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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시장 좌판도 자세히 보셨나요?’ 류성희 미술감독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송강호가 자장면을 허겁지겁 먹던 취조실(‘살인의 추억’), 현란한 무늬의 벽지가 돋보였던 오대수의 방(‘올드보이’), 어디서도 본 적 없던 파스텔톤 정신병원(‘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모두 류성희 미술감독(46)의 손 끝에서 탄생했다. 영화 속 미술은 스토리에 압도당하기 쉽지만, 류 감독이 만든 배경과 소품은 스토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이 분야 베테랑인 그가 윤제균 감독과는 처음 호흡을 맞췄다. ‘국제시장’ 크랭크인 당시 윤 감독은 류성희 미술감독과 최영환 촬영감독(‘도둑들’), 임승희 의상감독(‘명량’) 등을 일컬어 ‘레알 마드리드급 스태프’라며 만족스러워 했다. 반면 류 감독은 설렘보다는 부담감이 컸다. 윤 감독이 천만 흥행 이력의 소유자인데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작품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어깨가 무거운 일이었다. 

“거의 한 달 동안 자료 조사만 했어요. 독일 탄광이나 흥남철수와 관련한 자료는 있는데, ‘국제시장’의 변천사에 대한 자료는 사진 한 장이 전부였어요. 그 곳에 살았던 분들도 계시는데 상상력에만 의존할 순 없었죠. 다행히 부산에 사는 분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사진을 어렵게 구할 수 있었어요.”

몇 장의 사진에서 힌트를 얻어 미술팀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최근에 이르기까지 ‘국제시장’의 변천사를 담았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건물 외관은 물론, 판매 품목의 변화까지 확인할 수 있다. 초기엔 소시지나 군복 등 생필품 위주였다면, 점차 수입 통조림과 기호식품까지 취급품이 늘었다. 관객 열에 하나 정도만 눈치 챌 법한 디테일까지 다 챙긴 것이다.

워낙 독창적인 영화미술에 일가견이 있는 그인지라, 고증에 충실해야 하는 이번 작업이 아쉬울 법도 했다. 류성희 감독은 “‘국제시장’처럼 리얼리티에 집중하다보면 판타지 영화 작업을 하고 싶고, 판타지 영화에 합류하면 또 리얼리티가 그리워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혀 다른 장르의 작업이 ‘마치 다른 종류의 손이나 머리를 쓰는 것’처럼 흥미롭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님과 일 할 때는 자유로운 만큼 독창적인 결과물에 대한 강박이 커요. 그럴 땐 자료에 근거해서 만들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죠. 상대적으로 리얼한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을 할 때는 또 ‘지긋지긋한 이놈의 리얼리즘!’ 이러면서 왔다갔다 해요.(웃음)”

류성희 감독은 순수미술(도예)을 전공했지만 영화미술로 전향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개인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만, 불특정 다수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에 대한 갈증이 컸다. 결국 데이비드 린치의 모교이기도 한 미국영화연구소(AFI)로 불쑥 유학을 떠났다.

“힘들었던 10대 시절에 제3세계 영화가 구원처럼 영감과 감동을 줬어요. 세계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도 됐죠. 제 미술이 판타지 영화에선 같이 판타지 역할을 하고, 사실주의 영화에선 진짜처럼 느껴지되 정서적으로 살아있고 아름다운 느낌을 주면서 영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영화판에서 솜씨를 부린 지 어느덧 14년 째. 이번 ‘국제시장’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괴물’, ‘변호인’에 이어 세 번째로 크게 흥행한 작품이다. 그간 대중적 혹은 비평적으로 성공한 작품, 실패한 작품을 두루 거쳤다. 그럼에도 자신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 흥행할 때면 들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는 “(내가 참여한 영화가) 더 많은 관객들과 접촉하고 그들의 삶에 감동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설렌다”고 털어놨다.

‘국제시장’의 흥행을 즐길 틈 없이 류성희 미술감독은 또 촬영 현장에 파묻혀 있다. 현재는 최동훈 감독의 ‘암살’을 작업 중이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도 그 뒤에 줄서있다. 올해도 눈이 호강할 작품들이 줄줄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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