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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수 기자의 상수동이야기14>돗자리와 상수동 골목길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달동네의 기억. 공덕동의 80년대. 우리 동네 골목길은 여름만 되면 돗자리로 가득했다. 옆집 아주머니는 돗자리 위에서 밤을 까고, 그 옆집 아주머니는 시래기를 다듬었다.

씽씽이를 탔던가. 우리들은 당시 유행하던 ‘후레시맨’을 따라했더랬다. 씽씽이의 색깔은 마치 ‘주홍글씨’ 같았다. 히어로를 선택할 수 없었던 동심은 상처가 컸나 보다. 빨간색 씽씽이가 없으니, 빨간색의 후레시맨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울면서 졸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씽씽이를 탄 ‘후레시맨’들은 골목길 돗자리 사이사이를 유연하면서도 재빠르게 지나다녔다. 초보운전자는 가끔 돗자리선을 위반하고, 또 때론 밤 통을 뒤엎기도 했다. 욕도 먹지만, 또 어떤가. 어차피 피해자는 우리 중 누구의 어머니다. 푸지게 욕을 먹은 뒤로, 저녁 냄새가 골목길에 퍼질 때면 우린 그 집에 가 삶은 밤을 얻어먹는다.

단칸방 우리집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다. 하지만 또 그때처럼 집이 컸던 적도 없다. 골목길은 우리 집 안방이고, 돗자리만 깔면 그곳이 곧 식탁이니, 동네가 모두 내 집이다. 


골목길의 기억은 애틋하다. 상수동도 대로보단 골목길을 닮았다. 크지 않지만 오밀조밀한 가게가 모여 있고, 주택가와 상가의 경계가 모호한, 그래서 더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그중에서도 와우산로 3길은 내 출ㆍ퇴근길이자 개성 넘치는 길이다. 골목길이라 하기엔 도로가 넓지만, 그래도 차가 쉴 틈 없이 다니는 길은 아니다(사실 가끔 소형 마을버스가 우회 통행할 정도이니, 골목길은 솔직히 억지스럽기도 하다).

상수역에서 강변북로 상수동 사거리로 가는 방향에 있다. 디스이즈치킨이란 치킨집 간판이 초입에 있는 길이다. 이곳의 치킨 맛은 나름 입소문이 자자하다. 반 마리씩 파는 게 특징이고, 대형 화면이 있으니 축구 중계를 보기에 좋다.

길 안으로 들어가면 저녁때마다 긴 줄이 서 있는 꼬치 집 쿠시무라가 있다. 다양한 꼬치를 파는 곳이다. 사실 이 위치는 이 골목에선 가장 교체(?)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자리.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면 이내 사라지고 마는, 터로 따지면 참 이상하게 운이 없는 자리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쿠시무라만큼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상수동 카페를 지나면 탐라식당이 있다. 콘셉트는 제주음식을 파는 가게인데, 대표 메뉴는 고기 국수. 그리고 시즌에 따라 판매하는 멜튀김이 별미. 멜튀김은 멸치 튀김인데, 통상 떠올리는 작은 멸치가 아니라, 생선의 외관을 갖춘 큰 멸치이다.

그밖에도 워낙 유명한 심야식당, 인디음악가들의 아지트 이리까페가 있고, 채식레스토랑인 슬런치팩토리, 커피 한잔과 함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그 문화 다방 등이 이어진다. 최근엔 당인식당이란 맛집도 새로 들어섰다.

그밖에도 이 골목엔 참 맛있는 음식점이 많다. 와인바에 이자카야, 커피숍 등 가게마다 특색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 골목의 매력은 단순히 이런 가게들뿐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상수동에서 여전히 옛 풍경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북유럽식의 깔끔한 인테리어 옆으로 느닷없이 ‘참기름 고추방아’라는 기름 집이 나오고, 요란한 캐릭터가 그려진 술집 옆으로 삼색등이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명성 이발관’이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제주도에서 북유럽까지 시공간이 혼재돼 있는 길이다. 낡고 흰 옷을 입은 이발사에서부터, 꽁지머리를 질끈 묶은 피어싱의 카페 주인까지 한 공간에서 숨 쉰다.

굳이 맛집을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 이 골목길은 걷기만 해도 충분하다. 여름밤이면 가게에서 퍼지는 음악소리가 거리를 기분좋게 휘감고, 때론 라이브 음악의 쿵쾅거림이 행인을 들썩이게 한다.

음악이 없다면 이어폰이라도 좋고. 혹은 골목길 특유의 소란스러움을 배경음악 삼아 걷는 것도 좋겠다. 난 요즘 이 노래로. ‘우~ 이번주 금요일. 금요일에 시간 어때요?’ 아. 오늘은 화요일이지.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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