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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시·행시등 사교육 의존도 심화…로스쿨 등록금만 1000만원 육박
형편 어려운 학생 고시합격 옛말…희망의 사다리 없어진지 오래


‘가난한 고시생’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신분상승 사다리로 여겨졌던 고시가 ‘제도 변화’와 맞물려 점점 풍족한 집 자제들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외무고시는 지난 2013년부터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으로 바뀌었다. 2차 시험인 외국어시험이 민간 어학능력검정시험으로 대체되면서 수험생들이 사교육에 돈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행정고시도 선발인원을 단계적으로 축소, 경쟁률이 한층 더 높아지면서 학원 등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졌다.

로스쿨 제도 역시 시험준비 비용과 별도로 1000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감당해야 한다.

이처럼 고시비용이 늘면서 ‘웬만큼 사는 집’이 아니라면 고시를 시작조차 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지난 2일 만난 한 고시생들은 “형편 어려운 학생이 고시에 붙었다는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국립외교원 외교관 준비생 서모(24ㆍ여) 씨는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서울 강남집에서 신림동으로 출ㆍ퇴근하고 있지만, 학원 근처에 월세 60만원짜리 원룸도 하나 갖고 있다.

서 씨는 “스터디를 위해 카페를 찾거나, 서울대 스터디룸을 예약하기 번거로워 부모님이 따로 원룸을 얻어줬다”며 “집에 가기 피곤한 날은 이 원룸에서 잠을 자는 등 휴식용으로 쓴다”고 했다.

학원 강의비와 교재비(660만원), 매달 생활비(130만원) 등 서씨가 1년에 쓰는 고시비용을 합치면 웬만한 월급쟁이의 연봉인 2900여만원에 달한다.

행시를 준비하며 1년에 1600만원 정도를 쓰고 있는 강모(28) 씨도 “집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다가, 고시를 그만두는 사례를 심심찮게 봤다”며 “고시가 희망의 사다리라는 말은 이제 순진한 얘기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솔직히 요즘 고시는 중산층은 되어야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고시를 아예 엄두도 못 내는 학생도 많아졌다.

서울 한 사립대 졸업생 김모(27) 씨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 있는데 일과 병행하려니 진도도 느리고,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다”며 “열정으로 극복할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게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작년 행시에 합격한 정모(28) 씨도 “고시비용을 예상치 못하고 뛰어드는 수험생들은 시험 장벽보다 경제적 장벽을 더 높게 느낀다”며 “소위 ‘가난한 고시생’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했다.

이지웅 기자/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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