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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식품의 부활…기후변화에 강한 고대작물 뜬다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고대 작물’이 지구촌의 새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고대 작물이란 현대 농업기술로 육종ㆍ교배된 작물이 아닌 자연 작물 재래종을 가리키는데, 최근 웰빙 바람을 타고 고대 작물이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점차 인기를 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대 작물은 기후변화나 병충해에 강해 재배가 비교적 손쉽다는 이점을 갖고 있는 만큼 농가에서도 대안 작물로 주목하고 있다.

포브스는 최근의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해 최근 “‘전통 식품’(traditional food)이 귀환하고 있다”고 전하고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재래종 작물 바람을 소개했다.

▶사라지는 식품다양성=재래 작물이 주목받게 된 배경은 빠른 속도로 소멸하고 있는 ‘식품다양성’에 기인한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20세기에 상실된 작물의 종(種) 다양성은 무려 75%에 이른다. 100년 전 있었던 작물 100종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게 25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여기서 더 나아가 FAO는 땅콩, 감자, 콩 등 주요 식용 작물의 야생 근연종(近緣種) 중에서 22%는 오는 2055년이면 지구상에서 아예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온난화와 기상 이변 등 기후변화 현상 때문에 갈수록 야생 작물이 자생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식물 유전학자 댄 버시는 과거 북미 지역에서 자라던 사과의 품종은 2만종에 달했지만 이젠 4000종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한때 수천종에 이르는 다품종을 자랑했던 필리핀의 쌀도 최근엔 100종도 채 되지 않는 실정이다.

수수, 기장 등 고대부터 먹던 자연의 재래종이 지구촌 식탁에 다시 오르고 있다. [자료=국제농업연구자문그룹(CGIAR)]

▶고대작물, 식량 대안 전면 부상=과학자들은 식품다양성 감소에 대한 대응으로 고대 작물에서 가능성을 찾고 있다.

무엇보다 고대 작물이 갖는 강점은 장기간에 걸쳐 각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적합하게 발달해 환경이 변화하더라도 현대 육종 품종보다 잘 자란다는 점이다. 기후 변화에도 비교적 저항성이 강하다고 평가된다.

고대곡물로 잘 알려진 마일로(수수의 일종)는 이상 고열에도 잘 견딘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각광받고 있다. 아프리카의 건조지대가 원산지인 마일로는 ‘작물의 낙타’로 불릴 정도로 수분을 저장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가뭄이 들더라도 작황에 큰 타격을 받지 않아 농가 소득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캔자스에서 마일로 가루를 식품기업에 판매하는 도매업체 ‘뉴라이프마켓’을 설립ㆍ운영하고 있는 얼 로머는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에 “수요가 매년 25~30% 오르고 있다. 폭발적인 성장세”라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고대 작물은 영양학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최근 식품성분분석저널(JFCA)에 게재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연구진은 노스다코타 주의 아메리칸 원주민 보전지역 3곳에서 채취한 고대 야생 작물 10종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이런 고대 작물에 식이성 섬유, 마그네슘, 비타민K 등 영양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돼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명아주와 산벚나무 열매를 영양 증진과 질병 예방에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슈퍼푸드’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고대 작물이 당뇨병 등의 질병에 효능이 있다고 보고 아메리칸 원주민이나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고대 작물 부활 운동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작물 심자”…풀뿌리 식량주권 회복운동 바람=이 같은 빼어난 효능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고대 작물을 재배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연의 재래작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은 몬산토, 듀폰 등 거대 종자기업의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식량 주권운동과도 맥이 닿아있다.

인도네시아에선 이런 고민에 빠진 한 시민의 주도로 ‘수수 혁명’이 이뤄지고 있다.

1970년대 세계 최대규모 쌀 수입국이었던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1980년대 강력할 쌀 증산정책을 추진하면서 수많은 종류의 전통 작물이 자취를 감췄다. 쌀 자급자족을 실현할 정도로 생산량이 풍족해졌지만 가난한 국민들은 쌀로만 주린 배를 채웠다. 쌀 위주의 식사는 영양소 결핍을 가져왔고 결국 영양실조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유엔이 ‘굶주림의 역설’이라고 명명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인도네시아 사회 사업가인 마리아 로레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통 작물인 수수에 주목했다. 누사텡가라티무르의 밭을 매입해 캐슈너트와 코코넛 나무를 베고 수수를 심었다. 쌀 대신 수수를 재배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코웃음을 쳤던 농민들도 가뭄에도 멀쩡한 수수밭을 보자 하나둘씩 그를 따랐다. 이젠 1000여명의 농민들이 그와 함께 수수 재배 운동을 이끌고 있다.

미국에서는 ‘전통을 따르는 미국 원주민 농민협회’(TNAFA), ‘테와족 여성 연합’(TWU) 등 북미 원주민 단체들이 영국 식민 지배가 시작되기 전 먹던 작물을 부활시키자는 내용의 식량 주권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 중남미 페루에서도 원주민 사회를 중심으로 감자 재래종 등 고대 작물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하는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다.

/sparkli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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