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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값 뛰게 하는 컬렉터…다시 그림으로 대중의 가슴을 뛰게 하다
-안병광 서울미술관 회장(유니온약품 회장)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최근엔 어떤 그림을 샀습니까?”

“그게…말 못합니다. 내가 그림을 샀다는 소문이 나면 그 작가의 그림 값이 뛰어버리니까요. 잘못하면 그 작가를 웃자라게 할 수도 있어요.”

“명함이 여러 개일 것 같습니다.”

“아니요. 내 명함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내 청춘이 우리 약업계에 있는 걸요. 나는 영원한 약업인입니다.”

안병광(56) 유니온약품그룹 회장의 부암동 집무실엔 공간과 빛을 탐구하는 서양화가 정보영(41) 작가의 유화 한 점이 걸려 있다. 그의 2012년작 ‘Lie on upon another’는 책상 위 2개의 스탠드가 건조한 실내 공간을 노란 빛으로 밝히고 있는 작품이다. 그림 속 등불의 발화는 마치 안 회장의 집무실까지 채우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안 회장은 국내 미술계에 대표적인 컬렉터 중 한명이다. 취미로 그림을 사 모으다 취미가 도를 넘어 컬렉터가 되고 컬렉터를 하다 마침내 미술관까지 만들었다.

안 회장은 그림 값을 뛰게 하는 컬렉터다. 그가 그림을 사면 작가에게 유명세가 더해진다. 국립현대미술관도 따라 산다. 그런 그의 집무실에 걸려 있는 단 한점의 그림이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인왕산 북동쪽 바위산 기슭에 자리잡은 서울미술관은 지난 2012년 8월 안 회장이 설립한 사립미술관이다. 이중섭, 김창열, 전광영, 이대원, 천경자, 오치균 등 한국 근ㆍ현대 거장들의 작품이 서울미술관 소장품 목록에 올라있다. 연매출 3000억원의 중견 약업그룹 회장님의 또 다른 명함은 미술관 회장님. 그는 현재 그가 소장하고 있는 한국 근ㆍ현대미술 거장 36인의 걸작 70여점을 모아 서울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전시된 작품들 중 3분의 1이 이번에 처음 내놓은 작품들이다. 그래서 전시 타이틀도 ‘거장(巨匠)’전이다. 

안병광 서울미술관 회장(유니온약품 회장)이 과수원 길을 뛰놀던 깨복쟁이 어린시절을 회상하듯 이대원의 ‘사과나무’ 대형 작품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실적 꼴찌 영업사원이 그림을 산 이유는…=“그걸 ‘미술에 입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1983년이었어요. 월급 27만원 받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는데 20만원을 주고 그림을 산 거예요. 그림 한 점에 생활비를 다 써버렸으니 집사람한테 아주 혼이 났습니다. 한동안 밥 얻어먹기도 어려운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은 중견그룹의 회장님이자 저명한 미술품 컬렉터가 됐지만 30년 전 안병광은 170여명 중에 실적 꼴찌를 도맡은(?) 영업사원이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잘 나서지도 못하고, 표현력도 떨어지니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 그런 그에게 영업부 소장님의 격려 아닌 격려가 그를 마약같은 미술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소장님이 그림 한 점을 가져와 그런 얘기를 합니다. 영업이라는 것이 목표만을 좇다 보면 삶을 삭막하게 만들수 있다고요. 삭막한 세상을 감성적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림 한 점을 추천하더라고요. 그게 이남호 화백의 도석화였어요.”

안 회장이 월급을 털어 넣은 그 그림은 사실 좋아서 산 것은 아니었다. 그림을 볼 줄 알았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실적 꼴찌 주제에 회사에서 월급받는 것이 미안해서, 부원으로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상사에게 인간적인 ‘예의’ 차원에서 산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림을 집에 걸어놓으니 아내의 잔소리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고 부부 사이에 대화 거리가 생겼다. 그림 한 점을 놓고 공감대가 형성됐다. 안 회장은 이 화백의 도석화를 아직도 소장하고 있다.

▶“못 팝니다…안 팝니다…그림도 생명인 것을요”=그림을 샀으니 팔기도 했을 법. 아트 테크로 차익을 실현했는가를 물었다. 쉽게 말해 그림으로 돈을 좀 벌었느냐고.

“그림을 판 적이 거의 없습니다. 친분 있는 화랑 몇 곳에서 이제 예전에 구입한 작품들 정리하고 알토란만 챙기라고 하는 데도 정말 못놓겠더라고요. 아까워서라기보다 생명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 그도 사실 그림을 판 적이 있다. 2006년 12월엔 이중섭의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을, 2007년 3월엔 ‘통영 앞바다’를 미술품 경매에 각각 내놨다. 당시 위작파문으로 자취를 감췄던 이중섭 그림을 다시 한번 살려보자는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의 제안에 소장자인 안 회장이 선뜻 동참한 것이다.

