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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 “‘시각장애 딛고’란 말은 이제 진부해요”…통번역 석사 학위 취득한 시각장애 영어교사 김헌용 씨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시각장애 딛고 교사, 시각장애 극복하고 석사….’ 이제는 이런 타이틀이 조금 진부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만큼 장애인들의 선택지가 적다는 반증이겠죠.”

중증시각장애인 최초로 서울에서 일반학교(중등) 교사로 임용돼 장애인에게는 희망을 비장애인에게는 감동을 줬던 김헌용(29) 씨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다.

교편을 잠시 내려놓고 지난 2013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입학, 2년간 새로운 도전을 해온 김 씨는 오는 24일 석사 학위를 받는다.

학교 측은 학위수여식에서 김 씨에게 총장 특별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시각장애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김 씨가 보여준 열정과 노력을 높이 산 것이다.


김 씨는 “이제 석사 학위까지 마쳤기 때문에 ‘더 좋은’ 교사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빨리 학교로 돌아가서 대학원에서 배운 걸 활용해 보고 싶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만의 교수법을 찾아내고자 애 써 왔다.

“프리젠테이션 능력같은 건 아무래도 비장애인 선생님에 비해 제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저는 학생들이 듣기만 해도 이해가 되는 쉬운 설명을 늘 연구합니다”라고 김 씨는 털어놨다.

잔존시력이 조금 남아있던 어린시절 해외축구에 빠져 영어 중계를 듣고 영문 기사를 읽다 영어교사의 꿈까지 이루게 된 김 씨는 ‘시각장애인도 본인이 원하는 직업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서울 경원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첫해, 학생들의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눈이 안 보이시는데도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좋다” , “선생님이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가르치신다” 등 대부분 ‘장애’라는 전제가 달린 평가였다.

그러나 2년차부터는 이 교원평가의 서술형 항목에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라는 부분이 거의 사라졌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기에 장애에 대한 편견도 그만큼 빨리 사라지는구나’라고 김 씨가 느끼게 된 계기다.

처음에는 걱정스런 의심을 놓지 못하던 학부모들도 자식들이 집에 돌아와 하는 이야기에 점차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김 씨는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시각이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다.

“선진국에는 장애인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많아요. 조선 백자를 영국 박물관에서 처음 만져봤죠. 시각 장애인을 위한 ‘터치 투어’가 있었거든요”

장애인을 단기적 경제논리로만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도 경계했다. 김 씨는 “장애인을 취업시키려면 비용이 배로 드는 건 사실이에요. 단기적인 경제논리로는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복지’의 대상일 뿐이죠. 하지만 저같은 장애인 선생님에게 배운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되면, 우리사회가 편견 없는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라고 강조했다.

“장애인이 걷기 편한 길은, 임산부도 노인들도 걷기 편해요. 장애인의 삶을 기본선으로 보는 보편적 디자인이 자리 잡으면 사회의 전체적인 복지가 올라가는 거죠”라고 말하는 김 씨의 입가엔 미소가 흘렀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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