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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시원의 명과암>고시원은 ‘일터’다…알바생의 혹독한 고시원생활
[헤럴드경제=서지혜 기자] 새벽 6시30분. 여성전용 고시원에서 ‘야간 총무’일을 맡아보며 한의대 입시를 준비중인 이원준(34ㆍ가명) 씨는 2~6층 순찰을 도는 것으로 고단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화장실을 청소하고 복도 물통을 교환하는 일도 이 씨의 몫이다. 건조대실의 건조기 내부에 먼지는 없는지, 주방이 있는 3층과 6층 싱크대에 찌꺼기가 가득하지는 않은지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오전 9시 주간근무자가 오면 비로소 이씨가 공부할 시간이 생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그 마저도 민원처리나 입실문의를 받기 위해 사무실에서 ‘공부하면서 대기해야 하는’시간이라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당연히 온전히 공부에 집중하기는 어렵다. 특히 지난 9월 수능을 두어 달 앞두고 주간총무가 그만두면서 이 씨는 하루종일 총무 일을 하느라 공부시간을 거의 갖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공부시간 아닌 공부시간’이 끝나고 오후 6시가 되면 다시 업무시간이 돌아온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이곳저곳 소등을 확인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다 보면 모두들 잠든 12시가 된다.

여성전용 고시원은 야간 총무로 일하다보니 밤 사이에는 웃지못할 일도 종종 생긴다. 호텔처럼 모닝콜을 해달라고 하거나, 외부에 있는 부모님께서 방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민원을 하기도 했다.

지난 1년 여 간 ‘고시원 야간 총무’로 일한 이 씨의 하루 일과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6층짜리 C 고시원 1층에 마련된 사무실은 이 씨의 직장이고, 집이고, 독서실이었다.

이 씨는 지난 해 이 곳에서 잠을 자고, 일을 하고, 늦깎이 수능공부를 했다. 하지만 이 씨는 지난 해 수능에서 목표로 했던 한의대에 가지 못했다. “쉬운 수능이라서 두 문제 정도 차이로 떨어졌다”며 멋쩍게 웃었다.

4년간 대기업 반도체 회사에 다니던 이 씨는 한의대를 가고 싶다는 마음에 고시원을 알아봤다. 부모님께 부담을 주기 싫어 고시원 총무 자리를 알아보다 여기까지 온 이 씨는 한 달에 51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

이 씨는 “다른 고시원의 경우는 20만 원~50만 원을 주는 곳도 있다”며 “51만원을 주는 데다 숙식도 제공해 이 곳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또 “이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총무가 각 방 청소를 해 줘야 하는 곳도 있었는데 어떤 방은 청소하는 데만 3시간이 걸리기도 했다”며 “이 곳은 그나마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가 계셔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일과 공부를 병행하던 중 지난 해 우연히 자신이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고 사실상 ‘하루종일’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데 최저임금을 다 받으려고 하느냐”는 말을 수시로 내뱉는 사장에게 문제제기를 하기는 어려웠다.

이 씨는 “시도때도 없이 생기는 민원 때문에 공부하는 시간도 일하는 시간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모든 고시원 총무 자리가 다 비슷한 조건이라 다른 고시원 가서 면접을 볼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사장은 51만 원 월급을 맞추기 위해 하루 8시간 근로시간을 4시간으로 줄여 계약서를 쓰도록 하기도 했지만, 숙식을 공짜로 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마저도 감수했다.

알바노조 등에 따르면 이같은 노동환경은 모두 불법이다. 숙식 제공여부와 관계없이 최저임금은 지급해야 하며, 계약서상 근로시간과 실제 근로시간도 일치해야 한다.

최근 이 씨는 함께 일했던 고시원 총무와 함께 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등 부당했던 노동환경을 알리고 있다.

이 씨는 “제가 진정을 함으로써 그 고시원에서 현재 일하고 있는 총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고시원 총무들이 이런 부당함에 대해 각자 권리를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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