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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2014년 나를 사로잡았던 앨범 ‘베스트 10’(1부)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여기저기에서 속출하는 오디션 스타들을 바라볼 때면 종종 “우리나라에 이렇게 숨겨진 재주꾼들이 많았나?”라는 즐거운 의문이 들곤 합니다.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앨범을 들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한 앨범이 기자에게 안겨준 감동과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이상의 완성도를 가진 새로운 앨범이 등장해 놀라움을 주는 일이 다반사이니 말입니다.

지난해 이맘 때 기자는 ‘[취재X파일] 연말결산 2013년 올해의 앨범 TOP11’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한 해를 빛낸 앨범들을 정리한 일이 있습니다. 기사를 써서 세상에 내보낸 뒤 기자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음악 전문가도 평론가도 아닌 일개 기자가 감히 올해의 앨범을 선정하는 일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말이죠.

대중음악 담당 기자의 주된 일과 중 하나는 새로운 앨범을 듣고 인터뷰 대상 뮤지션을 고르는 일입니다. 일의 특성상 장르에 관계없이 다양한 앨범을 많이 들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습니다. 고민 끝에 올 한해 기자가 들은 앨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앨범을 독자들과 공유하는 정도는 큰 무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기사 제목도 2014년 나를 사로잡았던 앨범 베스트 10’입니다.

디지털 싱글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득세해 앨범 발매가 어려워진 세상입니다. 그중에서도 정규앨범 발매는 모험에 가깝죠.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선정대상은 올해 발매된 정규앨범에 한정했습니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고자 앨범 소개 순서는 발매일자 순으로 배치했습니다. 


▶ 솔루션스 정규 2집 ‘무브먼츠(Movements)’(5월 16일 발매)= 지난 2012년에 발매된 듀오 솔루션스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국내에는 없는 사운드였지만 결코 낯설지 않았고, 아이돌 댄스 음악 이상의 흥겹고 유려한 멜로디와 리듬을 가졌지만 중심에는 단단한 록 사운드를 품고 있었죠.

이들의 음악은 ‘세련미’라는 단어 외에 적당한 수식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잘 빠진 모양새로 마니아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솔루션스가 2년 만에 발표한 정규 2집 역시 전작 이상으로 세련된 사운드로 몸을 들썩이게 만들며 이들의 지난 음악적 성취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보이고 있습니다. 밴드 사운드를 중심에 두고 다소 소심하게 전자음을 사용했던 전작과는 달리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편곡도 매력적입니다. 그 결과 전작보다 더욱 라이브가 기대되고 댄서블한 앨범이 탄생했죠. 솔루션스는 ‘해결책’이라는 대담한 의미를 가진 밴드명이 부끄럽지 않은 음악적 대안으로 기꺼이 청자가 춤을 출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 바버렛츠 정규 1집 ‘바버렛츠 소곡집 #1’(5월 27일 발매)= ‘비 마이 베이비(Be My Baby)’ 같은 50~60년대 스탠더드와 옛 가요부터 TLC 같은 90년대 팝까지 목소리만으로 새롭게 풀어내는 세 ‘가시내들’의 실력은 앨범을 내기 전부터 화젯거리였습니다.

앨범 역시 이들의 라이브만큼 매력적입니다. 주 멜로디를 부르는 보컬을 중심으로 새침하게 치고 빠지는 화음이 매력적인 ‘가시내들’을 비롯해 스윙감이 넘치는 흥겨운 로큰롤 ‘쿠커리츄’,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층층이 정교하게 쌓아올린 화음의 조화가 압권인 ‘한여름 밤에 부는 바람’, 우리의 전통 노동요와 흑인 블루스의 정서가 이물감 없이 화학적으로 어우러지는 ‘비가 오거든’까지… 바버렛츠는 과거를 박제시키지 않고 현재와 절묘하게 조화시킨 그야말로 ‘끝내주는’ 음악을 스스로의 역량으로 앨범에 담아냈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사운드의 질감입니다. 바버렛츠는 디지털로 녹음한 음원을 아날로그 릴테이프에 담아 다시 하나하나 재생해 새롭게 곡을 녹음했고, 그 결과 50~60년대 팝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깊은 질감의 사운드가 연출됐습니다. 


