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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M 펑크는 레스너가 될 수 없다
프로레슬링 챔피언 출신 ‘CM 펑크’ UFC무대 도전…임팩트 남겼던 레스너에 비해 기본기·체격 부족…대회사 관리가 관건
“프로레슬러는 실제로는 강합니다.”

1997년 일본에서 열린 UFC 재팬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프로레슬러 사쿠라바 카즈시(45)는 링 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로레슬링에 대한 환상이 크던 이 시절 일본 팬들은 이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하지만 이 말은 사쿠라바 본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였음이 드러난다. 프라이드FC와 K-1, UFC 등 메이저 격투기에 도전한 프로레슬러들 대다수는 처참한 패배를 안은 채 원대복귀한다. 사람들은 각본 없는 실전에서 쩔쩔 매는 프로레슬러들에게 실망한다.

브록 레스너

사쿠라바의 그 발언은 꼭 10년 뒤인 2007년 격투기판에 뛰어든 한 명의 프로레슬러에 의해 다시 진실이 된다. 세계 최대 프로레슬링단체 WWE의 챔피언 출신 브록 레스너(37ㆍ미국)는 2008년 UFC 본 무대에 진입한 뒤 랜디 커튜어를 꺾고 챔프에 오른다. 부상에서 돌아온 이듬 해 2009년 UFC 100에서는 잠정 챔프 프랭크 미어를 꺾고 헤비급 통합 챔프에 올랐다.

레스너는 2011년을 끝으로 UFC를 떠나 다시 프로레슬링으로 돌아왔다. 게실염 수술로 인한 체력저하와 기술 미흡으로 더 이상 격투기 무대에서 전력을 발휘하기 어려워진 탓이었다. 만약 더 젊은 나이에 신체 질환 없이 격투기에 뛰어들었다면 더 큰 실적을 남겼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또 한 명의 빅네임이 격투기판에 뛰어들었다. 역시 WWE 챔피언 출신인 CM 펑크(36ㆍ본명 필립 잭 브룩스)다. 이달 초 UFC와 출전 계약을 맺은 사실이 전격 발표됐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격투기, 프로레슬링 관계자와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CM 펑크가 과연 레스너만큼의 활약을 펼칠 수 있느냐는 데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이다. 또 한 명의 격투기 정복자가 탄생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까지 절대다수를 차지한 프로레슬러 출신 격투기 루저가 될지 말이다.

▶레스너와는 백본, 하드웨어에서 큰 차이=레스너는 사실 엄청난 백본을 지녔다. 올림픽 금메달에 버금간다는 전미대학아마추어레슬링선수권(NCAA)를 2연패한 아마추어 레슬링 실력이 있었기에 UFC에서 통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종합격투기에서 엘리트체육 종목인 레슬링 능력은 필수요소로 꼽힌다. 거기에 신장 190㎝, 평소체중 130㎏의 순근육질 체격은 UFC 헤비급에 최적이었다.

반면 CM 펑크는 프로레슬링 이전 두드러지게 쌓은 운동 경력이 없다. 프로레슬러가 된 이후 틈틈이 실전무술인 무에타이와 브라질유술을 수련해 왔다고 전해지지만 공식전적이 없다. 은둔고수급일지 초보자 수준일지 전혀 알 길 없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체격조건은 188㎝, 100㎏으로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작고 골격도 그리 크지 않다. 그가 UFC에선 84㎏ 미들급, 심지어 77㎏ 웰터급에서 뛰겠다는 계획을 밝힌 점은 이를 반증한다.

격투기무대에 뛰어들었던 역대 프로레슬러들은 특히 무술 이력 여하에 따라 성적이 적나라하게 갈리는 것이 확인된다. 사쿠라바 역시 고교와 대학교 시절 아마레슬링을 했던 인물이고, 프라이드FC 등에서 좋은 성적을 남긴 후지타 카즈유키도 프로레슬러이기 전에 뛰어난 아마레슬러였다. 현재 북미권 메이저대회 벨라토어 MMA에서 맹활약중인 WWE 출신 바비 래실리도 아마레슬링에서 숱한 실적을 남겼던 선수다.

이런 이력 없이 몸집만 키워 프로레슬러로 활약했던 격투기 도전자들 다수는 지기 바빴다. K-1에서 최홍만에게 승리를 헌납했던 탐 하워드,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타카다 노부히코, 김민수에게 첫승을 선물한 션 오헤어, 알렉세이 이그나쇼프의 무릎에 혼절한 스티브 윌리엄스 등이 그랬다. 바티스타는 단 한 경기에 나서 승리했지만 가능성보다는 한계를 확인하고 복귀했다. CM 펑크에게 험로가 예상되는 이유다.

CM 펑크

▶UFC 대회사의 육성 관리에 따라서는 실적 남길 수도=그러나 선수는 육성 여하에 따라 전혀 다른 성적을 남길 수도 있다. 흥행에 도움이 되는 선수를 가벼이 써먹고 내치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수 개인의 능력보다 대회사의 의지에 따라 CM 펑크의 앞길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격투기와 프로레슬링 사정에 모두 정통한 천창욱 CMA코리아 대표는 “CM 펑크가 어느 정도 기량을 가졌을지 그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며 “우선 그가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준 뒤 데뷔전 상대로 어느 정도의 선수가 나올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개 메이저 격투기 단체에서는 새로 영입한 선수의 상대로 매우 강한 선수를 붙이거나, 아니면 약체를 붙인다. 매우 강한 선수를 붙일 때는 명분상 패하더라도 상품성이 덜 훼손된다. 하지만 약체에 패한다면 두 번째 경기에서 다시 그의 전력을 고려한 상대를 붙이는 수고가 뒤따른다. 근래 들어서는 약체 선수와 대결시켜 연착륙을 도모한 뒤 해당 경기에서 확인되는 그의 전력을 고려해 다음 경기까지 모자란 점을 보완하게 하는 방식이 더 흔하다.

UFC가 우선 CM 펑크가 해 볼 만 한 상대를 붙여주고나서, 이후로 그가 이길 수 있는 스타일의 상대를 찾아서 매치업시켜 준다면 무난하게 전적을 쌓으며 그 사이 기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비록 실전종목이 아닌 프로레슬링이지만, 한 종목에서 획을 그은 선수에게서 발견되는 강력한 정신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천 대표는 “‘프로레슬러의 강함’은 육체보다 정신이다. 혹독한 경기스케줄과 잦은 부상을 딛고 그 자리에 선 것”이라며 “대회사의 적절한 선수 관리와 CM 펑크 본인의 철저한 준비 등이 잘 맞아들어간다면 좋은 성적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직 기자/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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