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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에서 날아온 황당 문자
3년 전 부동산 임대비용 지불 문제로 민사소송에 휘말린 김 모(51)씨는 작년 말 대법원에서 날아온 ‘황당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8개월 동안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 기다려 온 김 씨가 받은 메시지는 “상고인의 주장은 관련법 조항에 따라 이유 없으므로 기각한다”는 짤막한 내용이 전부 였다. 기각 이유에 대한 설명도, 판결문도 없었다. 김 씨 처럼 문자로 상고심 결과를 통보 받는 이른바 ‘심리불속행(審理不續行) 기각‘ 메시지는 지난해 9500여건에 달했다.

심불(審不) 기각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따라 상고사건 가운데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이다. 


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의 수를 줄이기 위해 지난 1994년 도입된 이 제도는 무분별한 상고의 남용을 막자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상고인들 입장에서는 정식 재판도 못 받고 기각 당하는 것이어서 불만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심불 기각’…9500건 육박=3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법원 사건(형사사건 제외) 중 64.8%가 ‘심리불속행(심불) 기각’으로 끝났다. 민사 심불 사건은 7210건으로 전체 민사사건의 54.1%를 차지했다. 행정사건은 61.0%(1832건)가 재판 없이 기각됐다. 민사와 행정 심불 기각은 전년도에 비해 2.8%와 2.6%씩 증가했다. 가사사건은 79.1%로 전년도 81.9%에 비해 약간 줄었으나 여전히 전체 상고심 사건 중 절반 이상이 ‘심불 기각’으로 통보되고 있다.

지난해 심불 기각 건수는 9478건으로 최근 6년 동안 가장 많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이 사회ㆍ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사건을 충실하게 심리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 데 사건이 너무 많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지난해만 해도 3만6000건의 사건을 처리하느라 개별 사건에 대해 충분한 심리를 하지 못해 불속행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1994년부터 1999년 8월까지 심리불속행 비율은 42% 수준이었으나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간 평균 심리불속행비율은 60%대로 증가했다.

▶2월 국회, 심불 폐지 격전장=심불 비율의 증가는 대법원에 대한 국민의 접근권과 재판 받을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따라서 심불 제도는 매번 대법원 개혁의 1순위로 지적돼 왔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은 심불 제도의 폐해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상고법원 제도의 도입을 들고 나왔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상고법원 도입 법안은 이번 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법무부와 대한변호사협회 등 관련 기관 및 단체들이 상고법원 도입에 사실상 반대하고 있어 입법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대법원은 고등법원 부장급 판사 20명 이상으로 구성된 상고법원에서 상고 사건의 재판을 맡도록 하고 대법원은 정책법원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심리불속행 폐지를 위해서는 대법원 수를 증원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변협 관계자는 “우리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인 독일이나 프랑스는 우리보다 적은 상고사건에 대해 100명이 넘는 대법관을 보유해 운영하고 있다”며 “20여명의 상고법원 재판관 수는 지금의 대법관 수와 거의 비슷해 심리불속행 기각 폐지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 또한 도입 자체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지나치게 많은 대법관 수는 법령 해석의 통일성을 기하기 어렵고 예산 문제도 있다”며 대법관 수 증원에 반대하고 있다. 한충수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은 상고를 통해 권리구제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기보다는 대법관 수를 소수 정예화해서 사법부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며 ”상고법원을 설치하는 것이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효율적인 제도인지 법원 만의 잔치는 아닌 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상현 기자/sr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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