▶ 이정아 정규 1집 ‘언더토(Undertow)’(6월 5일 발매)= 엠넷 ‘슈퍼스타K3’ 톱(TOP)11 출신인 싱어송라이터 이정아는 기존 오디션 스타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함께 출연했던 버스커버스커, 울랄라세션, 투개월 등이 가요계를 휘저을 때에도 이정아는 앨범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었죠. 대중이 이정아에 대해 간과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정아는 오디션 출연 전 이미 CJ문화재단의 신인 지원 프로그램 ‘튠업’ 4기에 선발되며 음악적 역량을 입증한 ‘뮤지션’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정아가 조용히 세상에 내놓은 이 앨범에는 오디션 스타들을 향한 회의와 편견을 거두고 음악적으로 논의할 만한 결과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앨범에 담긴 음악적 뿌리는 포크이지만 월드뮤직을 방불케 하는 독특한 멜로디 라인과 다양한 악기의 조합, 오케스트라를 활용한 거대한 스케일의 편곡이 더해져 다채로운 음악 세계를 보여줍니다. 여기에 10대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적 실험을 펼쳐 온 베이시스트 정재일이 앨범의 프로듀서와 편곡을 맡아 이정아의 음악에 날개를 달아줬죠.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정아의 맑고 힘 있는 목소리입니다. 음악과 연주에 지지 않는 이정아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이 앨범은 결코 만들어 질 수 없었을 겁니다. 감히 말하건대 이 앨범은 지금까지 오디션 스타들이 내놓은 모든 결과물 중 가장 높은 음악적 성취를 거둔 작품입니다


▶ 이장혁 정규 3집 ‘Vol. 3’(9월 18일 발매)= 홀로 내면 깊숙한 곳으로 침잠하는 행위가 과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요? 이장혁은 이러한 역설이 충분히 가능함을 음악으로 증명했던 보기 드문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이장혁이 6년 만에 내놓은 신보이자 정규 3집 ‘Vol.3’은 다시 한 번 그 역설을 증명해 보인 앨범이었습니다.

이장혁의 음악은 외롭고 초라한 일상의 밑바닥을 훑는 고립의 정서로 음울합니다. 어설픈 희망을 주기보다 다들 비슷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음악이 자신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 청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지독히 사적인 영역에 속해 있던 이장혁의 음악은 유행과 상관없이 좁지만 깊은 범위 내에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죠.

1집의 대표곡인 ‘스무살’의 “내가 알던 형들은 하나 둘 날개를 접고 아니라던 곳으로 조금씩 스며들었지”라던 가사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 ‘노인’의 “쏟아지는 저 빗속을 뚫고 나를 잊고 달려온 날처럼 그날까지 전진 또 전진하고 싶은데 이젠 고장나버린 두 다리가 너무도 무겁구나”와 ‘레테’의 “니가 아니면 난 버틸 수 없다고 울던 밤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와 같은 가사도 쉽게 잊을 수 없을 겁니다.


▶ 로로스 정규 2집 ‘W.A.N.D.Y’(10월 2일 발매)= 장르에 관계없이 좋은 음악은 설명하기 어려운 울림으로 감정을 격동시켜 온갖 수사를 부질없게 만듭니다. 이 같은 울림은 뮤지션이 음악적 완성도를 자신만의 어법으로 끌어올렸을 때 비로소 가능한데, 밴드 로로스(Loro’s)는 시작부터 이런 경지에 다다른 모습을 보여준 독보적인 존재였죠.

로로스가 지난 2008년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팍스(PAX)’는 포스트록(주로 실험적인 장르의 음악적 요소를 조합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만드는 록의 세부 장르)이란 캔버스에 서정과 격정을 몽환적으로 채색해 광활한 소리의 풍경을 그려내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6년 만의 신보인 이번 앨범은 전작의 다소 추상적인 음악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손에 닿지 않았던 사운드를 가시권에 안착시킨 것이 특징입니다.

‘너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향이 나’ 같은 곡처럼 난해함이 지배했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앨범 곳곳에선 구체화된 사회적인 메시지를 엿볼 수 있죠. 권력자들의 횡포를 꼬집은 ‘언더커런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현장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연상케하는 가사가 인상적인 ‘호모 세파라투스’, 선량한 시민의 내면을 괴물로 만드는 사회구조를 질타하는 ‘몬스터’, 후반부의 몰아치는 연주로 비극을 정리하고 희망으로 감정을 정리하는 ‘바벨’ 등 앨범 중반부 4연작은 로로스의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가사의 힘을 받은 음악은 전작보다 한결 더 웅장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하지만 로로스의 강점은 역시 아름다움입니다. 눈이 내리는 벌판에 서서 네 번째 트랙 ‘춤을 추자’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아름다움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임을 새삼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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