 만들어내는 작가입니다. 물론 위작 논란도 있었고요. 근본적으로는 그의 그림이 미술사적으로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논란입니다. 어떤 때는 세계 최고 수준의 거장 반열에 끌어올려졌다가 어떤 때는 지나치게 과대평가 된 작가로 한없이 끌어내려집니다. 미술계 인사들은 국내에 제대로 된 이중섭 연구가가 없다며 성토하기도 합니다.

미술평론가 윤범모씨는 최근 시평에서 “신화적 존재에 앞서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분석하고 검증하는 절차가 생략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내 미술전문 잡지 아트인컬처도 최근 호에서 국민화가라 불리는 이중섭이 박수근과 함께 지나치게 신화화됐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비극성과 천재성에 대한 예술적 과장과 인간적 미화로 지나치게 신화화됐다는 것입니다. 유작이 많지 않은데다 위작 논란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근 현대화랑이 출판사 디자인하우스와 함께 이중섭 관련 책을 출간했습니다. 전시에 맞춰서입니다. 이중섭 연구자로 불리는 최석태씨의 저서 ‘이중섭 평전’에서 발췌한 글을 이중섭의 그림과 함께 편집한 책입니다.

“그래서 이중섭이 왜 그렇게 대단하다는 건데?”라는 심정으로 짐짓 가는 눈을 하고 이중섭을 날카롭게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여기에는 역시 “이 정도는 아무나 그리는 것 아냐?”라는 태도가 깔려 있습니다.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다 결국 가늘게 떴던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어린 아이 낙서같은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 때문입니다. 뭉뚱그려진 얼굴에 보일듯 말듯 일자 선으로 그려넣은 눈. 보는 이로 하여금 함께 꿈꾸게 만드는 눈이었습니다. 바로 어린 아이의 눈이었습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시대의식을 결여한 작가”, “무능한 가장” 등 이중섭에게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뒤로 하고 일단 조금 관대해지기로 했습니다. 부인 이남덕, 마사코 여사를 향한 절절한 엽서 그림과 편지글 때문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썸’이나 타고 ‘간’이나 보는 요즘같은 세상에 여전히 어린 아이같은 순수함과 뜨거운 사랑을 동경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니까요.

책에 등장하는 한 단락을 소개합니다.

-나의 발가락군

“이중섭의 편지글에 유독 많이 등장하는 ‘발가락 군’은 바로 야마모토 마사코의 애칭이자 그녀의 발가락의 애칭이기도 했다. 체형에 비해 발이 유난히 큰 데다가 못생겼다 하여 이중섭은 마사코를 발가락 군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또 그 발가락이 영락없이 아스파라거스를 닮았다 하여 ‘아스파라거스 군’으로도 불렀다. (중략) 후에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가족을 그리워하며 띄운 편지에는 ‘내 가장 사랑하는 발가락 군을 마음껏 사랑하게 해주시오’, ‘나의 발가락 군에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정한 뽀뽀를 보내오’ 등의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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