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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을 살까”결정장애 소비자 챙겨라
너무많은 상품·유통 채널에 질려
구매하려다 선택 못해 쇼핑포기

전문성 있는 맞춤형 정보 제공
선택갈등 줄이는 마케팅 전략을



직장인 김모(36) 씨는 이번 겨울 직전 패딩 점퍼를 사려고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갔다. 마음에 드는 상품을 하나둘 장바구니에 담아뒀더니 두어시간만에 10개가 넘는 상품이 등록됐다. 장바구니 안의 상품을 2차 선별해야 하는 작업이 남았지만 김 씨는 지레 질려 인터넷 창을 닫아버렸다.

며칠 뒤 김 씨는 전에 못 산 패딩 점퍼를 사기 위해 경기도 파주의 아웃렛을 찾았다. 상가 이곳저곳을 누빈 끝에 살 만한 후보군을 세가지로 추렸지만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김 씨는 피팅룸에 들어가 옷을 하나씩 걸친 뒤 셀카를 찍어 친구들과 함께 만든 단체 카카오톡방에 올렸다. “괜찮은 옷 좀 골라줘.”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배분할 것인가’를 묻는 선택과 기회비용의 문제는 경제학의 고전적 주제지만, 최근 소비시장을 흔드는 문제적 현상으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인간의 두뇌로는 좀체 처리하기 힘들 정도의 소비 정보 과잉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선택이 합리적인가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처럼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이는 이들을 규정하는 용어로 ‘결정장애ㆍ메이비(Maybe) 세대’, ‘햄릿 증후군’, ‘카운트 십(Count Sheep)’ 등의 신조어도 범람하고 있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선택’의 문제에 직면했다. 이를 빗대 결정장애ㆍ메이비(Maybe) 세대, 햄릿 증후군, 카운트 십(Count Sheep) 등의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사진은 롯데마트 생필품 코너.


▶정답 찾기 어려운 다차원의 소비 방정식=소비자들이 선택 장애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로는 선택지가 다양해진 것이 꼽힌다.‘짬뽕을 먹을 것이냐, 짜장면을 먹을 것이냐’의 문제는 한국인들의 풀기 어려운 난제였지만 그나마 쉬운 편이었다.

이제는 중식, 일식, 태국식, 베트남식 등 보다 상위 카테고리에서부터 어려운 고민이 시작된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완전 식품’을 내세웠던 우유의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필연적이다. 전통의 식품 강자들로서는 위기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국내 식품 품목군별 경쟁 구조 분석’에 따르면 3개 업체가 시장의 75% 이상을 차지하거나 1개 업체가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고위 독과점 시장의 비중은 2009년 11.9%에서 2011년 6.4%로 감소했다.

유통 채널의 다양화도 큰 요인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해외 직구는 유통의 국경을 허물어뜨리고 있고, 모바일은 이미 유통의 핵심 채널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쇼핑몰과 소셜커머스, 홈쇼핑 등 온라인 유통은 물론 백화점과 아울렛, 마트 등 오프라인까지 앱을 통한 직간접 거래량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가 추산한 올해 온라인 쇼핑 시장 규모는 약 55조원. 특히 인터넷 쇼핑 중 스마트폰 등 스마트 기기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커머스 시장은 전년 대비 122.3% 신장한 13조원을 넘어섰다. 소비자들로서는 무엇을 사느냐 이상으로, 어디에서 사느냐의 문제가 중요해진 것이다.

아울러 인터넷의 발달은 이 모든 정보를 구하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놓았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선택지가 제한된 시절의 소비는 간단한 1차 방정식을 푸는 수준이었지만, 오늘날의 소비는 미지수가 여러개인 다차원의 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보 공해가 만든 소비 디스토피아=문제는 이 다차원의 방정식을 푸는 것이 너무 어려워 아예 소비를 포기하는 현상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합리적 경제 주체가 경쟁하며, 관련 정보들이 자유롭게 통하는 것을 고전 경제학에서는 유토피아적인 시장 작동 상태로 전제하지만, 인간의 합리성을 지나치게 과대 평가했다.

시나 아이엔가(Sheena S. Iyengar)와 마크 레퍼(Mark R. Lepper) 교수 연구팀은 대형 마트에 딸기잼의 종류를 다르게 진열할 때 소비자들이 어떤 구매 행태를 보이는 지 관찰한 결과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6가지 잼만 진열한 경우 소비자의 30%가 구매했지만, 24가지로 확대해 진열하자 단지 3%만이 구매했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면 소비자들은 되레 선택을 포기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에는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물건이라는 것은 없다”며 “고민 끝에 선택을 포기한 것은 주머니가 가벼운 소비자에게는 절약을 했다는 확실한 만족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결정장애 세대’라는 책을 낸 독일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는 소비자가 선택의 미로를 헤맬수록 경제는 활력을 잃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인간에게 지나친 합리성을 강요할 때 시장은 디스토피아가 된다.

▶부동의 ‘햄릿’을 움직여라=업계에서는 ‘햄릿’이 돼 버린 소비자들을 특정한 선택지로 이끌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비자들에게 맞춤형 정보를 엄선해 제공하는 ‘큐레이션 커머스’다.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를 넘어선 차세대 온라인 쇼핑이라는 점에서 ‘커머스 3.0’이라고도 불리는데, 소비자는 전문가의 네트워크와 안목을 통해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고, 전문가마다 다른 스타일을 추천하기 때문에 다양한 스펙트럼의 검증된 제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국내 큐레이션 커머스 업체들은 2012년부터 등장해 소비자들의 인기를 받으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뷰티 큐레이션커머스 업체 미미박스는 수십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고, 해외 직구족을 노린 업체 미스터쿤, 반려동물에 필요한 물품을 구성해 발송해주는 펫츠비 등 종류도 다양하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지난해 9월에 농산물 큐레이터 제도가 포함된 농산물 온라인 직거래 플랫폼 ‘이웃농촌’을 오픈했다. 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의 구매 경향을 알아채기 위한 빅데이터 분석도 점점 더 정교하게 가다듬고 있다.

이밖에 누리꾼을 통해 자발적으로 기업의 제품을 홍보하게 하는 ‘입소문(바이럴) 마케팅’이나 ‘모디슈머’와 같이 능동적인 소비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는 참여형 마케팅도 더욱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광고에 있어서는 소비자의 정보처리능력의 한계를 감안해 메시지를 단순화하는 전략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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