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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셀카봉 때문에”…졸업ㆍ입학시즌 눈물짓는 출장사진사들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옛날에야 줄 세워놓고 찍었었지.”

지난달 25일 서울 소재 모 여대 졸업식에서 만난 김일만(78ㆍ가명)씨. 1974년부터 필름밥을 먹었다는 출장사진사다.

학교 정문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씨는 쏟아져 나오는 졸업생과 가족들에게 “사진 찍으세요 사진. 예쁘게 찍어드릴께”라고 외쳤다. 하지만 대부분 외면하며 지나갔다.

김씨는 대신 옆에서 졸업생 친구의 사진을 찍어주는 이에게 다가가 “학사모는 이렇게 쓰시고, 스카프는 이쪽으로 조금 돌려야 잘 나옵니다”라며 포즈에 대한 팁을 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전문사진사 김일만(78ㆍ가명)씨가 지난달 25일 졸업식이 열린 서울의 모 여대에서 사진 판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씨 근처에 있던 졸업생 강모(25ㆍ영어영문) 양은 친구들과 학교명이 새겨진 정문 앞에서 셀카봉을 사용해 사진을 찍었다. 각도를 바꿔가며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찍었다.

강양은 “스마트폰도 요새 잘 나오고 셀카봉으로도 마음껏 찍을 수 있는데 뭣하러 5만원, 10만원씩 들여 사진사 분들께 찍겠어요”라고 말했다.

김일만씨는 40년 전 처음 일제 수동식 필름카메라 ‘패트리’를 잡았다. 서울 창신동에 있던 모 인쇄소에서 사진사들이 선금으로 돈을 받아간 것을 본 뒤였다.

어깨너머 배운 기술로 김씨는 하얏트호텔 사진부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의 전속 사진사로도 활약했다고 한다. 그렇게 필름밥으로 2남1녀는 대학까지 가르쳤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이 개발되면서 일거리가 갑자기 줄기 시작했고, 이젠 셀카봉으로 누구나 단체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 있어 입에 풀칠하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는 과거 졸업생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판넬을 쓰다듬으면서 “이젠 그만 나와야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다른 대학 졸업식에서 만난 전영태(65ㆍ가명)씨. 경북 영주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다 졸업식 시즌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이날 기자를 만나기 전까지 한 컷도 찍지 못했다고 했다. 전씨는 “그래도 셀카봉이 나오기 전인 작년까진 한번에 50~60만원은 가져갔는데 올해는 20만원 하면 많이 할 것 같다”고 했다.

졸업생 윤모(26) 양은 “전문사진사분들이 찍어주시면 아무래도 더 낫겠지만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왠지 더 부담스러운 게 있다”며 “셀카봉으로 찍으면 표정도 우리끼리 더 자연스럽게 얼마든지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 동대문에서 현상소를 운영하는 서치만(78ㆍ가명)씨는 “옛날엔 철따라 남산 팔각정, 창경궁 같은 유원지도 다니고 졸업식, 입학식, 수학여행 따라다니면서 제법 많이 찍었다”며 “벚꽃 축제할 때는 여의도 광장, 단풍 들 때면 경주에 가서 하루에 많게는 300컷까지 찍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근데 요새는 뭐 장사가 되나”라며 “우리도 취미 삼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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