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현장에서-강승연]법관의 양심과 엇갈린 판결
“법치주의는 죽었다.”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을 받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자 법원 내부망에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글을 작성한 김동진 부장판사는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면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 판사의 글은 같은 사건을 놓고도 법관이나 법원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암시였을까.

실제 9일 열린 원 전 원장의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결론지었다. 원 전 원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는 신세가 됐다.

국정원 사건 수사를 축소시켜 대선에 영향을 미친 혐의로 원 전 원장과 함께 기소됐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1ㆍ2심에 이어 지난달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무죄를 확정받은터라 이 둘의 희비는 더욱 극명하게 엇갈렸다.

최근엔 최고 사법기관들까지 통합진보당 해산을 둘러싸고 서로 상반되는 판단을 내려 논란을 빚었다.

대법원은 지난달 이석기 상고심 판결에서 지하혁명조직(RO)의 실체가 없다고 판단했다. RO를 통진당 내 주도세력으로 규정해 정당해산의 주요 근거로 삼은 헌법재판소의 논리를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과 헌재의 엇갈린 해석이 가져온 후폭풍은 거셌다.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이 섣불렀다는 비판이 잇따랐고 옛 통진당 관계자들은 헌재의 판결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물론 법관이 양심에 따라 스스로 심판할 수 있도록 한 ‘법관의 독립성’은 헌법이 보장하는 가치로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법관이나 각급 법원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 결정, 또는 사법기관 간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과 갈등으로까지 비춰지게 되면 문제가 된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의 제각각의 판결로 피해를 보는 건 결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법원의 엇갈린 판결이 계속되면 국민은 큰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법질서의 훼손도 불 보듯 뻔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1년 취임사에서 “일관성이 유지되고 예측 가능성이 보장되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사회를 조성하겠다”고 강조한 것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이유다. 

spa@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