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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정치민주연합은 한국의 ‘다이빙벨’… 정치부를 떠나며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2014년을 관통하는 한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세월호’다. 책임도 권한도 없는 무늬만 선장에, 사설업체에 인명 구조를 떠넘긴 정부, 언딘과 유착됐던 해양경찰, 재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가 아니라는 청와대 비서실장의 말도 있었다. 이 가운데엔 ‘다이빙 벨’ 사안도 놓여있다. 해양수산부도 해경도 ‘조류때문에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구해보겠다”며 나선 김종인씨의 다이빙벨은 그러나 결국 실패했고 큰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정치부 기자로서 ‘다이빙벨 사안’은 새정치민주연합을 관통하는 지난 1년의 현상으로 해석된다. ‘착한 일’을 해보려던 측은 비난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고, ‘나쁜 일’에만 몰두하는 측은 별다른 비난이 가해지지 않는 기현상 말이다.

올해 2014년 1월 1일은 ‘박영선의 날’이었다. 새해 벽두까지 ‘외국인투자촉진법’을 막아섰던 법사위원장 박 의원은 그러나 같은 당 의원으로부터도 ‘너무 고집이 세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박 의원은 “차마 내 손으론 의사봉을 두드릴 수 없다”며 야당 간사에게 의사봉을 넘겼고, 그렇게 외촉법은 통과됐다. 그러나 법만 통과되면 금방이라도 투자가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수혜 기업들은 1년이 꼭 지난 12월 31일까지도 외국의 투자를 받아오지 못하고 있다. 계약부터 하고 법안이 바뀌기를 기대했던 해당 기업들은 입은 있으나 할말은 없다. 누가 맞았는지는 명확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서도 새정치연합에선 또한바탕 난리가 났다. 기초선거 무공천을 두고서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기초선거 무공천을 두고, 올해 5월 안철수 공동대표는 청와대를 찾아가는 ‘퍼포먼스’까지 보였다. 안 전 공동대표의 요구는 단순했다.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약속을 지키는 측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측. 어느 측이 나쁜가. 상식은 ‘지키지 않는 측’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모든 것이 다 야당의 책임으로 돌려졌다. 안 전 공동대표를 ‘백면서생’이라며 조롱하는 말들도 난무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공천 하겠다, 즉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서도 새정치연합은 극심한 내홍을 겪어야 했다. 세월호 사고를 ‘교통사고’에 비유한 여당 인사들에 비해, 적극적으로 세월호 유족들의 아픔을 달래려 했던 새정치연합은 이 사안에서도 두차례나 합의안이 유족들로부터 추인받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유족 동의부터 받아오라’는 비아냥을 새정치연합에 던졌다. 유족들은 새누리당보다 새정치연합을 향해 더 강한 비난을 퍼부었다. 책임과 권한이 큰 여당보다 야당이 너 나쁘다는 비판도 거셌다. 마치 세월호 구조 과정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정부보다, 뭐라도 하려고 했던 김종인씨가 더 세게 비난을 받았던 상황과 유사하다. 이 와중에 새정치연합은 원내대표 탈당 소동까지 빚어졌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지는 것이 위헌적이지 않다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설명이 있었음에도, 새누리당은 해당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새정치연합은 유족들로부터도, 새누리당으로부터도 비난을 들어먹었다.

새해 흡연자들 입장에선 가장 크게 바뀌는 생활의 변화인 ‘담배값 인상’을 두고서도 야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요약하면 “왜 막지 못했느냐”다. 그러나 담배값 인상은 정부가 추진한 것이다. 정부가 추진했지만, 비난은 야당이 들어야 하는 이상 상황이 연말 동안 빚어졌다. 10여년전 참여정부 시절 담배값 500원 올리는 것에 대해 ‘위헌이다’고 주장했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입을 닫았다. 10년 사이 헌법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누리당 의원들의 입장이 바뀐 것은 ‘집권했기 때문’으로 요약된다. 거짓말은 말을 하지 않음으로서도 완성될 수 있다.

야권도 뭉치지 못하긴 매 한가지다. 후반기 국회 원구성과 관련해 국회 환노위원회 구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환노위에서 야당이 다수라는 것이 재계측의 문제제기 탓에 정의당 몫의 환노위원석 한자리가 비게 된 것이다. 문제는 새누리당에선 환노위에 가려던 의원이 없었다. 그러자 새누리당이 ‘꼼수’를 부린 것이 정의당 몫을 없앤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이에 동의해줬다. 그러나 정의당은 애초에 초안을 마련한 새누리당보다는 새정치연합을 비난한다. “왜 동의를 해줬느냐”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비난의 무게는 새누리당을 향해서가 더 무겁게, 새정치연합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가볍게 가해져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야당이 세운 공(功)이 여권에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전두환법’이 통과돼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세금 추징과 검찰 수사가 이뤄지자 세간에선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박 대통령 지지율도 올랐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세금 추징은 전두환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당시 새누리당은 ‘위헌적’이라는 점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새정치연합은 해외 사례를 들어가며 여당 설득에 나섰고, 전두환법이 통과되자마자 검찰은 법을 근거로 세금 추징에 나섰다. 사실상 야당의 작품이었던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세금 추징은 그러나 박 대통령의 공으로 돌아갔다.

정치 철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를 정의하면서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 정치에 이 정의를 적용시키면 ‘한국에서의 정치란 더 나쁜놈과 덜 나쁜놈을 구분하는 것’쯤 된다. 오십보와 백보는 분명히 다르다. 분노가 가치를 가지려면 대상이 정의로워야 한다.

끝으로 기자들 격언 중엔 ‘기자가 출입처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떠날 때가 된 것’이란 말이 있다. 이해를 넘어 ‘러브레터’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정치부를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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