“집 사람이 제일 좋아하던 작품이 과수원과 아이들이었어요. 사실 팔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비싼 가격에 내놓았죠. 그런데 정말 팔리더라고요.”

이중섭의 1950년대 두 작품은 K옥션을 통해 각각 6억3000만원, 9억9000만원에 낙찰됐다. 그러나 안 회장은 두 그림에 여전히 미련이 많다.

“다시 사려고 하는데 (경매에) 안 나오네요. 언젠가는 반드시 제가 다시 살 겁니다. (웃음)”

안병광 서울미술관 회장(유니온약품 회장)이 ‘거장’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미술관 전시장을 걷고 있다. 전시장 벽면에는 문학진, 김중현, 박영선, 박수근 등의 작품이 보인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그림값 뛰게 하는 컬렉터,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말하다=소장했다는 소문만으로도 그림 값을 뛰게 만드는 컬렉터, 안병광 회장이 생각하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어떨까.

“한 작가의 베스트 작품을 수집하는 것이 나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아직 젊은 작가들은 베스트가 없어요. 최근에 서너명의 젊은 작가들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분들께 얘기했습니다. 그림을 일주일만에 그리면 팔리는 데는 2~3년이 걸릴 수 있지만, 그림 한 점에 2~3년을 투자하면 2~3일만에 팔리 수도 있다고 말이죠. 컬렉터들은 이미 작가의 생각을 읽을 만한 경지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들의 애정과 혼이 그림에서도 다 드러나지요. 애정과 혼을 쏟은 작품을 보면 컬렉터들은 소장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고 그러면 결국 그 그림을 사게 돼 있습니다.”

컬렉터 안병광이 작가들에게 주문한 것은 ‘헝그리 정신’. 과거 미술계 한 인사가 “지금 젊은 작가들이 내놓는 그림들은 모두 쓰레기”라며 절망적인 평가를 한 것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을 물었다.

“쓰레기 속에도 진주가 있습니다. 그 진주를 고르는 것이 내가 할 일이죠.”

서울미술관 뒷편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채였던 석파정(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이 있다. 안 회장은 이 석파정 터를 2006년 65억에 낙찰받은 바 있다. 현재 안채와 사랑채에서 아내(서유진 서울미술관 이사장)와 둘째 딸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대통령도 미술관 오셔야지요”=안 회장은 “오로지 토종만 본다”고 말했다. 저명한 컬렉터들이 해외 유수의 아트페어를 통해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한국 미술시장에서, 한국의 작가들에게만 집중한다.

거장들의 작품만으로는 젊은 작가, 젊은 관람객들과의 교감을 이어갈 수 없을 터. 안 회장은 현재 서울미술관의 조용한 변신을 모색 중이다.

“2016년에는 서울미술관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로 전시는 물론이고요. 근ㆍ현대 명화전을 대대적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래서 서울미술관에 가니 대한민국의 모든 작가들이 다 있더라고 말할 수 있게 말이죠.”

그는 미술관을 통해 문화강국을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미술관이 일년에 몇 십개씩 생기지만 결국 2년도 채 못 가 찻집이나 음식점으로 변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부의 지원 정책이 여전히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기업하는 사람들이 미술, 문화 키울 수 있게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세제 혜택도 당연히 있어야 하고요. 대통령이 영화관에만 가실 것이 아니라 미술관도 오셔서 격려도 해주고 힘을 주셨으면 합니다.”

amigo@heraldcorp.com


<프로필>

▶1988년 1월~현재 ㈜유니온팜 대표이사

▶1997년 7월~현재 ㈜범석장학재단 이사

▶2000년 2월~현재 사단법인 대한의약품도매협회 이사

▶2004년 1월~현재 ㈜아산유니온약품 대표이사

▶2005년 10월~2012년 10월 한국어린이보호재단 이사

▶2007년 2월~현재 사단법인 대한의약품도매협회 부회장

▶2010년 3월~현재 ㈜서울유니온약품 대표이사

▶2010년 4월~현재 뉴서울컨트리클럽 운영위원

▶2011년~현재 국민일보사 이사

▶2012년 8월~현재 서울미술관 회장


<수상내역>

▶2001년 2월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수상

▶2006년 1월 식품의약품안전청 표창 수상

▶2008년 3월 서대전세무서 표창 수상(우수납세자)

▶2009년 3월 대전지방국세청장 표창 수상

▶2010년 10월 서울시 봉사 대상 수상

▶2014년 4월 제42회 보건의 날 국무총리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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