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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상실’이 깨닫게 해준 가족의 의미
김종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마켓 및 산업총괄본부 대표


1973년 8월 영국에서는 영국 최대의 화재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각지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러 왔던 사람들은 휴양지에서의 달콤한 추억 대신 생과 사를 오가는 끔찍한 경험을 했던 사건이다. 약 3000여 명의 투숙객 가운데 50여 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던 현장은 실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몇 년이 지난 후 한 심리학자가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대한 연구를 했다고 한다. 당시 언론 기사들과 생존자 인터뷰를 통해 그가 도출한 결과는 상당히 놀라우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화재 발생 시 가족 단위 휴양객들은 서로를 악착같이 찾아 함께 사력을 다해 도망쳐 대부분 생존했다. 반면 친구끼리 휴양지를 찾았던 사람들은 제각각 흩어져 살아남은 사람은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위기 상황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했던 것, 바로 ‘가족의 힘’이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가족간의 믿음과 신뢰가 깔려있음은 부언할 필요가 없겠다. 

을미년(乙未年) 새해를 맞는 시점에 역사 속의 참담한 순간을 화두로 삼는 이유가 있다. 힘든 순간 순간을 이겨내게 하는 힘,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치지 않는 가족의 의미는 필자도 최근 천착해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필자는 아내를 먼저 떠나 보냈다. 투병의 시간이 길었다면 모르겠으나 급작스럽게 맞이한 ‘이별’은 필자의 심신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반려자를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엄마를 가슴에 묻은 아이들의 황망함,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로서 채울 수 없는 엄마의 빈자리에 대한 우려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悔恨)이 되어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그 회한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때 늦음’이다. 필자의 아내도 그랬듯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기억만 가져간다고 한다. 하지만 떠나 보내는 자의 마음은 정반대다. 좋은 남편으로 잘해줬던 기억은 온데간데 없고, 미안하고 짠했던 순간들만 더욱 또렷해지는 것 역시 인지상정일까.

가족의 의미를 얘기할 때 떠오르는 소설 두 편이 있다. 하나는 강력계 형사 출신으로 소설에 도전한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1996년)요, 또 하나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2008년)다. 전자는 오직 가족을 위해 살다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에서야 가족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는 줄거리로 우리 주변 ‘평범한’ 아버지의 삶을 잔잔하게 그렸던 작품이다. 외환위기의 한파로 꽁꽁 얼어붙었던 시기였지만 두 해 연속 100만부 판매고를 올렸다.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김정현 작가의 글은 투박했지만, 현실 보다 더 현실에 가까운 담백한 소설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시골에서 상경한 엄마가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실종되는 사건을 시작으로 가족들이 사라진 엄마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잘 모르거나 어쩌면 무시했던 엄마의 인생을 발견하게 된다.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이 두 작품은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공통 분모가 있으니 바로 그들의 ‘상실’이다. 소설 속에서 상실은 가족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었고, 그들의 존재뿐만 아니라 가족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중요한 단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느끼는 강한 연대감은 ‘때늦음’이었다. 늦었기에 서둘렀고, 늦었기에 회한의 깊이는 더욱 깊었을 것이다.

아내의 ‘상실’을 계기로 30여 년을 되돌아보면 회계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었다. 전문가로서 내린 필자의 의사결정이 어쩌면 혹자에게는 가혹했던 건 아니었을까, 순간순간 배려에 소홀하진 않았나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직업의식, 직업적 소명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앞세우기 전에, 매 순간순간이 명분에 충실한 결정이었다고 내 가족 앞에서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도 반추해 본다. 직업도, 가족도 상실하게 전에 그 참된 가치를 아낌없이 누리라. 인생의 ‘대차대조표’가 아직은 작성 중임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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