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예술은 그 이상 관대하다
서교동 대안공간 루프서 독일영상展
독일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제2 고향’이다. 특히 독일 뒤셀도르프는 1959년 백남준이 ‘존 케이지에게 바치는 경의:녹음기와 피아노를 위한 음악’으로 첫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곳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뒤셀도르프는 물론 퀼른, 뮌헨 등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백남준의 ‘독일인 후예들’이 동시대 미디어아트의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가 서교동 대안공간 루프(대표 서진석)에서 열렸다.

주한독일문화원과 함께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는 브라운슈바이크 예술대학,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 퀼른 미디어아트 아카데미, 뮌헨 예술아카데미 출신 젊은 작가들의 작품 14점이 선보인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 동시 순회전인 이번 전시는 1부(3월 15일까지)와 2부(3월 19일~4월 5일)로 나뉘는데, 2부 전시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열릴 예정이다. 


26일 개막한 1부 전시에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사변(思辨)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단편영화 몇 편을 관람하듯 처음부터 끝까지 진득하게 앉아서 감상을 요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 표현 방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도발적이다. 마치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예술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관대함을 보여주겠다고 작정한 듯 보인다.

전시장 지하 1층에 들어서자마자 눈밭을 나체로 뒹구는 ‘눈 천사(Snow Angelㆍ2011)’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막시밀리안 바그너(29)의 작품인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색으로 뒤덮인 남자가 벌거벗고 눈밭에 누워 팔을 휘젓는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천사 형태의 자국이 생긴다. 그런데 아름답다기보다 고통스러워보인다. 마치 끝없이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들어올리는 시지푸스처럼, 육체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 인간의 처절한 몸짓이 보인다.

전시장 메인에 걸린 영상은 도발의 정점을 찍는다. 비앙카 케네디(Bianca Kennedyㆍ26)의 비디오 작품 ‘괴짜의 뇌(Weirdo Brainㆍ2012)’는 13분 33초짜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을 차용했다. 비디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미국 풍자 만화가 로버트 크럼의 코믹만화 시리즈의 영웅에서 차용했다. 괴짜의 판타지가 눈 앞에서 펼쳐지고 이는 모든 터부(Taboo)를 깨버린다. 근친상간, 윤간 등 주로 성(性)과 관련된 터부들이다.

판타지가 ‘절정’에 이를 때쯤 괴짜의 아바타들이 여인의 몸 속으로 빨려들어가며 충격적인 영상은 끝이 난다. 가학적인 표현 때문에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이 포르노그라피적인 비디오는 ‘너드(Nerd)’를 양산하는 사회에 대한 고발로 읽힌다.

이 밖에도 회색빛 하늘 아래 삭막한 항구 풍경, 버려진 컨테이너들이 즐비한 쓰레기 폐기장에 쓰러진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루시 메르카달의 작품 ‘항구의 물웅덩이(2012)’는 희망이 산산조각 나버린 동시대 젊은이들의 초상과 오버랩되며 씁쓸함을 전한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