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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령 수험생 조희옥 할머니 졸업…“남편 먼저 가는 아픔 겪었지만 선생님 덕에 졸업”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학교 다니는 동안 남편이 먼저 가버리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래도 선생님들 덕분에 무사히 졸업했어요”

26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일성여자중ㆍ고등학교 졸업장 수여식에서 만난 조희옥(82ㆍ여) 씨는 이렇게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노랗고 붉은 색동저고리 한복을 차려 입고 볼을 붉히며 잔뜩 상기된 모습을 보이는 조 씨는, 80이 넘은 나이가 무색해 보였다.

지난해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최고령 응시생으로 화제를 모았던 조 씨는 4년 전 우연히 지하철에서 2년제 학력인정 평생학교인 일성여자중ㆍ고등학교의 광고글을 접한 뒤 수십년간 단절됐던 학업의 길에 들어섰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일제강점기 시절 오빠 두 명마저 징병되며 홀로 남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그만 둔 공부였다.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가족들의 만류도 무릅쓴 채 어려운 선택을 내렸다. 

사진설명: 26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대강당에서 열린 일성여자중ㆍ고등학교 졸업장 수여식에 참석한 늦깍이 학생 조희옥(82ㆍ여) 씨가 수줍게 웃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서울 마포구까지, 하루 두세시간씩 교통편을 세 번이나 갈아타며 적잖은 거리를 왕복했다. 방금 한 일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인 나이라, 교과서를 암기하는 것도 벅찼다. 그럼에도 조 씨는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기쁨에 힘든 줄도 몰랐다”며 “이 나이에 살아있는 것도 감사하지만, 지금도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게 정말 즐겁다”고 말했다.

이날 졸업식에는 조 씨 외에도 20대부터 80대까지 총 315명의 늦깍이 학생들이 자리를 빛냈다. 비록 늦은 졸업이었지만 졸업식장 풍경은 여느 고등학교와 다르지 않았다. 입구는 꽃다발 구입을 권유하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뤘고, 강당 안은 ‘자랑스러운 선배’들과 마지막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후배’들로 부산했다. 앞서 졸업한 ‘선배’가 졸업 축하기념으로 무대 위에서 가수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를 색소폰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졸업생들은 선배의 반주에 맞춰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인데”를 열창했다.

이후 이어진 시상식에서 조 씨는 졸업생 가운데 나이가 많은 졸업생들에게 주는 ‘끈기상’을 수상했다. 특별히 최고령 졸업자로서 졸업생과 참석자들에게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조 씨는 “비록 원하던 전통의상학과 수시전형에서는 떨어졌지만, 대학은 꼭 진학할 것”이라며, 오래 전 딴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살릴 수 있도록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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