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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0년 만에 울린 ‘우륵의 구원음’
신예 박소정 작가 역사 기반 둔 팩션 뮤지컬 ‘가야십이지곡’ 24일 첫 무대… ‘사람 달래주는 음악’의 가치 그려
“우륵이 가야국 가실왕의 명으로 가야금을 만들고 12곡을 지었다”(삼국사기 中)

역사의 한 문장이 1500여년 지나 2015년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뮤지컬 ‘가야십이지곡’. 2013 공연예술창작산실 지원사업 대본공모에 선정된 작품이다. 오는 24일부터 2월 1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한다.

최근 대학로 연습실 근처 카페에서 만난 박소정 작가는 “가야와 신라의 전쟁 속에서 가야의 소리를 찾아 떠나는 우륵과 전쟁 고아인 니문, 소율 등이 등장하는 팩션”이라며 “나라와 나라의 부딪힘은 큰 이야기이지만 전쟁을 겪는 사람들을 주제로 삼고 있어 큰 이야기인 척하는 작은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한 연습실에서 배우들이 뮤지컬 ‘가야십이지곡’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가야십이지
곡’은 30대 신진 창작자들로 구성된 극단 기능재부의 작품으로, 주연 배우들의 평균 나이도 28세에 불과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과 1기인 박 작가는 같은 과 후배들과 지난 2013년 극단 기능재부를 창단했다. 재능기부를 거부하고 ‘기능’으로 ‘재’기발랄한 작품들을 만들어 ‘부(富)’를 축적하자는 뜻이다. 이 극단은 ‘가야십이지곡’으로 수익을 내지 못해 비자발적으로 재능기부를 하게 될지, 이름처럼 기능재부가 될지 첫번째 시험대에 오른다.

“ ‘가야십이지곡’은 원래 영화 트리트먼트(기획안)였어요. ‘반지의 제왕’급 대서사시였는데 묵혀놓고 있다가 한예종 후배인 채한울 작곡가와 함께 실습 수업에서 뮤지컬로 만들었죠. 당연히 음악이 칼을 이길 수 없지만 사람을 달래고 끌고 갈 수 있다는 판타지에서 출발했습니다”


박 작가는 가야가 멸망하고 우륵이 신라로 귀화했지만 ‘신라금’이 아닌 ‘가야금’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온 부분에 주목했다.

“우륵은 변절자라는 오명을 견디고서라도 가야금을 지켜냈어요. 극중 우륵은 가실왕으로부터 ‘가야금을 지어 세상을 구하라’는 명을 받아요. ‘내가 가야금으로 세상을 살릴지 못 살릴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죠. 그 과정에서 만난 니문과 소율로부터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올해 서른여섯인 박 작가는 예중ㆍ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음대를 나왔다. 대학 졸업 후 출판사에 다니다 20대 후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야십이지곡’이 운좋게 창작산실 지원작으로 선정됐지만 당시 심사위원들로부터 대중들과 너무 먼 이야기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어요. 대중적인 소재는 아니지만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가야십이지곡’
작가 박소정.

박 작가는 막상 개막을 앞두고 대중성을 확보할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구려 이야기를 다룬 가무극 ‘바람의 나라’의 이지나 연출에게 멘토링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 연출은 “너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봐”라며 박 작가에게 힘을 실어줬다.

“연습실에서 배우들이 배경도 폐허고, 너무 비관적인 내용 아니냐고들 해요. 하지만 저는 ‘낭만적인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폐허 속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이야기니까요”

‘가야십이지곡’은 ‘살맛’이라는 노래로 끝을 맺는다. 후렴은 제목 그대로 ‘살맛이구나’다. 살맛 안나게 하는 권력다툼의 전쟁 속에서 그나마 살맛나게 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박 작가는 서른 중반에 이제 작가로서 첫 걸음을 내딛는다. 직장을 그만둔 후부터 개인 과외나 드라마 보조작가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불안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노트북 비밀번호가 ’긍정긍정‘”이라고 답했다.

“우륵의 여정처럼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길이 끝나니까 내 길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멈춰야 길이 끝나는 거죠. 절망 속에서도 다시 걸어가는 우륵의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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