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상속으로-신율]담뱃값의 정치학
지난 설에 고향을 찾은 분들은 한 번쯤 고향 어르신들로부터 담배 값에 대한 불평을 들었을 것이다. 어르신들은 기초 노령연금으로 받은 돈, 담배 값으로 다 날리겠다며 불평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이런 불만은 비단 어르신들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 서민들 뿐 아니라 모든 흡연자들이 거의 다 갖고 있는 불만들이다.

그래서 여당은 이런 악화된 여론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과거 사례를 보면 여당의 불안이 막연한 불안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2005년에 담배 값이 500원 올랐는데, 본래는 500원부터 단계적으로 올리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해 있었던 재보궐 선거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27곳의 선거구에서 모두 패배하는 진한 쓴맛을 보았다. 1996년 7월에도 담배 값 인상이 단행되는데, 이 시기는 총선 직후의 시기로, 선거에 영향을 덜 주려는 집권당의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결국 이듬해에 있었던 대선에서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물론 IMF 외환 위기가 결정적 패배요인이었지만, 1996년 7월을 분기점으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 국면이었다는 점 역시 사실이다.

결국 담배 값 인상은 결코 정권 담당 세력에게는 유리한 요소가 아니라는 얘긴데, 그래서 그런지 여당 차원에서도 이른바 저가 담배 얘기가 나온 것 같다. 이는 새누리당 유승민 대표에게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병헌 최고위원에게서도 이른바 봉초 담배 얘기가 나왔는데, 이런 움직임들은 모두 담배 값 인상의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한마디로 모순투성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즉, 담배 값을 올리면서 정부는 증세가 목표가 아니라 금연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논리를 폈는데, 여당에서부터 저가 담배 얘기가 나오는 것은 금연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정부의 논리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에 결정타를 날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저가 담배 얘기가 급기야, 노인층과 서민층은 타르 많고 질 안 좋은 담배나 피우라는 얘기냐는 담배 차별론으로까지 번지면서 없던 일처럼 돼 버렸는데, 여기서 다시 한 번 문제가 불거진다. 이른바 “희망 고문”론인데, 즉, 그나마 저가 담배라도 기다리던 서민층들이 저가 담배 얘기가 없던 일로 되면서, 더욱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됐다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면서 이들은 정부에게 두 번째로 실망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담배 값 인상, 그리고 그 수습책으로 저가 담배 얘기가 나온 논리구조가 우리 국민들에게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즉, 연말 정산 파동 때도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이른바 소급 적용까지 언급하며 뒤로 물러선 바 있다. 담배 가격을 파격적으로 올리고 나서 반발이 거세니까 저가 담배 얘기를 꺼내는 것도 결국은 같은 논리구조라는 말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까 국민들은 정부 정책에 대해 불신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정부가 무슨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이제 국민들은 잘 믿지 않게 돼, 결국 정부의 정책 추진력은 급속히 약화 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런 상황이 반전 없이 유지된다면 그야말로 레임덕에 빠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기에 정부는 하나의 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면밀히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 앞에 보다 솔직해 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국민들의 지지는 못 받을 수 있어도, 신뢰를 잃게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뢰를 가장 중요한 사회자본이라고 부른다. 바로 그런 신뢰를 더 잃기 전에 정부는 솔직한 자세로 국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