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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의 즉위일 양력 1월 20일, 승하일은 21일
[헤럴드경제=김성우 인턴기자] 양력 1월 20일은 대한제국 초대 황제 고종의 즉위일이다.

고종황제(광무황제)는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다.

1852년 영조의 현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로 태어났고, 양력 1863년 1월 20일 (음력 12월 13일) 후사가 없던 철종의 뒤를 이어 12살의 나이에 즉위했다.

이후 10년간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섭정을 받던 고종은 73년부터 친정에 들어가나 이후 명성황후 민비 일가와 아버지 흥선대원군 사이의 권력 갈등에 제대로 뜻을 펼치지 못했다.

당시 조선은 혼란기로, 일본을 포함한 서구에서 들어오는 신문물과 구문물의, 청에 대한 사대와 일본, 러시아 등 신세력에 대한 친러, 친일 등 국제 정세가 겹쳐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 사이 고종은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아관파천 등 큰 사건을 겪는 와중에 외세의 내정간섭에도 시달려야 했다.

한편 고종은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에 즉위하며, 국난을 해쳐나가기 위한 노력을 펼치나,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일본의 내정간섭이 심화되며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일제의 내정간섭으로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1906년 통감부 설치로 국정에서 소외되자 고종은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던 네덜란드 헤이그에 이준, 이위종, 이상설 등을 특사로 파견해,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쓰다 이를 빌미로 삼은 일제에 의해 폐위당했다.

이후 아들 순종이 즉위하지만 대한제국은 1910년 경술국치에 의해 국권을 상실한다.

고종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오전 6시 뇌일혈로 승하하였는데, 20일 저녁 급격히 와병하여 다음날 6시에 승하했고, 그날 궁전 숙직이 이완용, 이기용 등 친일 인사들이었다며 일제가 전날인 20일 고종황제를 독살하고 다음날 발표했다는 고종황제 독살설이 돌기도 했다.

독살설이 사실이라면, 양력 1월 20일은 고종황제의 국왕 즉위일이자 독살당한 날이 된다.

황제의 독살설은 민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1919년 3 월 1일에 일어난 3·1 운동은 고종황제의 인산일에 맞춰 일어난 민족운동이었다. 


ks00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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