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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건설사 직원 세종시 아파트 매입 급증한다는데…이유는?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실은 저도 그 아파트 하나 계약했어요. 미계약분 나온 걸 겨우 구해 계약했죠. 지금은 웃돈이 3000만원 정도 붙었다는데 저는 입주하려고요. 앞으로 더 오를테니까요.” 세종시에 아파트를 분양한 한 건설사 직원 얘기입니다. 그는 건설사 직원으로서 이렇게 큰 혜택을 누릴 줄은 전혀 몰랐다는 듯 만족스런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지난 200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까지 터져나왔던 건설사의 직원에 대한 강제 ‘자서분양’ 사태는 그와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아 보였습니다.

자서분양이란 건설사가 중도금 대출을 일으켜 공사대금 등을 충당하기 위해 자사 또는 협력업체 임직원(가족 포함)을 동원해 주택을 강제로 분양받도록 하는 겁니다.

회사 보유분 미분양 아파트를 직원들이 강제로 떠맡는 이른 바 자서분양은 불과 3~4년 전까지 건설업계에서 관행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때는 건설사 직원이 회사 아파트를 분양받았다고 하면 사람들로부터 수상한 시선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그 얘기는 회사가 어렵다는 의미였습니다. 직원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회사의 고통분담에 동참하긴 했으나 삐끗하면 그 직원마저도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세종시 핵심입지로 알려진 2-2생활권 아파트가 본격 분양되면서 분양 열기가 뜨거웠던 2014년 세종시 분양 현장.

2009년 B건설의 한 직원은 회사의 8억원짜리 미분양 아파트를 회사의 대출이자 지원 약속에 5억원의 대출을 끼고 분양받았다가 낭패를 당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가 약속대로 300만원 가량의 이자를 매월 내줬지만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대출이자 지원이 끊깁니다. 이후 이자를 못낸 그는 결국 신용카드 정지, 살던 집 가압류 등을 거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지난 2012년 부도가 난 P건설사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직원들은 이 회사가 부도나기 전 자사 미분양 아파트 600여채를 약 3000억원의 대출을 끼고 분양받았다가 회사 지원이 끊기면서 다수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습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건설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감돌면서 이런 피해는 속출했습니다. 당시 자서분양으로 인한 대출액 규모만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2009년 D건설은 지방 5개 아파트 사업장 미분양분을 사내 공고를 통해 직원 922명에게 분양받도록 해 2300억원이 넘는 중도금 대출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결국 D건설 주택사업본부장, 시행사 대표 등 6명은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지요. G건설 역시 지난 2011년 수도권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미분양 707가구를 직원에게 분양해 약 2000억원의 대출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당시 이 회사는 “강제가 아니라 원하는 직원의 신청을 받은 것일 뿐”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결국 2013년 하반기, 정부는 심각한 수준의 건설사 직원 자서분양 피해를 막기 위해 대책을 내놨습니다.

건설사 직원 분양자에게는 기본적으로 중도금 대출이 안 되도록 하고, 만약 직원이 회사의 강압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 분양을 받는다는 확인서를 건설기업 노조로부터 발급받으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인 2014년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건설기업 노조 측에 확인 결과 2014년 한 해 동안 건설사 직원들이 확인서까지 써가며 아파트를 많이 분양받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건설기업 노조 관계자는 “2014년에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아파트를 많이 받는 현상이 두드러졌다”며 “특히 세종시에서 건설사 직원들이 아파트를 분양받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건설사 직원들을 위해 그들이 아파트 분양을 받기 어렵게 구조를 바꿔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이 자발적으로 아파트 분양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2014년에는 대다수가 세종시 아파트 값이 오를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세종시는 2014년 세종시의 핵심 입지로 널리 알려진 2-2생활권 분양으로 한바탕 시끄러웠습니다. 주변 단지보다 더 비싼 분양가에도 불구하고 분양하는 단지마다 예외없이 높은 청약률을 기록했고, 정당 계약기간 내에 대부분의 아파트가 계약됐으며, 나머지 잔여 물량도 빠르게 팔려 나갔습니다.

결국 건설사 직원들도 이런 청약 광풍을 목도하며 평정심을 찾지 못하고 분양 경쟁에 뛰어들고 만 것입니다.

결국 회사의 강제에 의한 자서분양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두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하던 건설기업 노조 측은 완전히 반전된 상황을 바라보면서 확인서를 발급하기에 바빴다고 합니다.

불과 3~4년 전 자서분양으로 피해를 본 건설사 직원들이 2014년 세종시 아파트를 분양받은 건설사 직원이 프리미엄 3000만원 정도 붙었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참으로 낯설겠지요.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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