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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세계사] 마리 앙투아네트, 정말 희대의 악녀였을까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각종 오명을 뒤집어쓰고 남편 루이 16세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로 꼽히는 희대의 악녀’ 혹은 ‘시대의 격류에 휘말린 비운의 왕비’라는 양 극단의 평가를 받는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루이 비제 르 브룅, 1779년작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당시 그가 남겼다고 회자되는 말입니다. 민중의 아픔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비정한 왕비로 묘사되는 대목이죠. 사치스럽고 방탕한 프랑스 왕실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프랑스 대혁명(1789-1794)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왕비의 책임은 어마어마해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왕비가 큰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고 특별한 실책을 저지른 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를 둘러싼 온갖 추문도 그 진원지를 추적해보니 완전히 날조가 되었다고 하죠. ‘빵 대신 케이크’ 발언 역시 사실무근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기도 하고요. 당시 혁명군이 악의적으로 부풀린 말입니다.

시민들에게 공격받는 바스티유 감옥, 장 피에르 루이 로렌트 휴엘, 1789년작

오히려 왕비는 어머니에게 “가난한 국민을 위해 정치를 펴겠다”는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여러 연인과 혼외정사를 한다는 둥 동성연애를 한다는 둥 온갖 추문이 그의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까요?

우선 그의 결혼이 어땠나 봅시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 앙투와네트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인 루이 16세와 결혼을 합니다. 강대국으로 떠오르던 프로이센을 견제하기 위한 정략 결혼이었죠. 그런데 두 나라는 오랜 전쟁을 치러온 앙숙 관계입니다. 프랑스인들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오스트리아 계집’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배우자를 잘못 만나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닐 겁니다.

1793년 1월, 국고를 낭비하고 국가에 대한 음모가 있었다는 죄목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된 루이 16세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 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1785) 역시 왕비는 거대한 사기극의 피해자입니다. 라 모트 백작부인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칭해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가로챈 사건이죠. 재판을 통해 왕비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게 가려졌는데도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왕비의 침전 상궁이었던 캉팡 부인의 회고록에도 “루이 16세는 이 목걸이를 왕비에게 선물하려고 했지만 왕비는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고 나오지만, 아무튼 왕실을 향한 민중의 분노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로 쏠리게 됩니다.

더욱이 말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쓴 왕실 예산은 프랑스 전체 예산의 3%이고, 이 가운데에서도 왕비는 10% 정도만 썼다고 합니다. 검소한 왕비라고도 할 수 없겠지만 희대의 악녀라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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