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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국제시장 ’의 그 배 ‘빅토리호’…“제가 세상에 알렸죠”
국내 첫‘ 전쟁문학’개척…소설가 전경애씨
美서 빅토리호 부선장 만나
“피난민 살린 흥남철수 스토리 감동
“코리아헤럴드 통해 영문소설 발간
“아픈 역사 감추지 말고 계속 알려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은 압도적인 첫 장면으로 단번에 관객들을 스크린 속으로 끌어당긴다. 포성이 가까워오는 눈보라치는 흥남부두에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한 방향으로 뛴다. 중공군이 코 앞에 당도했다는 소식에 남한으로 가는 마지막 배를 타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달린다. 나이어린 오빠가 그보다 어린 여동생의 손을 꼭 잡고 말한다. “여기는 운동장이 아니래이.” 1만4000여명의 피난민을 실어나른 메레디스 빅토리호. ‘국제시장’의 주인공은 바로 이 군함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토리호는 사실 피난민 당사자들과 주변인 외에는 90년대까지 그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화가 그동안 까마득히 잊혀졌던 까닭이다.

67개국이 참전한 한국전쟁은 그동안 동족상잔의 비극으로만 인식돼 부끄러운 기억으로 감추려해온 게 사실이다. 이제 역사를 돌아볼 객관적 거리가 생겼다. 이를 문화산업 콘텐츠
화하는 것도 21세기 한국전쟁을 새롭게 인식하는 길이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빅토리호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작가가 소설가 전경애씨(65)다. 최근 한국문인협회가 수여하는 한국백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를 13일 서울 후암동 헤럴드스퀘어에서 만났다. 소설집 ‘위대한 항해’로 수상한 그는 국내 처음 ‘전쟁문학’이란 장르를 개척한 주인공이다,

한국전쟁을 다룬 장편 ‘장진호 1,2’,‘민들레 목장’‘그레이트 러브’‘꽃 한송이의 사랑’ 등 그의 소설은 한국전쟁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얼마전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놀랐다.

“영화를 보러 갈때는 빅토리호가 나오는 줄 몰랐어요. 빅토리호의 모습을 영화속에서 만나니까 20여년 고생한 보람과 기쁨이 느껴지더라고요.”

전씨가 빅토리호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된 건, 1994년 몬태나주 여행길에 들른 개척자박물관이 첫 고리였다. 그는 박물관에서 ‘한국전쟁 1950~53년’ 이란 제목의 책 한권을 발견하곤 눈이 번쩍 뜨였다. 전쟁에 참여했던 몬태나 주 젊은이들의 사진과 기사 3년치가 기록돼 있었다.

이 자료를 가지고 소설을 쓰지 않으면 작가도 아니다는 일종의 소명의식으로 쓴 작품이 단편소설 ‘몬태나 6.25’였다.

1998년 책 발간과 함께 그가 한때 기자로 근무했던 영자지 코리아헤럴드에 소개가 되자 하와이에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장진호 전투 생존자들의 모임인 ‘초신퓨(Chosin Few)’ 회장으로부터 고맙고 만나고 싶다는 편지였다. 하와이로 날아간 전 씨는 생존자 30여명으로부터 장진호 전투의 생생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소설이 ‘장진호 전투’다. 초신은 ‘장진호 전투’의 일본식 표기. 장진호 전투는 개마고원에서 중공군에 포위돼 미해병 제1사단이 궤멸한 전투다. 그 장진호 전투에서 단 며칠 사이에 미 해병은 2500명이 죽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해 포위망을 뚫고 내려온 1사단의 철수가 바로 흥남철수다.

전 씨는 초신퓨 회장으로부터 당시 빅토리호 부선장이었던 로버트 러니의 거취를 알게 됐다. 다시 뉴욕으로 날아갔다. 러니는 뉴욕의 유명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고 당시 감격적인 얘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메레디스 빅토리호의 전모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전 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2000년 코리아헤럴드 출판부를 통해 ‘민들레 목장(The Dandelion Ranch)’이란 제목으로 영문 소설을 펴냈다, 흥남부두에서 피난민을 태우는 메레디스 빅토리호와 라루 선장의 이야기로 흥남부두의 빅토리호를 세상에 알린 첫 작품이다.

“러니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누차 한국사람들의 질서정연하고 협동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중공군이 가까이 다가와 위험한 상황에서도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고 서로 양보하면서 물도 나눠 마시고 침착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고 한국민의 우수성을 절감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는 한국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집앞 국기게양대에 한국국기를 게양한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빅토리호 라루 선장은 미국으로 돌아와 1954년 가톨릭 수사가 됐다고 한다. 전 씨는 한국의 통일을 위해 라루 수사가 늘 기도한다는 얘기를 러니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라루 수사는 러니가 만나려고 했을 때에는 이미 병약해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상태였다. 전 씨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이야기가 보태져 진화해 왔다, 참전자들이 보내온 자료와 증언이 계속 더해진 까닭이다.

지난 20여년간 장진호 전투와 빅토리호를 알리는데 힘써온 그는 지난해 오래전 나온 소설을 다시 개정판으로 냈다. ‘그레이트 러브’는 장진호에서 실종된 카우보이 쟈니와 미국 몬태나주 목장의 시골처녀 애니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그린 소설로 한글과 영어로 동시 수록됐다.

이와함께 ’에세이집 ‘꽃 한송이의 사랑’도 펴냈다. 미국의 참전군인이 가족과 함께 해마다 한국을 방문해 격전지를 돌고 6.25 전쟁 당시 미 함정에 실려 있던 종을 가져와 치며 실종자를 애타게 부르는 사연 등 참전군인들의 얘기가 대부분이다.

전 씨는 “역사는 감추는게 아니라 계속 공부해야 한다”며,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길 기대했다.

빅토리호에 수여했던 무궁훈장을 잃어버려 안타까워한다는 소식에 열 일 제쳐두고 정부가 새 훈장을 수여할 수 있도록 발벗고 나섰던 전 씨는 “역사에서 도움을 받은 건 고마움을 표시하는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역사를 바로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거에요. 우리를 도와준 나라가 67개국이에요. 타이티 같은 나라도 한국전쟁에 도움을 줬어요,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중요해요.”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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