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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들도 ‘양극화’…버려지는 아기 &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아기
[헤럴드경제=이지웅ㆍ양대근ㆍ원호정 기자] 2주짜리 산후조리원 1200만원, 12개월 여아 원피스 36만원….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 사회에서 버려지는 아이가 있는 반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아기’들도 있다.

양극화가 고착화한 가운데 출산ㆍ육아 서비스는 날로 고급화ㆍ차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버림받는 아기 & 금수저 물고 태어난 아기=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소재 A 산후조리원은 2주 프로그램 중 저렴한 코스의 비용이 600만원, 비싼 것은 12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헤럴드경제DB사진

인천 소재 B 산후조리원이 같은 2주 동안 170만원을 받는 것과 차이가 크다.

두 곳 모두 정규직 간호사를 채용하고 있고 전문의들이 회진을 돌고 있지만, A 조리원은 간호사 1명이 신생아를 2명 이상 돌보지 않게끔 조절하고 있다.

담당 신생아 수가 적을수록 밀착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간호사 1명당 담당 신생아 수가 4명을 넘기기 일쑤인 B 조리원과는 대조적이다.

신생아실 1개당 아기 수도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A 조리원은 신생아실 1개당 6∼7명 입실해 있지만, B 조리원은 최소 10명 이상이다. 많게는 20명 가까이 입실한다. 


산모를 위한 프로그램도 격차가 크다. A 조리원은 전망 좋은 스위트룸이나 대형 스파 등 산모의 휴식과 산후 미용케어에 중점을 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B 조리원은 모든 방이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고, 프로그램도 기본적인 육아를 위한 강의로 이뤄졌을 뿐 피부, 몸매관리 같은 산모를 위한 서비스는 거의 없다. 이처럼 A 조리원은 VIP 서비스라고 불릴 만큼 값이 비싼 곳이지만 자리가 없어 아우성이다. 취재진이 5월 출산 예정인 산모로 가장해 전화상담을 요청하자 조리원 관계자는 “7월달까지 예약이 꽉 차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육아용품에서도 ‘양극화’는 두드러진다. 취재진이 서울 신세계백화점 고속터미널점과 남대문시장 등을 방문 취재한 결과, 시장에선 8만9000원짜리 유모차를 찾을 수 있었지만 백화점에선 독일에서 수입했다는 ‘스토케’ 유모차가 164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인터넷 이마트에서 저렴한 카시트는 14만원이었으나, 백화점에선 Cybex 카시트가 99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12개월 여아 원피스의 경우 시장에서는 2만원에 구매할 수 있었지만, 백화점에서는 봉포앙 제품이 무려 36만원 판매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임신부 이모(28ㆍ서울 관악구) 씨는 “안전 위주로 아기 물건들을 준비하고 있다”며 “예산 범위 안에서 준비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둘째 출산 예정인 김모(27ㆍ인천 남구) 씨는 “부자 부모와 비교해 속앓이 하는 대신 중고사이트를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고 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제 여건 때문에 가난한 부모에게 태어난 아이들이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될 수 있다”며 “보편적 지원을 통해 적어도 출발선을 같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기 年 300명= #. 긴 설 연휴를 앞두고 모두가 한껏 들뜬 2월 16일 새벽.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 앞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안에 한 장의 편지와 함께 조그만 갓난아기가 들어왔다. 아기는 별다른 아기옷이나 기저귀도 없이 낡은 겨울용 니트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아기 엄마는 자신을 ‘20대 후반의 직업여성’이라고 편지에 적었다. 임신사실을 임신 6개월 무렵에야 알게 됐지만 돈이 부족해 낙태를 못하다가 전날 밤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입양도 생각했지만 아빠가 누군지 모르고 정부 기록에도 남기 때문에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이 곳을 찾았다고 했다. 편지 말미에 엄마는 “아기랑 같이 죽을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출산을 했어요. 저는 비록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아기는 축복받으며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남겼다.

교회 외벽에 있는 베이비박스의 모습. 내부는 가로 70cm, 세로 60cm, 높이 45cm 정도로 단열재로 구성돼 있다.

주사랑공동체교회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기 5명을 보호하고 있다. 2009년 12월부터 전국 최초로 베이비박스 운영을 시작한 이 교회 이종락 목사(61) 부부와 한 명의 자원봉사자가 이들을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로 전날에만 3명의 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베이비박스는 아기를 기를 수 없는 부모가 잠시 아기를 맡길 수 있도록 고안된 시설을 말한다. 상자에 아기가 놓이면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운영 시설 관계자가 곧바로 꺼내 보호하는 방식이다. 현재 서울과 경기도 군포시에 총 2개가 설치돼 있다. 이 목사는 “한달 평균 20명에서 25명의 아기들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 올랐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동 유기’ 문제다. 해마다 200~300명이 되는 갓난아기들이 차가운 길바닥으로 버려지고 있다. 
사진설명=이종락 목사와 자원봉사자가 아기들을 돌보고 있다. 지난 16일에만 3명의 아이가 새로 들어왔다.

보건복지부 통계포털에 따르면 2013년말 기준 유기아동의 숫자는 285명으로 집계됐다. 1800여명까지 달했던 1990년대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한 숫자지만, 2009년(191명)을 저점으로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 부분을 둘러싸고 베이비박스의 찬반 논란이 몇 년 동안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이다. 지자체 등 반대측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아이를 보호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아동 유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부모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아이를 더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 찬성측에서는 아무 대안없이 베이비박스를 당장 철거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고 맞선다. 국내 베이비박스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등 입양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베이비박스를 찾는 미혼모가 부쩍 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는 37명이었던 아기가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252명, 280명으로 급증했다.

윤진숙 숭실대 법과대학 부학장은 “우리나라에서 미혼모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고 그들에 대한 사회복지 역시 최소한에 머무르고 있다”며 “예컨대 책임을 다하지 않는 미혼부에게 양육비를 청구하도록 하는 등의 법안 신설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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