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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못해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들의 유쾌한 잡담
[헤럴드경제]“첫째. 원시 사회에는 일 잘하는 사람이 없었다. 둘째. 신석기 혁명 이후,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일 잘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일 못하는 사람들이 소외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이하 일못유)의 강령이다. 2014년 7월 ‘일못유’라는 듣기에도 생소한 단체(?)가 나왔다. 그렇다고 특정 단체 같은 ‘조합’도 아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에 생긴 그룹 페이지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가입해 글로 소통하는 곳이다. 5개조짜리 짧은 강령은 이렇게 끝난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모르겠다.”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2015년 2월 4일 현재 가입자는 4442명이다. 가입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 못하는 사람들의 하소연이 올라온다. 

[사진=‘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페이스북 페이지] 

일못유에는 최근 tvN 드라마 ‘미생’으로 정점을 찍은 ‘직장인 코드’도 제대로 녹아 있다. 사람들은 주로 일터에서 실수한 경험담이나 부당하게 겪은 일들을 토로한다. 열악한 여건 탓에 생기는 문제가 개인에게 돌아오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도 자주 올라온다. 직장 상사의 무리한 요구에 대한 불만, ‘오늘도 지각했다’는 식의 자조도 많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위로와 격려의 댓글을 주고 받는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풍자하기도 한다. ‘땅콩 회항’ 사건의 주인공 조현아 전 대한한공 부사장의 동생 조현민씨는 사과 글에서 ‘변명’을 ‘변멍’으로, ‘명예훼손’을 ‘명의회손’으로 잘못 썼다. 이런 ‘오타’들에 대해 “그녀는 지독한 ‘일못(일 못하는 사람의 줄임말)’이다”라며 감싸주는 식이다.

일못유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직장 ‘뒷담화’를 하러 흘러 들어온 곳에서 직장 상사를 마주치곤 하는 것이다. 이럴 때엔 직장 이야기를 피하는 식으로 대처하거나 혹은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페이지를 만든 사람은 신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여정훈씨다. 그는 2014년 중반까지 한 환경 시민단체의 활동가였다. 그는 1년 반을 일하고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가 일을 매우 못 한다는 것이다.”

여씨는 페이지 글에서 일못유를 통해 일 못함의 문제가 노동권에 대한 이슈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볼 때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것은 일을 못해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 못하는 사람들도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는 사회에서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일못유는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오프라인 모임도 가졌다. 20여 명이 모였다. 직장이나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성토하는 자리였다. 스트레스를 태워 없애자는 의미로 밀랍 초를 태우는 의식도 했다. 오프라인 모임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팟캐스트도 준비 중이다. ‘일못’ 사연을 소개하거나, 일은 못해도 먹는 건 잘 하자는 의미에서, ‘음성 먹방’ 코너도 구상하고 있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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