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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승희의 이 장면&이 대사] 이게 시청자 마음...‘스타킹’ 유승옥 편 보던 사람들의 ‘이구동성’ 한 마디 “에이”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리액션 영상이 TV 안으로 들어왔다. 지난 8일 첫 방송된 KBS2 ‘작정하고 본방사수’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을 시작할 당시 방송 관계자들 중 일부는 “근데 왜 내가 다른 사람이 TV 보는 걸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당연한 반응도 내놓았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같은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재까지의 시청률도 미미하다. 29일 기준 같은 시간대에 SBS ‘순간포착’이 11.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장수 중이고, MBC에선 임성한 작가의 ‘압구정 백야’(13.4%), ‘리얼스토리 눈’(7.1%)이 주부 시청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작정하고 본방사수’는 3.7%의 전국시청률을 기록했다.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경쟁작들에 비해 후발주자인데다 국내 방송가에선 보기 힘든 프로그램이라는 점이 현재의 성적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3년 전 유튜브를 통해 ‘국제스타’가 된 ‘강남스타일’의 싸이는 2012년 전 세계 최고의 스타였다.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먼저 인기가 치솟던 ‘강남스타일’의 여파로 싸이의 모든 것이 화제가 됐다. 빌보드 차트 순위는 말할 것도 없고 해외 톱스타들과 함께 찍은 인증샷부터 해외 프로그램 출연영상도 단연 인기였다. 또 하나 화제가 됐던 게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인기검색어로 장시간 머물렀던 ‘싸이 강남스타일 외국인 반응’이라는 이른바 ‘리액션 영상’이다.

한국 가수 최초로 해외 무대에서 전무후무한 인기를 얻은 싸이의 명성이 믿기지 않았는지, 국내 네티즌들은 너나없이 외국인들이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장면을 반복재생했다. 춤을 따라추고, 박장대소하며 자지러지는 외국인들의 리액션 영상을 보고서야 국내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 특히 외국인들의 평가를 확인하고 나서야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가지는 모습이었다. “아, 정말 저렇게나 좋아하는구나.”

사실 이 프로그램은 사실 2013년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 방영 당시 방송 프로그램에 주는 모든 상을 휩쓸었던 우수 프로그램이다. 뉴스부터 드라마, 예능, 교양 프로그램까지 확보하고 있는 KBS는‘GOGGLEBOX(고글박스)’의 포맷을 구입해 6부작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개그맨 장동민 가족, 배우 김부선 모녀를 비롯해 평범한 일반인 가정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웃고 즐기는 모습을 방송한다. KBS 프로그램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28일 방송에선 SBS ‘스타킹’을 MBC ‘진짜 사나이’, KBS2 ‘가족끼리 왜이래’, ‘불후의 명곡’, ‘VJ특공대’를 보는 시청자들의 모습이 비쳤다. 최근 IS 가담을 위해 떠난 한국인 10대에 대한 뉴스도 나왔다.

‘작정하고 본방사수’를 시청하다 보면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하나는 TV는 저마다의 바쁜 일상을 보내는 가족들이 잠시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매체라는 점, 또 다른 하나는 ‘모두가 비평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여과없이 비치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제작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피드백이 되리라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이날 방송에선 동양인 최초로 머슬매니아 TOP5에 이름을 올리며 화제가 된 ‘신의 몸매’ 유승옥이 출연한 ‘스타킹’을 시청하는 이들의 반응이 비쳤다. 유승옥에 대한 팬심은 둘째 치고, 방송에선 유승옥의 몸매관리를 위한 운동법을 공개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저질댄스’를 연상케하는 운동을 선보였다. 놀랍게도 시청자들은 이 장면을 너나없이 따라하는 진귀한 광경을 연출했다.

이후 제작진은 이 운동의 효과를 살피기 위해 조세호의 허리 둘레를 재봤다. 무려 5cm나 줄어들었다고 방송이 이야기를 하자, 프로그램을 지켜보던 네 가정 모두 폭주를 시작했다. 이구동성으로 “에이”를 외치며 “, 진짜 너무하네”, “스타킹 안되겠네”라는 식의 반응을 비쳤다. 극적인 반전과 효과를 주는 것은 좋지만 지나친 과장처럼 비친 탓이다. 또 당시 프로그램을 지켜보던 이혼전문변호사 박설아씨는 ‘가슴둘레’까지 재는 방송을 본 뒤 “아니 뭘 저런 것까지 재냐”고 말하기도 했다.

MBC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2를 지켜보던 이들의 반응도 닮아있었다. 지난 25일 방송분을 통해 엉뚱한 매력을 발산하며 스타가 된 강예원이 등장했을 때였다. 강예원은 면접관이“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과 그 일을 어떻게 극복했냐”고 묻자 “너무 많아서...”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마음을 가라앉힌 강예원은 “10년 전 영화를 찍을 때 감독님께 계속 욕먹을 때 힘들었다”며 “욕 먹을 이유가 없었는데 사람들 앞에서 욕을 먹으며 일을 했다”고 털어놨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니 강예원은 “일을 안 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당시에는 “시집가려고 했다”는 마음까지 먹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려다가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모든 시청자가 진지하게 그의 속이야기를 듣던 중 기습공격에 당한 눈치였다. 시청자들은 “우와 저 여자 최고다. 오래만에 새로운 캐릭터를 만났다”며 박장대소했다. 당시 방송 이후 강예원은 1박2일 동안 실시간 검색어의 주인공이 됐을 정도로 화제가 된 스타였다.

KBS2 ‘가족끼리 왜이래’의 방송분에 등장한 ‘혼전임신’ 소재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안방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속도위반’ 소재에 시청자 김기용씨는 “우리나라 드라마의 18번”이라고 꼬집었고, 이학규 시청자는 “임신을 했느니 속도위반을 했느니 하는데 그런 얘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난 이해가 안간다. 매스컴에서도 엄격하게 다뤄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도래하며 사실 시청자들은 볼거리가 많아졌다. 프로그램 제작자들보다 더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은 이미 비교, 분석에 능한 비평가 반열에 올라섰다. ‘작정하고 본방사수’는 매회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본격적으로 방송을 사수하는 시청자가 주인공인 비평 프로그램입니다. 지금부터 TV 앞에 모인 시청자들의 고귀한 참여와 참견을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라는 자막을 띄운다. 무수히 많은 채널의 제작자들에겐 꼭 한 번 권할 만한 프로그램인 셈이다.

TV를 즐기는 시청자의 입장에선 어떨까. 이 프로그램은 의외의 지점에서 재미가 나온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여과없이 반응을 내뱉는 출연자들의 입담이 공감과 웃음을 준다. 싸이의 리액션 영상이 그토록 회자됐던 것과 온라인에서 네티즌들이 쏟아내는 수많은 댓글만 모아둔 게시물들이 두고두고 화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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