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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기 年 300명
[헤럴드경제=양대근ㆍ원호정 기자] #. 긴 설 연휴를 앞두고 모두가 한껏 들뜬 2월 16일 새벽.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 앞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안에 한 장의 편지와 함께 조그만 갓난아기가 들어왔다. 아기는 별다른 아기옷이나 기저귀도 없이 낡은 겨울용 니트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아기 엄마는 자신을 ‘20대 후반의 직업여성’이라고 편지에 적었다. 임신사실을 임신 6개월 무렵에야 알게 됐지만 돈이 부족해 낙태를 못하다가 전날 밤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입양도 생각했지만 아빠가 누군지 모르고 정부 기록에도 남기 때문에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이 곳을 찾았다고 했다. 편지 말미에 엄마는 “아기랑 같이 죽을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출산을 했어요. 저는 비록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아기는 축복받으며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남겼다.

이종락(61)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가 베이비박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목사는 지난 2009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운영해 오고 있다.
<사진=원호정 기자/hjwon@heraldcorp.com>


주사랑공동체교회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기 5명을 보호하고 있다. 2009년 12월부터 전국 최초로 베이비박스 운영을 시작한 이 교회 이종락 목사(61) 부부와 한 명의 자원봉사자가 이들을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로 전날에만 3명의 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베이비박스는 아기를 기를 수 없는 부모가 잠시 아기를 맡길 수 있도록 고안된 시설을 말한다. 상자에 아기가 놓이면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운영 시설 관계자가 곧바로 꺼내 보호하는 방식이다. 현재 서울과 경기도 군포시에 총 2개가 설치돼 있다. 이 목사는 “한달 평균 20명에서 25명의 아기들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 외벽에 있는 베이비박스의 모습. 내부는 가로 70cm, 세로 60cm, 높이 45cm 정도로 단열재로 구성돼 있다.
<사진=원호정 기자/hjwon@heraldcorp.com>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 올랐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동 유기’ 문제다. 해마다 200~300명이 되는 갓난아기들이 차가운 길바닥으로 버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포털에 따르면 2013년말 기준 유기아동의 숫자는 285명으로 집계됐다. 1800여명까지 달했던 1990년대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한 숫자지만, 2009년(191명)을 저점으로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 부분을 둘러싸고 베이비박스의 찬반 논란이 몇 년 동안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이다. 지자체 등 반대측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아이를 보호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아동 유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부모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아이를 더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종락 목사와 자원봉사자가 아기들을 돌보고 있다. 지난 16일에만 3명의 아이가 새로 들어왔다.
<사진=원호정 기자/hjwon@heraldcorp.com>

반면 찬성측에서는 아무 대안없이 베이비박스를 당장 철거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고 맞선다. 국내 베이비박스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등 입양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베이비박스를 찾는 미혼모가 부쩍 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는 37명이었던 아기가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252명, 280명으로 급증했다.

윤진숙 숭실대 법과대학 부학장은 “우리나라에서 미혼모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고 그들에 대한 사회복지 역시 최소한에 머무르고 있다”며 “예컨대 책임을 다하지 않는 미혼부에게 양육비를 청구하도록 하는 등의 법안 신설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bigroot@heraldcorp.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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