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스포츠=박성진 무술전문 기자]태권도의 뿌리인 5개 기간 도장 중 하나인 송무관의 창설자이자 지난 해에 방한한 바 있는 노병직 선생. 그가 30년 전인 1985년 제자들에게 보낸 2통의 편지를 공개한다.
2통의 편지는 모두 특정 개인이 아닌 ‘사범 제위’로 통칭되는 제자 및 후배 태권도 사범들에게 보내진 것으로 모두 3월에 보내졌다.
한 통은 A4 2장짜리 분량으로 3월만 표기되고 날짜가 적시되어 있지 않으며, 다른 편지는 A4 4장짜리의 분량으로 3월 27일이라는 날짜가 표기되어 있으며, 맨 위에 제자인 ‘강무영 사범’의 이름이 적혀 있다. 짧은 분량의 편지가 문맥상 시기적으로 앞선 것으로 보고 편의 상 첫 번째 편지로 표기해서 게재한다.
이번 노병직 선생의 편지에는 태권도의 초창기 역사, 태권도 관 통합에 관한 증언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두 번째 편지에는 미묘한 내부 갈등까지도 생생하게 서술되어 있어 진정한 태권도의 역사를 밝히는 게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편지 사본은 미국 LA 도산체육관의 창설자 김용길 사범으로부터 입수하였다. 김용길 사범은 노병직 선생의 초기 제자 중 한 명으로 미국 태권도계 및 한인체육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온 인물이다.
편지 원문의 한자는 한글로 읽었고, 필요한 경우에는 한자를 병기했고,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은 현재에 맞게 고쳤다.
<사범 제위에게 (1985년 3월 제1편)>
국외에서 태권도 지도를 하며 국위선양에 힘쓰고 있는 사범들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는 바이다.
본인은 일찌기 우리나라 고유 무술을 습득하고 뜻한 바 있어 일본으로 건너가서 근대적으로 체계회되어 잘 발달된 공수도를 연구하고 1944년 2월에 귀국하여 3월 11일 개성시 자남동에 당수도 송무관을 창설한 지 어언 41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동안 송무관은 물론 각종 태권도협회, 연맹 등 과거를 회상하면 있었던 수 많은 일들이 지금은 주마등처럼 교차하고 실로 감개무량한 바이다.
우리나라 택견(은) 고구려 시대에 기원하여 신라 특히 고려조 중기 때부터 가장 성황을 이루웠던 것이 이조말기에 문존무비의 악풍과 일제의 탄압으로 인하여 그 자체를 감추고 말았었다.
개성은 고려 5백년의 왕도이며 나의 출생지이다. 나는 역사 깊은 내 고향 산천에서 그 옛날과 같이 사도(斯道)를 승화시켜 보겠다는 포부와 염원을 가지고 송무관을 창설하게 된 것이다.
당시 일제하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당수도를 합법적으로 공개 지도한 도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1944년 후반기에 이르러 제2차대전이 치열해지자 일제는 우리 청장년들을 징병 또는 징용으로 징발하는 등 최후 발악을 하던 때였기에 그 당시의 제반 악조건 하에서는 더 이상 도장을 지속하기 곤란하여 8월 23일 일단 중지를 하였다. 이 무렵 일본에서 나와 같은 도장에서 연구하고 돌아온 이원국씨가 서울 서대문에서 당수도 청도관을 창설하였으나 그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서 중지하고 말았다.(참고로 덧붙임)
8.15해방 후 개성시 동흥동에서 본관을 재발족하여 본격적으로 그 기능을 발휘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우리나라 태권도의 전통과 역시 깊은 기간(基幹) 도장임을 제군들은 다시 한 번 자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한편 서울에서는 이원국씨가 청도관을 재발족하였고 또 조선연무관 유도장에서 권법부가 설치되자 일본에서 돌아온 전상섭씨가 사범을 담당하고 후에 지도관 개칭, 황기씨가 교통부우회에 당수부를 설치하고 후에 무덕관으로 개칭, YMCA권법부가 설치되므로 일본에서 돌아온 윤병인씨가 사범을 담당하고 후에 창무관으로 개칭.
이와 같이 해방 전에는 단 두 개 밖에 없던 도장이 해방이 된 다음해 1946년도부터 재발족 그리고 3개 도장이 새로 생겨 모두 5개 도장으로 그 수가 증가됐다. 매우 고무적이고 바람직하였다.
한편, 최홍희씨가 군에 오도관을 창설한 것이 후에 일반에게 알려졌다.
이상은 우리나라 초창기에 생긴 기간도장들이며 여기서 배출된 수 많은 훌륭한 태권도인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로 진출하여 열심히 태권도 보급을 한 것이 밑거름이 되고 뒷받침이 되어 세계연맹도 조직이 되고 세계만방에 태권도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을 무한한 기쁨으로 생각한다.
특히 86아세안게임 선택과 88올림픽 종목 선택은 모든 사람들의 공이라고 하겠다. 본인은 이와 같이 태권도가 날이 갈수록 발전되어가고 있는 것을 항상 기뻐하면서도 이면에는 오래 전 부터 제도상 불미한 점이 많음에 염려가 된다. 그러나 미비한 점들도 차차 잘되리라고 믿으며 이에 송무관 출신 사범들이나마 현실에만 너무 급급하지 말고 태권도 백년대계의 먼 앞날을 위하여 더욱 더 분발하여 주기 바라며 사범 제위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바이다.
1985년 3월 송무관 세계태권도본부 총재 노병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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