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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대담> “집값 올려 내수 살리기는 신중해야…규제개혁이 더 급해”
-한덕수 무역협회 회장
임금 상승 등 통한 경기부양
반드시 맞는 방향이라 볼 수 없어

한국 내수시장 세계 ‘74분의 1’ 규모
수출 경쟁력도 잃지 않도록 해줘야

농업 분야 FTA 피해 우려 많지만
농산품도 주요 수출품목 중 하나


한덕수 무역협회장의 말은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경제 관료와 통상 전문가로 살아온 지난 40여년의 세월이 녹아있어서인지 그의 주장에는 항상 숫자와 경험이 동반된다. 사실과 경험이 근거가 되니 동의 여부와 상관 없이 그의 주장은 명확하게 듣는 이의 마음에 전달된다. 신년을 맞아 대한민국 경제의 2015년을 조망하고자 한 회장을 만났다. 1시간30분 동안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숫자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공통된 키워드는‘ 개방’과‘ 규제개혁’이었다.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이용해 우리 경제의 문을 활짝 열어 기업이“ 국내라는 한계를 벗어나 해외를 무대로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올 해 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삼은 내수 부양은 소비 증대 정책이 아닌 규제개혁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금 및 주택가격 인상을 통한 내수 살리기가 우리 경제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동 시장 유연성이나 수도권 규제 등 다소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가장 시급히 폐지돼야 할 규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내수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방향이 맞다고 보십니까?

▶우리나라 내수 규모는 1조2000억 달러, 해외는 74조 달러 정도입니다. 수입과 수출을 합쳐서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비율이 미국, 일본은 24~25%정도인데 우리는 100이 넘습니다. 한국 경제는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고, 거기서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경제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통일 이후 인구가 8000만명이 넘고 소득 수준도 3~4만 달러가 되면 내수도 괜찮겠지만 당분간 우리 내수는 전세계 1/74 밖에 안됩니다.

이런 나라에서 어떤 정책을 해야할까요. 뒤처진 내수도 빨리 일으켜야 하지만 동시에 수출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해줘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발전할수록 원화는 점차 강세가 됩니다.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죠. 물론 새로운 제품, 서비스 개발을 통해 품질경쟁력을 높여야겠지만 전체적으로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가격경쟁력도 지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은 임금 수준입니다. 임금이 생산성에 비해 너무 높으면 안된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내수가 좀 힘드니까 이 부분을 올려야 한다고 접근하는 것은 리스크가 굉장히 클 수 있습니다. 임금, 집 값, 교육비 등을 올려버리면 앞으로 직면하게 될 국제 여건, 환율 절상 등의 문제와 안맞게 되는 것이죠. 그리스, 이탈리아의 전례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현 정부의 내수 부양 기조와 차이가 있어보이는데요?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수 진작을 규제개혁을 통해 접근하는 것은 옳다고 봅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집 값)를 올려서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논리, 이것은 소비 증대를 통해 내수를 살리겠다는 말인데 굉장히 신중해야 할 일입니다. 구조개혁과 내수 진작이 어느정도 양립해야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을 올려서 수요를 일으키는 것이 맞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다’는 말입니다. 통화를 늘리고 금리를 내리는 일도 단기적인 조치일 뿐 장기적인 정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한덕수 무역협회장은 헤럴드경제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부동산 경기를 올려서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생각은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회장은 내수 부양의 핵심은 규제개혁이라고 말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일본은 최근 3조4000억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놨습니다. 임금을 올리고 돈을 풀자는 말인데요.

▶일본은 내수가 큰 나라입니다. 임금 상승으로 가격경쟁력을 잃을 경우 수출이 줄어드는 효과를 상쇄할 수 있는 경제 구조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과는 다릅니다. 해외 수출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 내수를 촉진할 수 있는 균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방법을 굉장히 면밀히 검토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정이 전혀 다른 것이죠. 우리에게는 국제경쟁력을 잃는 것이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국제경쟁력을 침해할 정도로 지나치게 내수 부양에 치중 하는 것은 신중해야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내수 부양의 핵심은 규제개혁입니다. 집 값이나 임금을 올려 내수를 부양하는 것은 신중해야합니다. 가장 시급한 규제개혁은 수도권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입니다. 지방균형발전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방이 균형적으로 발전해야 중장기적으로 경제도 성장한다는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처럼 ‘수도권에는 무조건 못세운다’는 식의 규제는 열등한 주장입니다. 지방이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입니다. 수도권을 무조건 규제할 경우 지방은 노력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기업이 지방으로 오는데 누가 노력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자원의 배분이라는 측면에서도, 수도권 규제가 없어야 땅 값이 비싼 수도권에 고부가가치 산업만 남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산업은 지방에서 지자체와 협력해 경영을 하게 되겠죠.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는 최근 논란이 많습니다.

▶기업이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 인원 조정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지금보다 많지 않으면 기업이 인력에 투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집니다. 다시 말하면, 고용 조정이 안된다는 것은 사람을 고용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의미인데요. 비용이 많이 들면 기업은 당연히 고용을 안하게 됩니다. 그러면 비정규직, 영구한 고용을 하지 않는 체계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또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만 발전하게 됩니다. 2년 고용하면 정규직 전환하라고 하니 1년11개월만 고용하고 해고하는 문제가 실제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어느 정도 기간이 적당하다’고 정할 수 있을까요? 이런 부분은 가능한 기업과 근로자의 몫으로 남겨야 합니다. 정부는 인력이 활발히 공급될 수 있도록 교육이나 직업훈련 시스템을 바꾸는 일을 해야죠. 전세계적으로 고용 기간을 규제하고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 뿐입니다. 일본도 규제를 강하게 하다가 최근 대폭 풀려는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올 해 경제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의 경제 회복이 러시아, 유럽의 위기를 희석시킬 수 있을까요?

