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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가 버린…'못난이 농산물’ 지구촌 인기몰이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2년 전부터 전남 보성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는 김모(58) 씨는 애써 수확한 고구마를 상품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김 씨는 “공산품처럼 규격화해서 찍어 만들 수 없는 농작물은 크기가 들쭉날쭉해 너무 크거나 작으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거든요. 반은 버린다고 봐야죠”라고 말했다.

지구의 절반이 굶주리는데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상품’으로서의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못난이, B급, 규격외품’으로 치부되는 농산물이 최근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모양이 안예쁜 대신 가격이 저렴하고 맛과 영양도 그대로여서 소비자의 이목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명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최근 “50만의 영국인들이 푸드 뱅크(빈곤층을 위한 급식소)에 의존하는데 이처럼 채소와 과일이 버려지는 것은 범죄에 가깝다”며 못난이 농산물 소비 촉진 캠페인에 나섰다. 올리버는 구부러지거나 울퉁불퉁한 당근, 배, 감자 등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아 대량으로 폐기되는 현실에 주목, 영국 제2의 유통업체인 아스다와 손잡고 전국적인 판촉에 나설 예정이다.

올리버는 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농민들을 만나본 결과, 수천t의 신선 채소가 질적으로 문제가 없는데도 모양에 흠이 있다는 이유로 판로가 막혀있다는 사정을 접한 뒤, 소비자들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한 시범 판매를 제안했다.

아스다는 이달 26일부터 사전에 정한 일부 체인점에서 못생긴 채소와 과일들을 30% 가량 할인된 가격에 판매키로 했으며 향후 전국 각지의 체인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불황에 소비자의 지갑이 가벼워진 일본에서도 못난이 농산물은 인기다.

유기농산물을 택배 판매하는 ‘대지를 지키는 모임’이 지난해에 ‘규격외품’ 야채 및 과일 시리즈를 새롭게 발매했다. ‘대지를 지키는 모임’이 새롭게 취급을 시작하는 것은 15품목 정도의 농산물이며, 농협에서 정한 품질, 형태, 사이즈, 중량에 해당되지 않는 것들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예를 들어 큼직한 당근은 통상 상품보다 40% 정도 저렴한 5kg 당 약 1300엔으로 팔고 있으며, 큼직한 고구마는 50% 정도 저렴한 1.2Kg 당 약 260엔, 표면에 상처가 있는 사과는 1.5kg 당 800엔 정도로 40%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자 슈퍼와 생협에서도 ‘규격외품’을 취급하는 것이 정착된 상태다. 슈퍼에서는 불경기와 야채 품귀 현상이 있을 시마다 규격외품 야채 또는 과일, 생선 등을 취급하는 점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울 수 있어 많은 슈퍼들이 정규 판매 태세를 보이고 있다. 대형유통업체인 이나게야, 이토요카도, 코프삿포로, 파르시스템 생활협동조합연합회등도 규격외품 야채를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태도는 긍정적이다. 19세 이상 소비자 1000명 가운데 72.2%가 ‘B급 상품 구매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했고, B급 상품이 실제 시중에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응답자도 81.7%에 달했다.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11번가, 옥션 등 기존 온라인몰 업체들도 B급 농산물을 별도로 묶어 전문카테고리를 신설했고, 떠리몰, 임박몰처럼 아예 B급 농산물만 취급하는 전문 온라인몰도 있다.

부산의 예비 사회적기업, 파머스페이스는 못난이 농산물로 틈새시장을 개척했다. ‘총 판매하는 과일의 50%는 소농가 제품이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진 파머스페이스는 도매업자가 외면한 농산물들을 사들여 온라인으로 싸게 팔거나 카페에서 주스 등으로 가공해 판매한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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