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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통죄 역사 속으로”…재판관 7:2 '위헌' 결정
[헤럴드경제=최상현ㆍ강승연 기자]우리나라에서 간통죄가 62년 만에 폐지됐다.

헌법재판소는 26일 오후 2시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간통죄에 대한 헌법소원과 위헌법률심판제청 등 모두 17건의 사건에 대한 선고를 내렸다.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 이상이 위헌 의견을 밝히면서 간통죄는 즉시 폐지됐다.

위헌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선고 즉시 간통죄 처벌 조항은 효력을 상실했다. 해당 조항은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相姦)한 자도 같다”고 규정한, 1953년 제정된 형법 제241조 제1항이다


헌재법에 따라 마지막 합헌 결정이 내려졌던 지난 2008년 10월 이후 사건에 한해서만 소급적용된다.

지난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네 차례 있었던 헌법재판에서 헌재는 간통죄를 매번 합헌으로 판단하고 유지해왔다.

▶재판관 9명 중 7명 “간통제 위헌” 왜?=헌재 재판관 중 박한철 헌재소장을 비롯해 이진성ㆍ김창종ㆍ서기석ㆍ조용호ㆍ김이수ㆍ강일원 재판관이 형법 제241조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봤다.

이 가운데 박한철ㆍ이진성ㆍ김창종ㆍ서기석ㆍ조용호 재판관은 국민의식의 변화에 따라 간통제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사회구조 및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 의식이 변화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중요시하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간통행위에 대해 이를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국민의 인식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게 됐다”면서 “비도덕적 행위라 할지라도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그다지 크지 않으면 국가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이수 재판관은 “간통죄에 대한 형사처벌은 부부 간 성적 성실 의무에 기초한 혼인제도에 내포된 사회윤리적 기본질서를 최소한도로 보호하려는 정당한 목적 하에 이뤄진 것으로 개인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하기 어렵다”면서도 “현실적으로 간통 및 상간 행위 중에는 사실상 혼인관계 회복이 불가능한 파탄상태로 인해 배우자에 대한 성적 성실의무를 더이상 부담하지 아니하는 간통행위자 및 배우자 있는 상간자의 간통 및 상간행위와 같이 비난 가능성 내지 반사회성이 없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강일원 재판관은 형법 제241조 2항을 언급하며 “간통죄의 소극적 소추조건인 종용이나 유서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국민이 국가 공권력 행사의 범위와 한계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다”면서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간통죄 110년만에 폐지=형법에 간통죄 조항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5년 공포된 대한제국 형법대전이다. 이후 110년 동안 유지돼오긴 했지만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헌재는 1990년, 1993년, 2001년, 2008년 4차례에 걸쳐 간통죄의 위헌성을 판가름했다. 

첫 심판이 열린 1990년에는 합헌 의견이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으로 위헌 의견보다 많았다. 하지만 가장 최근인 2008년에는 재판관 4명이 위헌 결정을, 1명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위헌 정족수를 위협했다.

때문에 이번 헌재 결정을 앞두고 법조계에선 간통죄가 위헌으로 뒤집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한 판사는 “위헌 결정이 날 수 있어 실형 선고를 꺼리는 분위기”라면서 “죄질이 불량하지 않는 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대법원도 간통죄 성립요건이 지금보다 완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1월 이혼소송 중인 아내와 바람을 피운 남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사실상 혼인이 파탄 난 상태라면 불륜을 저지르더라도 배우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이보다 앞선 2011년 8월엔 의정부지법이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바 있다.

▶간통죄 유명무실化…폐지론이 존치론 눌렀다=이번 헌재의 결정엔 시대적 흐름의 변화가 변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간통죄를 폐지하면 성 관념이 문란해질 것이라는 존치론과 성적 자기결정권이나 사생활 비밀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폐지론이 팽팽히 맞서왔다.

그러나 최근 간통에 대한 인식이 급변하면서 간통죄 폐지론에 무게가 실렸다. 기혼남성의 36.9%, 기혼여성 6.5%가 결혼 후 간통 경험이 있다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최근 연구 결과는 간통죄가 기혼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무색케했다.

뿐만 아니라 간통죄로 재판까지 가는 경우도 보기 힘들어졌다. 검찰에 따르면 2013년 접수된 연간 간통사건 3015건 가운데 기소 건수는 단 782건에 그쳤다. 반면 불기소 처분은 2110건으로 70%에 달했다.

또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실형을 사는 경우는 드물다. 간통의 법정 최고형은 징역 2년형이지만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실정이다.

▶간통죄 폐지, 5466명 구제=간통제가 폐지됨에 따라 구제되는 사람들은 최대 5466명에 달한다. 헌재가 마지막 간통죄 합헌 결정을 내린 지난 2008년 10월 30일 이후 올해 1월까지 간통 혐의로 기소된 이들이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2008년 10월 30일 이후 간통 혐의로 기소되거나 형이 확정된 사람들은 공소 취소되거나 재심을 청구해 구제받을 수 있게 된다.

당초 헌재에서 간통죄가 위헌으로 결정될 경우 1953년 법 제정 이후 유죄 확정 판결 받은 10만여명이 재심과 형사보상을 청구할 것으로 점쳐지면서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국회가 지난해 헌재의 요청으로 헌재법을 개정, 소급 적용 대상을 마지막 합헌 결정(2008년 10월 30일) 이후로 한정시킴에 따라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간통죄 유지국가 극소수=해외에서도 간통죄는 사라지는 추세다.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대부분의 서유럽 선진국들은 간통죄를 폐지했다. 우리나라처럼 간통 남녀 쌍방 처벌하는 국가는 북한, 대만, 필리핀과 미국의 일부 주에 불과하다.

미국에선 매사추세츠, 미시간 등 21개주에서 간통죄가 명맥을 이어가곤 있으나 실제 간통 혐의로 기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마저도 뉴햄프셔(2014년), 콜로라도(2013년), 웨스트버지니아(2010년) 주 등이 최근 잇달아 간통죄를 폐지시켰다.

src@heraldcorp.com

<간통죄 일지>

▷ 1905.4.20=대한제국 법률 3호로 형법대전 공포. 유부녀가 간통한 경우  그와 상간한 자를 6월 이상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함.

▷ 1912.4.1=일본 옛 형법 183조 그대로 적용한 제령(制令) 11호 조선형사령 시행. 간통한 부인과 상간자를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함.

▷ 1953.6.5=간통한 남녀를 모두 처벌하도록 한 형법안 국회 상정. 110명 중 57명 찬성으로 통과. 2년 이하의 징역 법정형은 유지.

▷ 1989.3.14=대법원, 간통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기각해  합헌으로 판단.

▷ 1990.6.30=부산지법,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 제청.

▷ 1990.9.10=1기 헌법재판소,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합헌 결정. 한병채·이시윤·김양균 전 재판관, 위헌 의견 제시.

▷ 1993.3.11=1기 헌재, 1990년 판단 유지해 합헌 결정. 결정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음.

▷ 2001.10.25=3기 헌재, 재판관 8대 1 의견으로 합헌 결정. 권성 전 재판관,위헌 의견 제시.

▷ 2008.10.30=4기 헌재, 재판관 4대 5 의견으로 합헌 결정.  김종대·이동흡·목영준 전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김희옥 전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각 제시.

▷ 2015.2.26=5기 헌재,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 박한철·이진성·김창종·서기석·조용호·김이수·강일원 재판관이 위헌 의견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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