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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금 쌓아놓고 투자 안 늘려” vs “대기업 엑소더스 국민이 손해”…‘법인세 혈전’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법인세 인상 압박이 거세지면서 정치권과 재계의 ‘혈전’이 격화하는 모양새다. 연말정산 파동으로 단단히 뿔이 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은 ‘법인세 손보기’에 나서려는 반면, 재계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엔저, 저유가 등 불확실한 경제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세금 압박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법인세 인상 논란을 둘러싼 재계의 대응 논리를 정리해 봤다.

▶법인세 인상은 불가피?=우선 쟁점은 ‘과연 우리 기업에 법인세 인상의 여지 있느냐’는 원론적인 질문이다. 우리나라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01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3.4%)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수준이다. 미국(35%), 일본(25.5%) 등 주요 선진국보다는 낮다.

“대기업 최저한세율(세액공제를 받더라도 내야 하는 법인세 비중)을 14%에서 17% 선으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법인세 인하 효과가 상쇄됐다”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다. 홍성일 전국경제인연합회 금융조세팀장은 “법인세 인상을 논의하기엔 현재의 경제 상황과 기업 여건이 녹록지 않다”며 “세수 확충을 위해 세금을 올리려는 것인데, 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률이 수년간 떨어지고 있어 법인세 인상을 하면 오히려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 따르면, 법인세율이 28%이던 2001년 법인세수는 7조8000억원이었지만, 법인세율이 22%로 낮아진 2012년에는 법인세수가 36조원대로 늘었다. 세율과 세수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은 법인세 인상을 규제신호로 받아들여 투자ㆍ고용을 줄일 가능성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계의 반론도 만만찮다. 법인세 인하의 과실을 대기업이 독점했다는 것이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은 몰라도 대기업은 법인세 인상의 여력이 있다”며 “MB 정부에서 법인세를 깎아준 규모가 얼추 30조원 안팎인데 그중 75% 정도를 대기업이 가져갔다는 추정치도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환율 방어를 하면 그 혜택을 수출 대기업이 대부분 가져가지만 정작 재정지출의 혜택에 비례한 세금을 내고 있느냐는 지적이다.

▶법인세 내려줘도 기업은 곳간에 현금만 쌓는다?=법인세 인상 논란에서 기업을 가장 아프게 하는 약점은 대기업의 과다한 사내유보금이다. 한 기업평가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법인세 최고세율이 내린 2008년부터 5년간 2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322조원에서 589조원으로 80% 이상 늘었다. 현재 10대 그룹 83개 상장사의 사내유보금 규모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537조원에 달하고, 6개월 만에 6% 증가했다는 통계도 제시된다.

이에 대해 재계는 “국내 기업의 총자산대비 현금성 자산 비중은 불과 0.09%로 미국(0.23%), 일본(0.21%)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반박했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시대에 기업이 현금을 쌓아두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논리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연구실장은 “기업이 배당을 안하면 마치 현금을 쌓아두는 것처럼 와전되면서 오해가 생겼다”며 “투자를 하더라도 장부에는 배당이 아니니 유보로 표시된다. 기계설비도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는 투자를 하는데 유보로 잡히니 외부에서는 투자를 안한다고 지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기업 내부에 쌓아놓은 현금을 퍼내게 하는 방법으로 차라리 법인세를 올리는 게 낫다. 정부가 겉으로 하는 얘기와 실제 하는 일이 일치하도록 하는 게 맞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법인세 인상의 3가지 방법으로 ▷공제감면 축소를 통한 실효세율 제고 ▷전 구간에 일정비율의 새금을 인상 ▷순익 1000억원이 넘는 기업에 대해 최고 과세 구간을 증설 등을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법인세만 유독 낮다?=아울러 ‘주요 선진국보다 우리나라의 법인세 최고세율이 최고 10%포인트 이상 낮다’는 지적에 재계는 ‘선진국 역시 법인세를 많이 낮췄고, 국내 기업의 실효세 부담은 증가했다’며 반기를 들었다. “명목세율은 그대로지만 설비나 R&D 투자 등에 대한 감면이 많이 없어졌고, 이에 따라 실효세 부담은 증가했다는 이야기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법인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노동시장, 규제, 내수시장 규모 등 그외 경영환경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상황”이라며 “국내 주요 기업 수익의 대부분 역시 국내 법인보다는 해외 법인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임을 인식해달라”고 주문했다. 명목 법인세율은 낮지만 총세수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4.9%로 OECD 국가 중 3번째로 높다는 통계도 재계 논리의 단골 메뉴다. 이에 따라 산업계는 ‘법인세율 인상이 곧 산업 공동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법인세율을 올리면 당연히 기업의 부담은 커지겠지만, 현재 사내유보금 보유량을 보면 ‘못살겠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라면서 “우리나라에서 누리고 있는 세액공제 혜택 등이 있기 때문에 해외로 본사를 옮긴다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법인세 올린다면 얼마나?=그렇다면 법인세율을 얼마나 인상하는 것이 적당할까?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법인세율이 2%포인트 높아질 경우 제품가격 상승으로 그 부담이 소비자와 근로자, 기업에 전가돼 각각 32.8%, 16.0%, 51.2%의 비율로 세금을 분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또 법인세율 2%포인트 상승에 따라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0.33%, 투자는 0.96% 줄어들기 때문에 세입기반이 약화돼 세수 확보에도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강병구 교수는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의 시나리오별 법인세 세수 자료를 보면 약한 단계에서의 세율인상을 했을 때 13조원, 과세표준 1000억원 이상인 부분에 대해 최고 27%까지 인상했을 때 향후 5년간 53조원 정도의 세수 증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현행 3단계 누진세 구조는 최고세율이 22%인데, 부담능력이 있는 기업(과세표준이 1000억원 이상)의 과세표준을 최고 27%까지 올릴 수 있지 않을까 본다.”라고 제안했다.

김상조 교수도 순익 1000억원이 넘는 기업에 대해서는 25%든, 28%이든 과세구간을 하나 더 만드는 방식을 지지했다.

재계 일각에도 법인세 인상 문제를 기업의 단기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서 국가 경제의 새로운 틀을 짠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당장은 기업에 부담이 되겠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확보한 재원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경제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고 말했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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