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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는 시간이고 공간이며 우리 生이다…나무로부터 배우는 삶과 역사
다시, 나무를 보다/신준환 지음/알에이치코리아
궁궐의 우리 나무/박상진 지음/눌와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평생을 나무를 벗하며 살아온 ‘나무 학자’ 2명이 나무에 관한 책을 냈다. 국립수목원장 출신의 산림과학자 신준환(58)의 ‘다시, 나무를 보다’(알에이치코리아)와 나무와 문화재 사이에 난 역사의 길을 탐구해온 학자 박상진(51ㆍ경북대학교 명예교수)의 ‘궁궐의 우리 나무’(눌와, 2001년 초판ㆍ2014년 개정판)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들에게 나무란 시간이고 공간이며 삶이고 역사다. 자연과 인간의 생(生) 전체를 육화하고 표상하는 존재이다. 

‘다시, 나무를 보다’는 나무를 통해 본 우리네 삶이며, 우리네 삶을 통해 본 자연의 순리다. 나무로부터 우리 사회와 인생에 대한 성찰과 지혜를 길어올렸다. ‘궁궐의 우리 나무’는 나무에 아로 새겨진 우리 역사를 더듬고 선인들의 말과 글, 삶을 좇는다.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듯 나무의 생태와 인간의 생활이 어울리며 만들어졌던 역사와 문학을 돌아본다. 저자에게,독자에게 두 책은 숲이며, 문장은 나무다. 



‘다시, 나무를 보다’에서 저자가 쓴 첫 문장은 “나는 평생 나무처럼 살았다”이다. 그는 1960년대 낙엽송을 마당에 심으면서처음으로 나무라는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산림자원학과에 진학하고 동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를 시작으로 산림생태과장, 산림환경부장을 거쳐 지난 2012년부터 올해까지 국립수목원 원장을 역임했으니 평생 나무 곁에서 살았고, 나무로 만든 책을 보며 지냈다. 그는 “나무를 보는 것은 자신을 찾아가는 위대한 여정”이라고 했다. “나무 줄기의 강건함이 나의 여정을 위대하게 만들어준다”며 “숲으로 달려가 당장 나무를 만나볼 여건이 안 된다면 가슴 속에 나무를 키워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숲에 가서 나의 나무를 하나 정해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는 “성찰하면 성장한다”는, 나무로부터 얻은 지혜를 전한다. 단풍이 빛나는 것은 빛이 없어지는 과정이라는 배움을 통해 없어지는 것을 알 때 빛이 난다는 것을 깨달음을 얻는다. 가을에 접어들어 열매도 맺고 할 일도 없어졌으니 광합성 담당자인 엽록소가 없어지고 그동안 가려져 있던 카로틴, 안토시아닌 같은 색소가 드러난 것이 바로 오색 단풍이다. ‘독야청청’이라 표현에서 보듯 나무는 종종 절대고독과 절대의지의 상징물이 돼 왔다. 하지만 “잎은 가지에 의존하고 가지는 줄기에 의존하며 줄기는 뿌리에 의존하고 살아가지만, 잎이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으면 뿌리도 살아갈 수 없다.” 나무, 그 자체가 잎과 가지, 줄기, 뿌리의 그물망이지만, 또 이웃에 의존하는 개체이기도 하다. 나무는 버섯같은 균근이 없으면 나무답게 살아갈 수 없으며 균근도 나무가 없으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없다. 벌레, 세균, 곤충, 새, 날짐승, 들짐승, 그리고 햇빛과 물, 이산화탄소가 바로 나무가 의존하는 이웃들이다. 그래서 저자의 나무의 인생학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아서 강한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울려서 강하다”라는 더불어 사는 지혜, 나무의 사회학으로 향한다. 


그는 나무를 통해 불안과 참여, 상호주관성 등 실존주의와 현상학의 개념을 사유하기도 한다. 나무로 우거진 철학의 숲에서 헤겔과 질 들뢰즈의 시간성과 하이데거의 결단성,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의 ‘해석학적 지평’을 경유하기도 한다. 우리의 고전과 판소리, 다산 정약용도 그의 이야기들이 뻗어 닿는 가지들이다. “나무는 신성하다. 나무와 이야기하고 나무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진리를 아는 사람이다”라고 저자가 인용한 헤르만 헤세의 글은 아마도 평생 ‘숲지기’였던 저자의 마음 그대로일 것이다. 


‘궁궐의 나무’의 저자 박상진은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산림과학원 연구원과 전남대ㆍ경북대 교수를 거쳤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도 2년간 역임했다. 나무와 역사, 나무와 문화재가 걸치는 길이 여럿일 터이나 그 중에 그는 궁궐 속 나무를 택해 책을 썼다. 

먼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의 네 장으로 나누고, 그 속에 사는 나무를 일일이 표제어로 했다. 모르면 한 가지, 많아야 두서넛, 너댓으로만 보였던 나무 종류가 무려 114종이다. 표제어는 아니지만 책 속에서 언급되는 나무들까지 치면 300종이 넘는 나무들이 등장한다. 가죽나무, 박태기 나무로부터 시작해 참오동나무, 이팝나무, 말채나무, 조팝나무, 굴참나무, 좀작살나무, 병아리꽃나무, 꽃개오동, 물푸레나무, 함박꽃나무, 찔레꽃, 히어리, 좀쉬땅나무, 다릅나무, 느릅나무, 쥐똥나무, 때죽나무, 덜꿩나무 등 이름만으로도 아름답고 정겹고 재미있는 나무가 책에서 숲을 이뤘다. 13년만에 새로 나온 개정판은 초판보다 100쪽 이상이 늘어 538쪽이 됐고, 새로 촬영한 사진 400장 이상이 수록됐다. 나무 하나 하나마다 얽힌 역사가 있고 옛 선조들의 문향이 배어 있으니 궁궐의 나무숲은 이야기숲이기도 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첫 항목인 경복궁의 가죽나무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종 당시 과거에 새로 급제한 선비들이 “가죽나무 같은 쓸모없는 재질로 남다른 은혜를 입었다”며 성은에 감읍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가죽나무는 어원은 스님들이 흔히 절에다 심고 잎을 나무로 먹는 ‘진짜 중 나무’ 즉 참죽나무에 빗대 ‘가짜 중 나무’에서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보여지는데, 실제로 기록에 ‘가승목’이라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선비들의 말과 달리 가죽나무는 소나무, 느티나무만큼은 아니라도 제법 모양새도 좋고, 쓸모도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뿌리껍질을 설사, 치질, 장풍의 약재로 썼다. 이렇듯 역사문헌에서의 관련 일화와 어원과 관련된 기록을 소개하고, 옛 선조들의 생활에서의 쓰임새까지 살폈다. 물론 각 나무의 생물학적 특성도 담았다. 연산군은 꽃나무와 단풍을 사랑했고, 태종은 뽕나무를 심게 해 왕비와 궁녀들이 누에를 키워 옷을 지어입도록 했으며, 문종은 아버지 세종에게 바치기 위해 세자시절 동궁에 앵두나무를 키우기도 했다. 역사를 증언하는 나무도 있다. 창경궁에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어갔던 현장의 주변에 회화나무 두 그루가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시, 나무를 보다’는 특별히 문장이 담백하고 단아해 읽는 맛이 있다. ‘궁궐의 우리 나무’는 두런두런 이야기꾼의 말을 듣는 맛과 나무를 다양한 사진으로 보는 맛이 적지 않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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