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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셀럽] ‘읽기’가 안되면 ‘듣기’로…난독증 딛고 우뚝선 슈퍼리치들
[특별취재팀=김현일 기자] 재무제표도 읽지 못할 만큼 난독증이 있는 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세계적인 부호가 될 수 있을까?

난독증은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이 있는 질병이지만 지능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난독증 환자를 지능 발달이 더디거나 학업에 부적응한 사람으로 보는 선입견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실제로 억만장자들 중엔 어린 시절 두세 문장의 짧은 글도 읽지 못해 ‘바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던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회사를 직접 세우고 경영하면서 슈퍼리치가 된 이들은 ‘난독증은 내게 큰 장애물이 아니었다’라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히려 난독증이 인생의 전환점이자 거대한 부를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리차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리차드 브랜슨, ‘읽기’ 대신 ‘듣기’로 사업 지휘=영국 버진그룹(Virgin Group)의 창업자 리차드 브랜슨(Richard Bransonㆍ64)은 학창시절 단어를 외우는 것이 가장 큰 고역이었을 만큼 난독증으로 고생했다.

선생님은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브랜슨을 마냥 게으르고 멍청한 학생으로만 생각했다. 50여 년전 난독증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던 당시 사람들은 브랜슨 같은 아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브랜슨도 점점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어갔고, 결국 16살에 자퇴를 결심하고 학교를 떠났다. 이후 음반매장, 나이트클럽, 영화배급 등 400가지 이상의 사업을 벌리며 ‘괴짜 행보’를 걸어왔다.

경영인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 ‘net profit(순익)’와 ‘gross profit(총익)’의 차이를 모를 만큼 난독증은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브랜슨은 난독증이 오히려 사업의 성공요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회사가 새로운 광고물을 제작해 내놓거나 신제품 마케팅에 나서기 전 고유의 방식으로 사전 테스트를 진행한다. 방법은 간단한다. 직원에게 해당 홍보물을 큰 목소리로 읽게 한 후 브랜슨이 전체 콘셉트와 문구를 한 번에 이해하면 ‘통과’다.

젊은 시절의 리차드 브랜슨 회장.

브랜슨은 자신이 난독증이 있는 만큼 소비자가 광고의 메시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 여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지금도 자사의 광고를 꼼꼼히 체크하면서 어려운 전문 용어는 자주 쓰는 쉬운 단어로 바꾸도록 한다. 그가 추구하는 메시지의 단순함과 명료함 덕분에 회사의 인지도와 브랜드 가치는 올라갔다.

브랜슨은 난독증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전에 있는 단어들의 철자를 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열등감을 느끼지 마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남이 못하는 분야에서 내 강점을 뽐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브랜슨은 일찍이 자신의 강점은 ‘창업’에 있다고 생각했고, 수백 번 도전 끝에 결국 기업가로 성공하며 포브스 기준 50억 달러(약 5조4700억원)의 자산가가 됐다.

미국 최대 철강회사 베들레헴 철강 대표 찰스 슈왑.

▶찰스 슈왑, 불혹이 돼서야 알게 된 자신의 병명=미국 최대 철강회사 베들레헴 철강(Bethlehem Steels)을 경영하고 있는 찰스 슈왑(Charles Schwabㆍ77)은 인생의 절반을 자신이 난독증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글을 읽고 쓰는 데 다소 어려움은 있었지만 명문대를 졸업한 후 회사를 경영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8살 아들이 학교에서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들었다. 그때 비로소 슈왑은 자신이 그동안 겪어 왔던 문제의 근원이 난독증 임을 알게 됐다. 그의 나이 40세 때였다.

지금도 슈왑은 글을 보면 무조건 입 밖으로 소리내어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나마 익숙한 경제분야나 투자 관련 글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읽고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분야의 책은 엄두도 못낸다. 대신 테이프로 녹음한 것을 들으며 책을 접한다. 오디오 북과 같은 방식이다. 그래서 슈왑은 새로운 전자기기들이 계속해서 개발되는 것이 무척이나 감사하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의 찰스 슈왑 대표.

뒤늦게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됐지만 슈왑은 오히려 모르는 게 젊은 시절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스탠퍼드대 재학 당시 난독증 때문에 영문학 수업은 두번이나 낙제하고 세번째 만에 겨우 통과했지만 대신 자신 있었던 수학, 과학에서 재능을 드러냈다. 만약 일찍이 난독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열등감에 빠져 살았다면 슈왑은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난독증 환자들에게 늘 “자신감을 잃지 말라”고 강조한다.

슈왑은 난독증 환자이자 난독증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아이의 난독증으로 갈등을 겪는 가정을 위해 재단도 설립했다.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찰스&헬렌 슈왑 재단(The Charles and Helen Schwab Foundation)을 통해 난독증 아동을 돕고 있다. 현재 그의 자산은 67억 달러(약 7조3300억원)다.
  
잉그바르 캄프라드 이케아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 이케아 제품에 숨겨진 그의 비밀=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IKEA) 제품의 명칭은 독특하다. 모두 특정 지명이나 사람 이름이 붙어 있다. 소파와 TV받침대는 각각 스웨덴 지명 ‘클리판(Klippan)’과 ‘노레보(Norrebo)’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침대와 옷장 이름은 노르웨이 지명에서 따왔다. 책장에는 스웨덴 남자 이름을, 커튼에는 여자 이름을 붙이는 식이다. 최고 인기상품인 책장의 이름은 ‘빌리(Billy)’다.

이러한 이색적인 작명 방식은 사실 이케아의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ㆍ88)가 갖고 있는 난독증에서 비롯됐다. 제품코드를 읽는 데 어려움이 있는 캄프라드는 장소나 사람 이름으로 제품명을 지어 보다 쉽게 상품을 분류하고자 했던 것이다.

젊은 시절의 잉그바르 캄프라드.

캄프라드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오히려 사업에 녹여내며 성공을 거뒀다. 복잡한 제품번호 대신 특이한 이름 덕분에 소비자들도 제품을 보다 쉽게 기억할 수 있었고, 이케아만의 독특한 마케팅 요소로도 활용됐다.

덕분에 이케아는 한국을 비롯 현재 전 세계 42개국에 345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약 4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가구업계의 공룡’으로 성장했다. 캄프라드도 37억 달러(약 4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억만장자가 됐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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