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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고 살 수 없다”…‘컨슈니어’<Consumer+Engineer: 소비자+기술자>의 출현
툭하면 유해성 논란…제품 신뢰도 추락
제품 사용설명서·성분표기 일일이 체크
항목 객관성 없으면 가차없이 구매 퇴짜
화장품은 직접 만들어 쓰는 소비자 늘어
업계, 객관적 데이터 제시 판매전략 반영


#1.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사는 주부 홍유리(35) 씨는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살때 항상 성분 표시를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같은 종류의 제품이라도 성분을 꼼꼼히 살펴 자기가 아는 정보와 비교해 물건을 구매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고 해도 제 눈으로 살펴보지 않으면 믿음이 가지 않아요. 그래서 물건을 사기 전에 항상 인터넷 등을 통해서 정보를 미리 살펴보고 물건을 사러 와요.”

#2. IT업계에 다니는 직장인 이대근(30) 씨. 그는 IT업계에 다니는 그의 능력(?)을 활용해 전자기기 제품을 사면 분해해서 부품을 비교 분석한다. 실제 제품사용 설명서와 부품이 맞는지 확인을 한 후에 다시 조립해서 사용하며 그것을 블로그를 통해 지인들에게 까지 정보를 공유한다.

최근 물건을 사면 포장상자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던 제품 사용 설명서가 이제는 구매자들이 가장 먼저 찾고 비교하는 항목이 됐다. 내가 찾는 그 물건, 나에게 맞는 그 물건이라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으면 구매리스트에서 가차없이 삭제하는 시대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분해하거나 성분 비교분석을 통해 실제 사용한 후에야 비로소 기업이 하는 말을 믿는다. ‘의심사회’의 도래는 엔지니어 정신과 기술로 무장한 ‘컨슈니어(Consumer+Engineer)’, 제품설명서를 정독하는 ‘호모도큐멘티쿠스’로 대표되는 ‘증거중독자’들을 대거 출현시켰다. 이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바일을 넘나드는 ‘크로스쇼퍼’로 진화 중이다.

소비자들로선 제품 불신시대다. 못믿을 제품이 많다. 그래서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 그런 소비족들이 늘고 있다. . 사진은 소비자들이 제품을 눈으로 세밀하게 확인하는 모습

▶보고 따지고 또 보고…‘철벽 소비자’ 급증 왜?=전문가나 다름없는 철벽소비자, 자칭 타칭 ‘컨슈니어’라고 불리는 이들의 소비생활은 아주 특별하다. 지난해 생활용품 유해성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것도 한 요인이다. 당연히 불안해 하면서도 제품에 붙어있는 성분 표기를 일일이 확인하고 사는 소비자들이 갑자기 늘었다.

특히 파라벤이나 액상과당, 아스파캄 등 발음하기도 어려운 성분들이 몸에 좋지 않다는 얘기가 작년에 생활용품 시장에서 핫 이슈로 떠올랐다. 그래서 이들은 제품 성분을 미리 인터넷 등을 통해 숙지한 후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주부 이미영 씨는 “발암물질이 들어있다고 하고 아이들 아토피에 안좋다는 등 물건을 믿고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원료를 사용했는지 어떤 물질이 들어 있는 지 등 좀 더 꼼꼼하게 따져보려고 한다”며 컨슈니어가된 이유를 설명했다.

식품 뿐만 아니라 아이들 약도 그 유해 성분을 공부해서 정보를 얻는 사람도 있다.

아이의 감기 약을 사기 위해 약국이나 병원을 가지 전에 컨슈니어들이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블로그 등을 통해 유해성분관련 정보를 먼저 얻은 후 무방부제 무색소 약의 종류를 먼저 알고 약국에 가서 약을 구매하는 것이다.

사는 방식도 특이하다. 보통의 경우 “우리 아이가 감기에 걸렸는데요, 감기약 좀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지만 최근에는 “무방부제와 아토피 증상이 있으니 OOO약으로 주세요”라고 한다.

시중의 일반 제품들은 첨가물을 얼마나 넣었는지 그 표기만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무첨가물을 고집하는 주부들도 늘고 있다. 실제 대형마트 식품 코너에 가면 주부들이 제품의 성분을 하나하나씩 암기하듯 바라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식품과 약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며 신발을 뜯어서 그 기능성을 직접 확인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치화로 콘크리트 소비자 마음을 녹여야=이러한 컨슈니어들의 등장으로 인해 업계에서도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바로 수치화된 메시지 전달이다. 숫자는 그 어떤 언어보다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다. 수치화된 데이터는 고객에게 ‘좋다’, ‘빠르다’와 같은 추상적인 표현보다 구체적인 증거을 통해 설득력을 높여준다.

예를 들면 LG전자는 초경량 노트북 ‘그램’을 출시하면서 매장에 저울을 옆에 두고 소비자가 직접 무게를 측정해볼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이색 서비스는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어떠한 수치도 속이지 않겠다’라는 기업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이벤트다.

또 삼성전자는 매장에 진열된 자사의 일체형 PC ‘아티브 원7’의 뒷편을 열어 부품 하나하나의 제원을 수치와 함께 설명해주는 라벨을 붙였다. 이렇듯 예전과 달리 객관적인 증거를 소비자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공부하는 소비자…차라리 내가 만든다=숫자 등 객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에도 불구하고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믿지 못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그들은 “차라리 내가 만들어 쓰겠다”며 정보를 꼼꼼히 습득해 자기 자신에 맞는 제품을 만든다. 최근 이런 경향은 특히 화장품 시장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실제 화장품에 첨가된 1%의 화학 성분까지도 따져 쓰겠다는 이들이 늘면서 화장품 성분 분석사이트와 어플리케이션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어플은 ‘화해’다. 국제 환경그룹의 유해성분 기준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개한 화장품 성분 공공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화장품별 함유 성분에 대해 상세히 찾아볼 수 있다.

자기 몸에 자기 아이에 맞는 화장품 성분을 연구하다 아예 천연 원료만 넣은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쓰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주부 김모 씨는 “화장품 성분을 분석하다보니 건성피부와 아토피 증상이 있었는데 시중에 나오는 제품을 사용하다 보니 좀처럼 나아지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며 “블로그 등에 보면 실제로 스킨이나 로션 등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쓰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 지금은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고 했다.

전미영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연구교수는 “기업들도 소비자들에게 추상적인 단어로 설득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LG전자와 삼성전자의 경우처럼 객관적인 수치나 증거를 제시하는 전략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자사 제품에 대한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정환 기자/atto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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