▶전 세계 국가 중 현재 경제가 회복 국면을 보이고 있는 곳은 미국, 영국, 일본 정도입니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해도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올 해 세계 경제가 3.8%, 교역은 4%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요. 제한된 성장세 안에서 누가 더 경쟁력을 강화해 파이를 키우느냐의 경쟁입니다. 우리는 FTA를 많이 체결했기 때문에 이런 어려운 와중에서도 수출 경쟁력이 좀 더 있습니다. 지난해도 1~11월까지 FTA를 체결한 국가와는 6% 이상, 그렇지 않은 전체 세계 수출은 2.3% 정도 늘어났습니다.

-FTA가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FTA에 대한 오해가 많이 해소되기도 했습니다. 실적이 말해주고 있죠. 예를 들면 한미FTA의 경우, 지난해 1~9월까지 미국의 대(對)한국 수출 증가율이 11.1%였는데 같은 기간 미국의 대(對)세계 수출 증가율은 3.3%였습니다. 이 기간 한국의 대미국 수출 증가율은 10.3%, 대세계 수출은 2.6%였습니다. 결국 미국과 한국 모두 윈윈이었다는 의미입니다. 농업이 망할 것이라고 했지만 망하지 않았고, 한우의 시장 비중은 여전히 40~50%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FTA는 이제 양자에서 다자간 협정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절대 빠져서는 안됩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경우 참가국 12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합하면 전 세계 GDP의 40% 규모고, 이들 국가의 교역 규모는 9조 달러 수준입니다. 이중 원자재, 부품의 비중이 2조2000억 달러 정도입니다. 한국이 TPP에서 빠질 경우 영향은 굉장히 심각합니다. 12개 국가끼리는 경제가 통합돼 어느 나라에서 부품, 원자재를 쓰더라도 역내산으로 인정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와 양자FTA를 맺고 있다하더라도 포함될 수 없습니다. 예를들어 우리와 미국이 FTA를 맺고 있으니 양국 간의 거래에서는 서로의 부품을 역내산으로 인정하지만 미국이 베트남, 호주 등에 자동차를 팔 경우 한국산 부품을 쓰면 이는 역내산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경우 한국의 제품 대신 TPP 가입국인 일본 부품을 살 공산이 큽니다. TPP 12개국 교역에서 축출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TPP에 빨리 들어가야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정부가 빠른 시일내에 TPP에 참여하는 것으로 정하고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12개 국가와 집중적으로 협의해야 합니다.

-농업 등 FTA로 인한 피해 분야에 대한 우려도 많습니다. 무역협회에서는 어떤 대안을 마련하고 있습니까?

▶농산품은 주요한 수출 품목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무역협회는 농산품을 해외로 수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자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온ㆍ오프라인을 통해 수출하는 방법도 있고 해외 거대 유통망을 적극 이용해 해외에서 우리 농산물을 사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장자그룹이라는 중국 기업은 한중FTA를 계기로 최근 전남 완도에 5000억원을 투자해 전복을 사가기로 했습니다. 중국이라는 시장이 있고, 또 우리가 TPP를 통해 일본과 간접적인 FTA를 맺어 일본 농산물 시장을 열 수 있다면 우리 농업에 또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성장을 이끄는 차기 성장동력은 무엇이 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어떤 품목을 어떻게 개발하고 팔지는 기업이 고민해야할 일입니다. 기업들이 정말 무섭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저 기업이 이런 일들을 잘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을 통해 좋은 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해야죠. 좋은 인력을 많이 양산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개혁하고, 엔젤펀드나 크라우드펀딩을 도입해 창업이 활성화 될 수 있게 해야합니다. 주력 제품은 항상 바뀌어 왔습니다. 경제 발전 역사를 보면 하나의 주력 제품이 영원했던 적은 없죠. 끊임 없이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쫓기고 잡히는 상황은 기업 사회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조금 삐끗하면 잡히니 또 열심히 도망가야죠. 정부는 이런 선순환이 가능하도록 비합리적인 규제를 과감히 없애고 기업이 자유롭게 쫓고 쫓길 수 있도록 해줘야합니다.

정리=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한덕수 회장은…

한덕수(65)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대한민국의 발전과 함께해 온 대표적인 경제인사다.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경제학 석ㆍ박사를 마친 그는 1970년 6월 제 8회 행정고시를 합격해 관세청 가격조사관실에서 사무관으로 경제 관료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상공부 산업정책국장,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통상산업담당 경제비서관,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등을 거쳐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3월부터 2006년 7월까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았고, 2007년 4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제38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2009년 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3년간 주미 대사를 맡았고 2012년 3월부터 현재까지 제28대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와 함께 뛰어 온 40여년 동안 한 회장의 이름 석자 뒤에 늘 뒤따르는 대표적인 수식어는‘ FTA 전도사’다. 그중에서도 한ㆍ미FTA는 한 회장이 밑그림을 그린 대표적인 FTA다. 

한 회장은 2006년 7월부터‘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한 회장은 무역협회 회장 취임 이후에도 우리 사회의 FTA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2012년에는 한미FTA 추진 공로를 인정받아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밴플리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 회장은 지난 3년 여간 무역협회장으로 활동하며 특히 전국 지방 수출기업들을 직접 찾아 기업인들의 애로를 듣고 해소하는데 힘써왔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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